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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서로 살피는 존재, 그래서 횡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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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6회 작성일 25-02-20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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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 맥닐 휘슬러1871의 ‘화가의 어머니’원제 ‘회색과 검은 색의 배열 1번’. 출처: 브리태니카


얼마 전부터 머리에 엄청 신경을 쓰기 시작했다. 이전보다 외모에 갑자기 관심을 더 보이게 된 것은 아니다. 단지 늘 타던 방식으로 가르마를 넘기니 그 부분의 휑함을 견딜 수 없어졌기 때문이다.



신경을 쓰는 게 머리뿐이랴. 부모 덕에 술은 꽤 잘 마시는 편이라고 자랑하고 다니던 것이 얼마 전인데, 이젠 저녁에 몇 잔만 마셔도 아침이면 한쪽 눈이 얻어맞은 것처럼 충혈된다. 집안일을 포함해 여러 일을 급하게 처리하는 탓에 손에 잔 상처가 생기는 일이 많다. 이전과 달리, 상처가 낫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 장갑을 끼지 않고 설거지를 하면 바로 습진이 생기고, 겨울에는 손이 너무 시려 장갑 없이 밖을 다니기가 쉽지 않다.






무엇보다, 이전에는 대충이라도 보이던 저 화면이 잘 보이지 않는다. 강의장에서 수업을 들을 일이 없어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던 안경을 다시 꺼내 든다. 초점이 잘 잡히지 않아 때로 가까운 것이 또렷이 보이지 않는다. 그때마다 지금은 진료를 하지 않아서 괜찮아, 환자를 다시 보면 어떻게 하지, 노파심에 괜히 마음 한구석이 켕기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자연스러운 일이겠지만, 하는 일 탓에 다른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말기 돌봄이니 좋은 죽음이니를 살피고 숙고하는 것이 원체도 내 일에서 중요한 영역이었는 데다가, 최근에는 이 모두가 남의 일이 아니니 더더욱 그렇다. 삶에 죽음이 아른거리는 것을 넘어 긴 그림자를 드리우고, 남은 기한을 누구도 자신할 수 없는 불확실성 속에서 가끔 나는 내가 없는 세상을 생각한다.



이전에는 별다르지 않으리라고 생각했다. 내가 없어도 세상은 아무런 탈도 기색도 없이 굴러갈 것이다. 당연한 일이다. 단지 딸의 얼굴 앞에서 같은 말을 할 수 없다는 것 빼고는.



실체적이든 가상적이든,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자기 죽음을 떠올리는 일은 불온하다. 그 앞에서 찾아야 하는 것이 위안인지 위로인지, 또는 도피인지 나는 모르겠다. 그저, 얼마 남지 않은 죽음을 앞두었던 작가의 말을 다시 떠올려 보곤 한다. 레이먼드 카버, 단편소설의 천재. 폐암으로 수술을 받았으나 이후 재발했음을 알고 마지막 순간을 보내던 그가 남긴 시를.



레이먼드 카버는 ‘대성당’, ‘제발 조용히 좀 해요’ 등 단편소설로 ‘헤밍웨이 이후 가장 영향력 있는 소설가’, ‘미국의 체호프’ 등으로 불린다. ‘우리 모두’는 그의 시집 다섯권을 모은 책이다. 출처: 알라딘




횡재





다른 말로는 안 돼. 왜냐면 딱 그거였거든. 횡재.



횡재, 지난 십 년.



살아 있었고, 취하지 않았고, 일을 했고, 사랑했고 또



훌륭한 여자로부터 사랑받은, 십일 년



전에 사내는 이런 식으로 가다간 여섯 달 정도



더 살 거라는 소릴 들었지. 그때 사내는



내리막길로만 가고 있었어. 그래서 사내는 어찌어찌 사는



방법을 바꿨지. 사내는 술을 끊었어! 그리고 나머지는?



그 뒤로는 죄다 횡재였어. 매 순간이, 사내가, 그러니까,



어떤 게 쪼개져서 다시 사내의 뇌 속에서 자라나고 있다는



그 말을 듣던 순간까지 포함해서. “날 위해 울지 마,”



사내가 친구들에게 말했어. “난 운이 좋은 사람이야.



난 나나 다른 사람들이 예상한 것보다



십 년을 더 살았어. 진짜 횡재지. 그걸 잊지 마.”[1]







술을 끊고 새 아내를 만난 후의 삶







1988년 8월, 작가 사후 ‘뉴요커’에 실렸던 이 시의 원제는 ‘그레이비’gravy다. 돈가스 소스 등으로 쓰는 그 그레이비 맞다. 역자인 고영범 작가는 이를 횡재로 번역했다. 구어에선 ‘그레이비’가 기대치 않게 얻은 것을 가리키므로 뛰어나게 옮겼다. 언어의 차이로 끼얹은 소스의 느낌이 사라진 것은 어쩔 수 없지만, 다시 읽으면서 한번 그 느낌을 떠올려보아도 좋다. 이 시의 횡재, 뜻밖에 얻은橫 재물財은 고기 소스처럼 덤으로 주어진 것이다.



급성 알코올 중독으로 6개월 선고를 받았던 카버는 금주 후 10년을 더 살았다. 10년 뒤, 그는 폐암 수술을 받았다. 1년 뒤엔 시가 가리키고 있는 것처럼 뇌로 암이 전이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에겐 세 번의 죽음 선고가 내려졌던 셈이다.



