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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석 독립기념관장 "건국절 제정 반대…강만길 분단사관 논리론 尹정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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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55회 작성일 24-08-11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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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통합사관 주창 김형석 “난 뉴라이트 아니며, 광복회장의 친일파 주장은 100% 날조”

보훈부 “윤석열 정부 건국절 제정 추진한 적 한번도 없다. 이는 언어도단”

이종찬 광복회장 “용산에 밀정 그림자, 1948년 건국절 추진 시 광복절 불참” 주장


이종찬 광복회장이 “1948년 건국절을 추진한다면 올해 8·15 광복절 행사에 불참하겠다”고 밝혀 건국절 논란이 다시 재연되고 있다. 이 회장은 또 기자회견과 언론 인터뷰를 통해 지난 8일 취임한 김형석 신임 독립기념관장이 이른바 뉴라이트로 ‘1948년 건국설’을 주장하는 건국론자들이 역사를 왜곡하고 독립운동을 부정하며 일제시대를 미화하는 친일파 딱지를 붙여 취임도 하기 전에 사퇴를 요구했다. 이 회장은 독립기념관 수장 만큼은 독립지사 후손들에게 맡겨야 한다고 주장하며 임명 취소를 압박했다. 더불어민주당과 조국혁신당 등 야당도 광복회 주장에 가세했다.


이종찬 회장은 지난 10일 광복회학술원이 운영하는 청년헤리티지아카데미 특강에서 “정부가 근본적으로 1948년 건국절을 추구하려는 태도를 바꾸지 않는 한, 광복회는 광복절 행사에 나갈 수 없다”면서 “대통령 초청 영빈관 행사뿐만 아니라, 오는 15일 정부의 광복절경축기념식에도 나갈 뜻이 없다”고 밝혔다. 이 회장은 인사말에서 “용산에서, 보훈부에서 여러 회유책을 들어 행사에 참석하라는 회유가 왔으나 거절했다”고 덧붙였다. 이 회장은 경축식 불참 배경과 관련 “한국에 있는 반역자들이 일본 우익과 내통해 오히려 전전戰前 일본과 같이 가고 있다는 위기감이 들어 이래서는 안되겠다. 마지막 수단으로 결단한 것이 경축식불참”이라며 광복절 행사 불참 결정 배경을 밝혔다. 이 회장은 위기감의 근거로 현 정부의 ‘1948년 건국절’ 추진을 들었다.“1948년 건국을 집요하게 갖고 가 전전 일본이 준 피해를 무조건 잊으라고 하는 것은 한일 국교정상화 이래 우리 정부가 견지해 온‘일제 식민지배정당화는 안 된다’는 정신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일”이라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 국가보훈부 관계자는 “윤석열 정부는 건국절 제정을 추진한 적이 한번도 없다”며 “이는 언어도단”이라는 입장을 밝혔다.김 관장은 11일 문화일보와 통화에서 “저는 뉴라이트가 아니며 건국절 제정을 반대하고 비판해왔다”고 밝혔다. 그는 “저는 독립운동의 역사를 폄훼하거나 독립운동가들 비방한 적이 없다.일본을 찬양하거나 일제의 식민 지배를 옹호한 적이 없다. 더욱이 나는 일본과 어떤 친분이나 연계를 가진 적이 없다”며 “친일파 주장은 100% 날조”라고 반박했다. 저서를 통해 국민통합사관을 주창해온 김형석 신임 독립기념관장의 입장을 들어봤다. 다음은 일문일답.

▲이종찬 회장이 김 관장이 ‘현대판 밀정’인 뉴라이트라 주장하는데, 입장은?

“일반적으로 뉴라이트는 과거 운동권에서 활동하다가 우파로 전향한 인사들을 가리키지만, 역사학계에선 일제의 식민지 지배를 동조하는 학자들을 지칭한다. 그런 점에서 나는 어디에도 해당되지 않는다. 일평생 독립운동가의 삶을 연구하고 독립정신을 보급하는 일에 힘써 왔기 때문이다.”

