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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상 수상자 된 가출 소녀…"돈 속에서 헤엄치긴 싫다" 특허도 안 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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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수집기 작성일 23-09-19 03:05 조회 12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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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기사
[테크노 사이언스의 별들]
미국 첫 여성 노벨화학상 수상
‘바이오 여제’ 프랜시스 아널드

생명을 바라보는 인류의 시각은 1859년 찰스 다윈이 펴낸 ‘종種의 기원’ 전후로 나뉜다. 다윈은 사람을 비롯한 생명체를 창조한 것이 조물주가 아닌 자연이라고 했다. 다양한 개체가 무작위로 지구 상에 나타나고, 그 가운데 생존에 유리한 개체만 살아남는 ‘진화進化의 법칙’이 오늘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누가 살아남고 누가 어떤 식으로 진화할지 미리 알아내기는 불가능했고, 자연의 선택을 기다리는 것이 당연시됐다. 미국 화학공학자 프랜시스 아널드Frances Hamilton Arnold·1956~가 등장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아널드는 1993년 단백질을 생성하는 박테리아를 원하는 대로 바꿀 수 있는 유도 진화Directed evolution 기술을 개발하면서 진화 법칙을 깼다. 자연의 진화에는 수만~수억 년이 필요하지만, 아널드는 불과 몇 주 만에 실험실에서 이를 이뤄냈다. 그가 만들어낸 생명의 연금술은 바이오 의약품과 바이오 연료를 탄생시키며 제약과 재생에너지의 패러다임을 바꿔놓았다. 과학계에서는 아널드를 “생명의 코드를 다시 쓴 인물”로 평가한다.

진화의 법칙 깬 생명의 연금술사 - 프랜시스 아널드 캘리포니아공과대칼텍 교수가 실험실에서 단백질 합성 결과물을 살펴보고 있다. 아널드는 인위적으로 진화의 방향성을 결정할 수 있는 유도 진화를 개발해 바이오 의약품과 바이오 연료 탄생의 역사를 열었다. /칼텍

진화의 법칙 깬 생명의 연금술사 - 프랜시스 아널드 캘리포니아공과대칼텍 교수가 실험실에서 단백질 합성 결과물을 살펴보고 있다. 아널드는 인위적으로 진화의 방향성을 결정할 수 있는 유도 진화를 개발해 바이오 의약품과 바이오 연료 탄생의 역사를 열었다. /칼텍

◇가출 일삼던 문제 소녀

미국 피츠버그에서 태어난 아널드는 심각한 문제 학생이었다. 학교 숙제는 무시했고, 툭하면 수업도 빼먹었다. 학교 생활이 너무 지루하다는 이유였다. 집안 분위기는 그를 용납하지 않았다. 3성 장군의 아들이자 유명 핵물리학자로 원자력 기업 웨스팅하우스 연구 책임자였던 아버지 윌리엄은 아널드의 일탈이 다른 네 자식에게 미칠 악영향을 걱정했다. 열다섯 살 때 “계속 선을 넘으면 함께 살 수 없다”고 경고하자 아널드는 “그럼 떠나겠다”며 집을 나갔다. 그 길로 히치 하이킹으로 워싱턴으로 향해 베트남 반전 시위에 참여했다. 나이를 속여 피자 가게 아르바이트, 청소 대행, 재즈 클럽 바텐더, 택시 운전을 하며 생계를 꾸렸다. 그가 청소를 한 곳 가운데는 당대 최고 과학철학자 토머스 쿤의 집도 있었다. 특히 택시 운전을 좋아했는데, 다른 아르바이트보다 돈을 서너 배 많이 벌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않았고 자칭 ‘평균보다 못한 학생’이었지만, 아널드는 만점에 가까운 미국 대입자격시험SAT 성적과 남다른 학창 시절 경험을 담은 자기소개서를 앞세워 명문 프린스턴대에 입학했다. 전공은 기계 및 항공우주공학이었다. 전공 선택 이유도 독특했다. 아널드는 프린스턴 동문회보 인터뷰에서 “기계공학이 공학 학위를 받기 위한 필수 과목이 가장 적었다”면서 “남는 시간은 경제학과 미술사, 외국어 수업을 듣는 데 썼다”고 했다.

