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2000년대 예능 황금기 시절 ‘엑스X맨’이란 TV 프로그램이 있었다. PD가 몰래 엑스맨이라고 지정한 한 출연진을 지정하면 그 출연진은 게임에서 일부러 져야 했다. 게임이 끝날 때마다 다른 출연진들은 그 엑스맨이 누군지 맞추는 프로그램이었다. 이후 우리나라에선 직장이나 운동 경기 등에서 같은 팀에게 불리한 행동을 하는 팀원을 가리켜 ‘쟤 엑스맨 아니야?’라는 밈이 생겼다.
지난 7월 말 북한 신의주, 의주군에서 집중호우로 대규모 피해가 발생한 이후로 김정은 위원장의 ‘애민 지도자’ 이미지가 부각된 사진이 꾸준히 올라오고 있다. 그런데 전속 촬영팀 중에서 ‘엑스맨’이 찍은 듯한 B컷 사진들이 눈길을 끈다.
15일 노동신문 등 북한의 언론 매체는 김 위원장이 수재민 거처가 마련된 평양의 4·25 여관을 찾았다고 보도했다. 그곳에서 김 위원장은 식사하는 아이들을 만나 말을 걸거나 어루만지고 포옹했다. 이에 감격한 아이들은 갑자기 일어나 김 위원장을 둘러싼 뒤 자기 음료수와 빵을 바쳤다. 위 사진의 내용이다. 그런데 전속 촬영팀은 한 장의 사진을 더 공개했다.
사진 속에는 김 위원장 뒤로 아이들뿐만 아니라 경호원과 간부가 나와 있다. 간부가 사진 연출을 위해 아이들을 모았다가 경호원들이 아이들을 원래 자리로 돌려보내는 모습 같다. 그리고 분주한 촬영진과 김 위원장 옷에 떨어진 빵가루가 보인다.
연출에서 중요한 건 당연히 연출 느낌이 안 나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드라마나 영화를 보는데 배우 뒤편에서 붐마이크를 들고 있는 직원이나 연기를 지도하는 감독의 손동작이 보인다면 어떨까? 굉장히 어색하고 몰입감이 떨어질 것이다. 북한 전속 촬영팀은 그런 사진들을 공개하고 있다.
이어서 북한 언론은 김 위원장이 17일 수재민 아이들이 평양에서 새로 학교에 다닐 준비가 잘 돼 있는지 점검하는 사진을 공개했다. 사진 속 김 위원장은 아이들을 바라보며 밝게 웃고 있다. 그런데 아이들 무표정하거나 어색한 미소를 짓고 있다. 한 아이는 손으로 웃음을 가리는 듯한 모습이다. 아마도 북한에선 최고 권력가 앞에서 지어야 하는 표정이 정해져 있는 것 같다. 이전 사진에도 김 위원장 옆 아이들은 웃는 얼굴보다 울상인 표정이 많았다.
그런데 전속 촬영팀은 한 장의 사진을 추가로 공개한다. 이 사진은 ‘연극이 끝나고 난 뒤’ 촬영을 위해 동원됐던 아이들이 떠나는 듯한 모습이다. 사진 속 김 위원장은 우두커니 의자에 앉아 있다. 그 누구도 김 위원장을 쳐다보지 않는다. 마치 김 위원장이 ‘왕따’가 된 듯한 사진을 공개한 것이다.
한 간부가 아이를 김 위원장 쪽으로 잡아끄는 듯한 모습의 사진도 굳이 공개할 필요가 있었나 싶다.
김 위원장이 수재민 천막촌을 방문했을 당시 사진에도 엉거주춤한 자세로 땀을 뻘뻘 흘리는 간부의 모습이 편집되지 않은 채 함께 담겨 있다. 이를 통해 천막 안이 엄청 덥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이미 국내 언론을 통해 여러 차례 언급된 수재민 위로 행사 사진에서 노출된 고급 벤츠 마이바흐 승용차는 말할 것도 없다.
보통 국가 수장의 사진을 담당하는 사진팀은 사진 촬영뿐만 아니라 공개할 사진을 고르는 것도 만전을 기한다. 특히 북한 보도 사진들은 위 사진들처럼 사회주의 특유의 ‘완벽한 앵글’을 연출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래서 기자는 사진기자로서 정말 궁금하다. 북한 김 위원장 전속 촬영팀에 ‘엑스맨’이 있는 것인지. 아니면 신입 직원의 어설픈 사진 결과물인지.
또는 날 것의 이미지 노출 또는 김 위원장의 소탈한 모습을 부각하려는 의도일지도 모르겠다. 북한이기에 정확한 내용은 알 수가 없다. 그러나 최근 김 위원장의 사진 느낌이 바뀐 건 확실하다.
송은석 기자 silverston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