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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희룡이 격찬한 박정희 영화가 감추고 있는 것 [김종성의 히, 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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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162회 작성일 24-07-11 1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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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성의 히,스토리] 4.19 생략해버리고, 박정희 집권기 노동착취도 외면

[김종성 기자]

원희룡이 격찬한 박정희 영화가 감추고 있는 것 [김종성의 히, 스토리]
영화 <박정희, 경제대국을 꿈꾼 남자> 포스터 박정희,>
ⓒ 메가박스중앙㈜


지난 10일 뮤지컬 영화 <박정희: 경제대국을 꿈꾼 남자> 가 개봉했다. 배우들의 뮤지컬 연기가 주를 이루는 가운데, 사진과 동영상이 중간중간 삽입된 <박정희: 경제대국을 꿈꾼 남자> 는 청년 박정희가 육영수와 결혼한 시점부터 박정희가 1979년 10·26사태로 숨진 시점까지를 다룬다. 영화는 두 시점 사이를 박정희의 경제대국 꿈과 육영수의 헌신적 내조로 채운다.

영화는 박정희에게 이전 시대 부조리의 전복자라는 이미지를 부여한다. 서울 동대문시장을 배경으로 이 이미지가 형상화된다.


"비단! 비단 사세요", "구두 딱! 번쩍번쩍", "두부요! 두부요! 따끈한 두부가 왔어요!". "자, 엿 사세요!"라는 상인들의 외침이 곳곳에서 나오고 이들의 수다가 이어진 뒤, 한 표를 호소하는 선거운동원들이 등장하고 상인들을 갈취하는 정치깡패 이정재 그룹이 출현한다.

자유당과 한편인 깡패들은 상인들 앞에서 "이번 3·15 보궐선거에서 저희 당만 뽑아주신다면 여러분의 삶을 윤택하게 해드리겠습니다"라며 위협조로 호소한다. 이승만의 몰락을 자초한 1960년 3·15 부정선거 직전 상황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이 장면에서 군인들이 무대로 올라온다. 이들은 "뭐 하는 짓들이야?"라며 깡패들에게 고함친다. 군인들은 "야! 너, 내가 누군지 몰라? 나 동대문의 이정재야!"라고 호통치는 이정재를 제압하고 동대문시장에 평화를 가져다준다.

이 장면은 언뜻 보면 사실을 그대로 묘사한 장면처럼 비쳐진다. 박정희 쿠데타 닷새 뒤인 1961년 5월 21일 군인들이 이정재를 비롯한 깡패 200명 가량을 서울 시내에서 끌고 다니며 망신을 준 것은 사실이다. 경찰 이상의 위세를 부린 이 정치깡패들이 "나는 깡패입니다. 국민의 심판을 받겠읍니다", "깡패 생활 청산하고 바른생활 하겠읍니다"라는 팻말과 함께 덕수궁에서부터 시내 중심가를 행진하는 모습은 당시 사람들에게 통쾌감을 선사했다.

그런데 이 영화는 정치깡패들이 1960년 3·15부정선거에 가담하면서 시민들을 협박하는 장면을 보여준 뒤에 박정희 쿠데타군이 이들을 진압하는 장면을 연속해서 보여준다. 3·15가 5·16에 의해 전복된 듯한 인상을 주는 장면 배치다.

4.19 혁명 생략하고 5.16쿠데타 띄워주기

3·15부정선거로 상징되는 이승만의 독재와 부조리를 무너트린 것은 두말할 것도 없이 1960년 4·19혁명이다. 박정희는 3·15를 뒤엎으며 등장한 게 아니라 4·19를 뒤엎으며 등장했다. 그런데도 이 영화는 3·15가 5·16에 의해 극복된 듯한 인상을 풍긴다. 4·19가 아니라 5·16이 이전 시대를 혁명했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장치다.

4·19를 아예 생략해 버리는 이 같은 접근법은 역사해석의 문제가 아니라 역사왜곡의 문제다. <건국전쟁> 보다 한술 더 뜨는 접근법이다.

<건국전쟁> 은 3·15는 이승만과 무관하다는 전제를 깔아놓은 상태에서 3·15가 4·19를 초래했다는 점을 인정했다. 그러면서 4·19의 원동력인 민주주의적 역량이 이승만 집권기의 민주주의 교육에서 비롯됐다는 주장도 내놓았다. 또 이승만이 4·19 때 부상당한 학생을 보면서 울었다는 이야기도 들려준다. 3·15와 4·19라는 거대한 산은 손대지 않은 상태에서 3·15는 이승만과 무관하게, 4·19는 이승만의 공로로 재해석하는 방식을 선보인 것이다.

이에 반해 <박정희: 경제대국을 꿈꾼 남자> 는 4·19를 아예 없애버렸다. 그런 뒤 5·16을 그 자리에 갖다 놓았다.