▲이 회장이 ‘독립기념관을 변질시켜 1948년도 건국기념관으로 만들고 싶어하는 것이다.독립기념관장으로 그런 사고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오면 일제 강점하의 독립운동을 어떻게 기념할 수 있는 거냐’고 반대 의사를 밝혔다.

“이 회장은 제가 관장 후보자로 면접할 때 일제 강점기의 조선 백성을 일본 신민으로 말한 친일파라고 주장한다. 그것은 100% 날조다. 그가 ‘일제시대 우리 백성들의 국적은 어디입니까?’라고 묻길래 ‘일제시대 백성들의 국적은 일본이지요. 일제 강점기는 나라를 빼앗겼으니 일본 국적이 된 것이지요. 그래서 나라를 되찾기 위해 독립운동을 한 것 아닙니까’라고 대답했고, 이에 아무도 반론을 제기하지 않았다.”

▲1948년 건국설을 주장했는데 건국절 제정에 대해 어떤 입장인가?

“해방이 되고 미 군정기를 거친 후 주권을 이양 받게 된 1948년 8월 15일을 건국일로 보아야 한다. 이 말에 동의하면 ‘광복절을 폐지하고 건국절을 제정하자’는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 광복절이 곧 건국절이기 때문이다. 1949년 9월 국회에서 국경일 제정을 논의할 때, 광복절의 개념을 독립기념일1948년 8월 15일로 정한 역사적 사실과도 일치한다. 그때는 독립과 광복·건국은 동일한 개념으로 이해됐다.‘1948년 건국설’이 독립운동의 역사를 폄훼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에게도 똑같이 해당된다. 대한민국 건국은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의 성과물이며, 새로운 국가건설건국은 독립운동의 최종 목표였다는 사실을 부정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따라서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1948년 8월 15일은 대한민국의 건국이 완성된 시점이다.”

김 관장은 “ 미국 경우에도 1776년 7월 4일 독립을 선언하고 1781년까지 영국과 독립전쟁을 벌인 결과 1783년 9월 3일 파리조약을 통해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인정받았다. 이후 1789년 4월 30일 조지 워싱턴이 초대 대통령으로 취임하면서 건국을 완성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미국과 비교해 보면 미국은 독립선언부터 정부 수립까지 13년이 걸렸고, 대한민국은 1919년의 3·1운동과 임시정부 수립부터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까지 29년이 걸린 셈”이라고 밝혔다.

▲이종찬 회장 등 진보학계에서 ‘1948년 건국절’주장을 반대하는 학문적 배경은.

“ 한시준 전 독립기념관장은 저서 ‘역사농단’에서 ‘1948년 건국설’을 국정농단에 빗대어 역사농단으로 비판했다. 그는 ‘1948년 건국설이 독립운동 역사를 폄훼하고,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존재와 대한민국 헌법을 부정하며, 친일반민족행위자를 건국공로자로 둔갑시키려는 의도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친일반민족행위자를 ‘건국공로자’로 둔갑시키려는 의도라는 부분에 대해서는 대상이 누군지 언급하지 않았지만, 책 내용을 유추해보면 이승만 초대 대통령을 가리키는 것이다.”

▲작고한 강민길 전 고려대 명예교수도 ‘1948년 건국설’을 반대한 것으로 알고 있다.

“1948년 건국설’을 반대한 또 다른 주장은 강만길 고려대 명예교수의 ‘분단사관’이다. 그는 1975년 5월 동국대에서 열린 제18회 전국역사학대회에서 분단시대 국사학은 궁극적으로 통일운동의 일환이어야 한다면서, 민족통일을 역사적 과제로 하는 민족주의사학을 주창했다. 그의 대표작인 ‘분단시대의 역사 인식’에 따르면 일제강점기에는 민족운동사의 주류가 좌·우익 통일전선운동이었고, 이것이 해방공간에서는 통일민족국가건설운동으로 연결됐기에 대한민국 정부 수립은 민족통일을 가로막고 분단을 고착화한 사건이었다. 그는 이런 시각에서 1948년 건국설과 건국절 제정 움직임에 대해 신랄하게 비판했다. ‘1945년 8월 15일이 없었다면, 1948년 8월 15일이 가능했겠는가. 민족이 해방되지 않았으면 건국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1948년 8월 15일은 1945년 8월 15일의 부속물이다. 만약 그 사실을 부정하면 해방을 가져온 우리 독립운동 세력의 희생과 노력을 무시하고, 독립운동을 한 임시정부의 법통을 밝힌 헌법도 부정한다는 이야기다. 일제로부터 해방되는 것과 패전한 일본이 물러간 뒤에 정부를 세우는 것 가운데 무엇이 더 어려운 일이었겠나. 정말 그렇게까지 역사를 뒤집을 생각을 한다는 건가’라고 했다.”