카버의 삶은 그리 따뜻한 것은 아니었다. 노동자의 자녀로 태어난 그는 “할리우드에 있는 파머 작가 학교라는 곳에서 주관하는 글쓰기 통신 과정에 등록했지만 가장 그럴듯한 미래는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제재소에서 일하는 술꾼이 되는 것이었다.”[2] 그는 어린 나이 얻은 두 자녀와 가정을 건사하기 위해 일해야 했고, 가난 속에서 작가로서의 창작 활동을 병행했으며, 그 간극을 술로 채웠다.



1977년 급성 알코올 중독으로 세 번 입원한 그는 자조 모임의 도움을 받아 술을 끊었다.[3] 첫 아내와의 생활을 공식적으로 끝냈다. 그는 술을 끊고 새로운 아내를 만난 다음의 삶을 “두 번째 삶”이라고 불렀다. 그것이 시에서의 횡재, 덤으로 얻은 생이었다. 굳이 표현하자면, 그 생은 이미 한번 ‘죽었던’ 카버가 이후의 삶을 대했던 방식이라고 말해도 좋다.



그래서 시인은 시를 시작하며 강조한다. “다른 말로는 안 돼. 왜냐면 딱 그거였거든.” 지난 10년은 끼얹은 고기 소스처럼 덤으로 주어진 것이었지만, 그렇기에 너무나 멋진 것, 그야말로 횡재였다.



시 10~11연에서 그는 이 횡재에 세 번째 죽음 선고까지를 포함시킨다. “어떤 게 쪼개져서 다시 사내의 뇌 속에서 자라나고 있다는 그 말을 듣던 순간”까지도. 술을 끊고 10년을 멋지게 살았다면, 그것을 횡재라고 말하는 것은 충분히 수긍할 만하다. 하지만 암의 전이, 무엇보다 명확한 죽음의 선고 소식까지도 횡재라고 말할 수 있나. 그는 너무나 끔찍한 소식 앞에서 현실 도피를 선택해버린 건 아닐까.



그렇게 읽히진 않는다. 시의 마지막에서 그는 자신이 다른 사람들의 예상보다, 심지어 자신의 예상보다도 “십 년을 더 살았”다는 점을 강조한다. 원문은 “I’ve had ten years longer than I or anyone”이다. 그는 어순을 어기면서까지 자신이 예상한 것보다, 심지어 다른 사람들이 예상한 것보다도 10년을 더 살았음을 말한다. 예상 밖의 삶이었기에, 그에게 그것은 진짜 횡재pure gravy로 받아들여진다.



시인은 알고 있다. 우리 모두가 삶을 그렇게 바라보고 있지 않다는 것을. 그렇기에, 그는 마지막 당부를#x2014;그는 몰랐겠지만, 이 당부는 그의 유언처럼 신문 지면에 실린다#x2014;남긴다. “그걸 잊지 마.”







생은 서로에게 덤으로 주어지는 것







우리는 누구도 생을 덤으로 주어진 것으로 인식하지 않는다. 생명은 나에게 당연한 것, 의심의 여지 없이 지금 여기에 주어진 확실한 것으로 믿는다. 그도 그럴 것이, 생명이 없으면 애초에 그런 생각조차 할 수 없는데다, 내가 어떤 노력을 기울여서 얻어낸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말 그런가. 생은 그저 당연한 것이기만 한가.



생을 꼭 누군가에게 빚진 것이라고 생각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우리의 생은 그렇게 당연하진 않다. 수없이 많은 사고와 끔찍한 비극이 가득한 이 세상에서, 내가 지금까지 살아 있는 것은 어떤 면에서 기적과 같은 것이다. 꼭 참사나 교통사고, 흉악범죄와 같은 일을 떠올리지 않아도 좋다. 오늘 아침에 내 심장이 멈추지 않았음을 확인하는 일, 정기검진에서 원체는 없어야 했을 새로운 세포가 빠르게 자라나고 있음을 발견하지 않는 일, 매일 들리는 질환 진단과 치료와 나쁜 경과와 부고 속에서 그 일이 나에게 벌어지지 않음을 발견하는 일은 그 자체로 놀랍다.



그렇다 해도 생을 당연하지 않은 것으로 인식하는 일은 너무나 염세적인 태도가 아닌가. 그렇다. 다른 사람의 질병 앞에 서지 않는다면 그렇다. 다른 이의 영정 앞에 머무르지 않는다면 그렇다. 그때엔, 생각할 수밖에 없다. 아픈 것은 왜 그이고, 나는 아닌가. 심지어 우리는 왜 대신 아파줄 수도 없는가. 시일의 차이일 뿐, 모두 죽을 텐데 왜 그리 아등바등하는가.



그 비극 앞, 내놓을 수 있는 대답 하나는 우리가 서로를 돌본다는 것이다. 질환과 죽음, 근원적 취약함을 그 본질의 하나로 삼는 것이 인간의 생이라면 그 취약함을 우리는 서로 보살필 수 있다. 나 혼자선 그저 당연한 것이거나 아니면 허무한 것일 뿐인 이 삶 앞에, 우리가 서로 살피는 자라는 사실이 우리 생을 서로에게 주어진 덤으로 만든다. 그때 서로의 생은 서로에게 줄 수 있는 횡재가, 서로에 대한 축복이 된다. 그렇기에 시인의 마지막 말은 자신에게 하는 독백이 아닌, 친구에게 건네는 말로 끝나는 것이다. “사내가 친구들에게 말했어.”





참고 문헌



[1] 레이먼드 카버. 고영범 옮김. “우리 모두”. 문학동네. 2022. 592쪽.



[2] 레이먼드 카버. 김연수 옮김. “대성당” 2판. 문학동네. 2014. 319쪽.



[3] 캐롤 스클레니카. 고영범 옮김. “레이먼드 카버: 어느 작가의 생”. 강. 2012.





김준혁 | 연세대 교수·의료윤리학자



junhewk.kim@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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