영화가 강조하는 또 다른 메시지는 박정희가 오로지 경제개발에만 올인했다는 점이다. 미국 의회의 <프레이저 보고서> 는 박정희의 경제개발이 자신과 집권세력의 치부를 감추고, 권력연장을 위한 것이었음을 증명하지만, 이 영화는 그저 박정희를 경제개발의 메시아처럼 띄운다.

그런 메시지는 영화 곳곳의 대사와 노래로도 표현되지만, 아무래도 가장 강력한 메시지는 이병철 삼성그룹 회장이 박정희에게 표시한 신뢰감을 통해 형상화된다고 볼 수 있다. 영화 속의 이병철은 국민들의 세끼 밥을 염려하는 박정희의 진심을 확인한 뒤 "저희 기업인들도 대통령의 뜻을 따라 만반의 힘을 쓰겠습니다"라며 충성을 맹세한다. 이병철의 보증을 통해 경제개발에 대한 박정희의 진심을 입증하고자 했다고 볼 수 있다.

박정희 집권기의 경제성장은 저임금과 국가폭력의 산물이다. 재벌은 노동자들에게 생존이 가능할 정도의 저임금만 지불하고, 국가는 공권력을 동원해 노동자들의 저항을 억눌렀다. 비슷한 일이 다른 나라나 다른 시대에 벌어졌다면, 역사학자들은 이를 경제성장보다는 경제착취 등으로 더 많이 표현하게 된다. 굳이 성장이란 표현을 써야 한다면, 국가경제나 국민경제의 성장이 아니라 독재자와 재벌의 경제성장이라 해야 맞다.

경제성장의 공만 박정희에게... 노동착취는 분리
지난 6월 25일 오후 서울 용산 CGV에서 영화 박정희: 경제대국을 꿈꾼 남자 프리뷰 VIP 시사회가 열렸다. 사진은 이날 행사 입구에 설치된 포스터.
ⓒ 연합뉴스


박정희 때의 경제성장과 노동착취를 어떻게 볼 것인가에 대한 대답이 이 영화에서도 제시된다. 근로기준법 준수를 외친 전태일 열사의 분신1970.11.13.에 대한 박정희와 육영수의 반응을 통해 그 대답이 나온다.

비서관으로부터 전태일 소식을 들은 육영수는 "어떻게 이런 일이"라며 "저한테 먼저 연락했다면 제가 미리 가봤을 텐데"라고 안타까워 한다. 박정희는 "업주들의 노동 착취가 가장 문제였어"라며 근로기준법을 준수하지 않는 기업인들에게 책임을 전가한다. 노동착취 속의 경제성장에서 노동착취는 박정희와 분리시키고 경제성장만 박정희와 결합시키는 접근법을 택한 것이다.

박정희의 경제개발이 세상에 이로웠는지 아닌지는 그 시대 사람들의 반응에서 가장 정확히 입증된다. 박정희가 독재는 했을지라도 세상을 윤택하게 해줬다면, 박정희 집권 18년 내내 국민들의 저항이 끊이지 않은 이유를 설명할 수 없게 된다.

학생과 언론인 등만 박정희 체제에 저항한 게 아니었다. 직접 나서지 않은 시민들도 박정희를 찍어주지 않을 것임을 잘 알고 있었기에, 박 정권은 대통령 직선제를 폐지하고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에 의한 대통령 선출과 대통령의 국회의원 3분의 1 추천이라는 해괴한 방식까지 도입하게 됐다. 박정희가 세상을 이롭게 해서 대중이 박정희를 지지했다면, 유신체제 같은 기괴한 장기집권 시스템이 등장했을 리 없다.

그런데 이 영화는 그 같은 민중의 저항과 이에 아랑곳않는 박정희의 대응이 어우러져 박정희의 경제대국 꿈이 완성됐다는 식의 논법을 제시한다. 영화는 1974년에 죽은 육영수와 5년 뒤에 죽은 박정희를 마지막 대목에서 함께 등장시킨 뒤 박정희의 진심과 의지와 승리를 뮤지컬 노래로 형상화하는 장면을 보여준다. 자신을 몰라주는 민중의 저항 속에서도 꼿꼿이 자기 길을 가다가 사라진 영웅의 모습이 영화 막판에 그렇게 형상화된다.

보도에 따르면, <박정희: 경제대국을 꿈꾼 남자> 를 관람한 원희룡 전 국토교통부 장관은 "박정희 정신과, 불가능에 도전했던 그 도전정신"을 배웠다고 말하고, 황교안 전 국무총리는 "너무 감격스럽다"며 "박정희 정신을 되살려 편안한 나라를 만들자"고 호소했다. 이 영화가 역사왜곡에 기반해 있다는 점을 도외시한 감상평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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