▲‘해방전후사해전사의 인식’에 나타난 분단사관을 어떻게 평가하는가.

“강만길 전 명예교수의의 역사 인식에 기초해 분단사관이 등장했다. 86세대가 중심이 된 ‘해방전후사의 인식’이다. 그들 가운데 ‘미군 점령 4년사’의 저자인 송광성은 ‘1945년 8월 15일은 ‘해방의 날’이 아니라‘분단의 날’인 동시에 미국의 신식민지로 전락한 날’이라고 했다. 이처럼 분단사관을 주장하는 역사가들은 ‘1948년 건국설’을 강하게 부정하고, 이승만 정부를 분단을 고착화시킨 반민족세력으로 매도했다. 한반도에는 남과 북에 두 개의‘국가’가들어선 것이 아니라, 두 개의 ‘정부’가 수립됐다는 주장이다.

▲‘1948년 건국설’ 반대 및 분단사관 주창 학자들 논리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그들 논리 대로라면 2022년 등장한 윤석열 정부는 아직 건국이 되지 않은 채 ‘분단 79년’을 맞는 임시정부인 셈이다. 그러나 현실은 전혀 다르다. 1991년 9월 18일 제46차 유엔총회에서 남·북한은 각기 별개 의석을 가진 회원국으로 유엔에 동시 가입했다. 2022년 4월 현재 대한민국은 191개국과 외교관계를 맺고 있으며,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과 이종욱 세계보건기구WHO 사무총장 등 다수의 국제기구 지도자들을 배출했다. 이밖에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를 비롯한 여러 국제기구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감당하고 있다. 이렇게 전 세계가 대한민국을 선진국가로 인정하는데, 분단사관에 얽매여 아직도 대한민국이 국가가 아니라 정부라고 우기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억지주장이다.“

▲1948년 건국절 제정 주장 배경은.

”이승만학당 교장인 이영훈 서울대 명예교수는 2006년 7월 동아일보에 실은 ‘우리도 건국절을 만들자’는 칼럼을 통해서 ‘그해2008년부터 지난 60년간의 ‘광복절’을 미래지향적인 ‘건국절’로 바꾸자’고 제안했다. ‘대한민국은 모든 나라에 있는 건국절이 없는 나라이다. 나에게 1945년 광복과 1948년의 제헌, 둘 중에 어느 쪽이 중요한가? 라고 물으면 단연코 후자이다. 대한민국의 헌법은 우리 2000년의 국가 역사에서 처음으로‘국민주권’을 선포했고, 국민 모두의‘신체의 자유’를 보장하지 않는다. … 대다수의 민초에게 조선 왕조는 행복을 약속하는 문명이 아니었다. 그러니까 진정한 의미의 빛은 1948년 8월 15일의 건국 그날에 찾아왔다. 우리도 그날에 국민 모두가 춤추고 노래하는 건국절을 만들자’는 게 요지였다.

▲1948년 건국절 논쟁이 학계 논쟁으로 비화한 배경은.

“이영훈 교수의 주장은 2008년 2월 25일 이명박 정부 출범으로‘건국 60년 기념식’을 성대하게 치르는 데는 성공했지만, 이후 건국절 제정을 둘러싼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역사학계는 이영훈 교수의 ‘일제 식민지 근대화론’에 대한 비판과 함께 건국절을 둘러싼 싸움이 본격화했다. 결국 광복회가 중심이 된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에서 헌법재판소에 위헌 소송을 제소하는 사태로 발전했다. 이로 인해‘건국절 제정’시도는 사회적인 혼란만 야기한 채 용두사미로 끝나고 말았다.”

▲다시 건국절 제정 논쟁으로 번진 배경은.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2018년 건국절 논쟁은 대한민국건국70주년기념위원회로 재등장했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과 문재인 정부의 출범으로 인해 정부 차원의 공식 행사는 없었지만, 심재철 국회의원실과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포럼’이 공동주최한 ‘대한민국건국과 발전 심포지엄’에서 양동안·이영훈·유동열·김광동·김태훈 등이 발표자로 나서 대한민국 건국 70년을 주장했다. 그러나 내용상으로 이전의 주장과 달라진 점을 발견하기가 어려웠다. 이후 건국절 주장의 대표 세력은 이영훈서울대 명예교수·김낙년한국학중앙연구원장·주익종낙성대경제연구소 이사이 중심인 낙성대경제연구소로 이들의 공동 저서인 ‘반일종족주의’가 친일 시비를 낳고 있다.”

▲이승만과 김구 누가 국부國父인지 논쟁이 있다. 김 관장이 이승만과 김구를 좌우로 편 가르기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저는 그런 주장을 한 적이 없고, 오히려 그 편가르기 주장에 반대 입장이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공과가 존재한다. 역사적 인물에 대한 평가도 마찬가지다. 국제정세를 정확하게 판단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통일 노선보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우선해 국가의 기초를 다진 이승만과 당시의 상황은 비현실적이었지만 통일을 강조해 미래‘통일 한국’을 위한 이상의 기초를 심어놓은 김구 두 사람의 선택에 괴리는 있었지만, 본질적으로 우리 국민을 위한 고민은 마찬가지였다. 이런 점을 감안할 때, 우리 사회는 미국처럼 ‘건국의 아버지들’에 대한 상대 진영 입장을 상호 존중하도록 이끌어 주는 역사 인식으로서 ‘국민통합사관國民統合史觀’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이승만과 김구는 우리 역사상 처음으로 근대적 국민국가를 창건한 정치지도자이다. 김구는 ‘국부는 이승만 박사 한 사람뿐’이라고 겸양의 말을 했지만, 이승만과 김구는 대한민국을 만든 국부라고 할 수 있다. 김구가 없었더라도 건국될 수 있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임시정부는 1948년 대한민국 건국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으며, 백범이 있었기에 임시정부가 유지됐다. 임시정부 덕분에 대한민국에 적법성이 있는 것이다.”

김 관장은 독립기념관장 공모에 도전하게 된 것은 “독립정신을 널리 알려 국민통합에 기여할 분을 찾는다는 공고 때문이었다”며 “ 역사전쟁을 끝내지 않고는 좌우의 진영 대결을 해결할 수 없고, 갈등공화국 대한민국의 장래도 비관적이라는 확신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김 신임 관장은 건국대 사학과를 졸업한 뒤 서울 오산고등학교에서 교편을 잡으면서 주경야독으로 단국대 대학원에서 사학 석사를, 경희대 대학원에서 사학 박사를 취득했다. 이후 총신대 교수를 지냈으며, 안익태기념재단 연구위원장, 한민족복지재단 회장, 고신대 석좌교수를 역임했다.그는 대한민국 역사와 미래 이사장으로서 알려지지 않은 독립운동가 재조명 및 선양 홍보 방안 등을 발표하며 활발한 활동을 해왔다. 총신대에서 역사를 가르치던 중, 1995년 북한의 대홍수 소식을 듣고 ‘인도지원사업’에 투신하였다. 이듬 해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설립에 참여하여 초대 사무총장을 지내고, 한민족복지재단 회장과 통일과나눔재단 운영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이 시기 NGO로 ‘뉴밀레니엄지구촌빈곤퇴치운동’ ‘한민족어린이돕기 네트워크’ 등의 활동으로 UN경제사회이사회가 개최한 제1회 국제NGO혁신박람회에 아시아 대표로 선정되기도 했다.‘독립운동가 남강 이승훈 선생에 관한 연구’, ‘일재 김병조의 민족운동’ 등 다양한 연구성과를 창출한 학자이다.

정충신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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