그래픽=정인성

그래픽=정인성

◇칼텍 최초 여성 교수

아널드의 방랑은 대학 시절에도 계속됐다. 2학년을 마친 뒤 이탈리아로 날아가 원자로 부품을 만드는 공장에 취직했는데 스쿠버 다이빙, 스키, 하이킹이 본업이었다. 당시 아널드는 5국어를 구사했고 기타·피아노·파이프오르간을 연주할 수 있었다. 아널드가 프린스턴으로 돌아왔을 때는 격변기였다. 1970년대 오일 쇼크와 스리마일 원전 사고를 겪으며 미국 엔지니어들은 에너지를 생산하는 새로운 방법을 개발하는 데 골몰하기 시작했다. 지미 카터 대통령은 “2000년까지 재생에너지 비율을 20%로 늘리겠다”는 국가 전략을 발표했다. 사회문제에 관심이 많았던 아널드는 1979년 졸업과 동시에 콜로라도 태양에너지 연구소에 취업했다. 문제는 이런 정책이 얼마 가지 않았다는 점이다.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 당선되자 미 정부는 재생에너지 지원을 대폭 축소했고, 아널드는 버클리 캘리포니아대UC버클리에서 화학공학 학위 과정에 진학했다. 실험실에서 그는 유전자DNA가 세상을 바꾸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A·T·G·C 네 가지 염기 서열로 DNA를 문자로 해석하고, 조작도 가능하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있을 때였다. 모두가 DNA 분석에 매달릴 때 아널드는 다른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바로 “이미 있는 유전자를 활용하기보다 유전자를 처음부터 설계하는 것이 더 나은 방법 아닐까”였다. 물론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었다. 캘리포니아 공과대칼텍 화학공학과 최초의 여성 교수가 된 이후에도 실패가 이어졌다.

◇실험실에서 만들어낸 진화

아널드가 찾아낸 해결책은 자연의 섭리를 따라 하는 것이었다. 그는 ‘엔지니어링 앤드 사이언스’ 기고에서 “자연이 우리가 아는 최고의 생명공학자인 만큼, 진화 과정을 모방하면 원하는 유전자를 만들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고 했다. 아널드가 고안한 기술은 단순하지만 혁명적이었다. 그는 DNA에 무작위로 인위적 돌연변이가 만들어지도록 한 뒤 이를 박테리아에 삽입했다. 이 박테리아는 단백질의 일종인 효소를 생산하는데, 효소는 특정한 반응을 유도하는 열쇠인 촉매 역할을 한다. 아널드는 이렇게 만든 효소를 대량으로 모아 일종의 라이브러리도서관를 구축한 뒤 원하는 기능을 가진 효소만을 빠르게 검색하는 방법을 찾아냈다. 실험실에서 대량의 진화를 구현한 다음 그 가운데 필요한 것만 취하면서 진화의 방향성을 결정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가 37세에 이룬 업적이었다. 예를 들어 영양분 및 약물 전달과 체내 대사에 도움을 주는 사이토크롬 P450 단백질은 수천만 년 진화를 거쳐 자연에 존재하는 물질이다. 원래의 P450은 산소와 상호작용하는데, 아널드는 유도 진화를 이용해 P450이 탄소와 질소를 작용하도록 바꿔놓았다. 그 결과 유전자 변형 P450은 벌이나 동물에게 치명적이지 않은 살충제를 생산하거나, 자기공명영상MRI 조영제를 만드는 데 활용된다.

◇다섯 번째 여성 노벨 화학상 수상자

아널드의 기술은 대사공학이라는 새로운 학문의 탄생으로 이어졌다. 자연에 존재하는 셀 수 없이 많은 효소를 진화시켜 원하는 단백질과 물질을 만들어내는 ‘생물 공장’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이후 조지 스미스 미주리대 교수와 그레고리 윈터 영국 분자생물학연구소 박사는 아널드의 기술을 발전시켜 진화를 유도한 효소를 대량생산하는 방법을 찾아냈다. 이후 본격적인 생물 공장 시대가 열렸다. 전 세계 매출 1위 의약품인 류머티스 관절염 치료제 휴미라, 알츠하이머·자가면역질환 치료제 같은 획기적 신약은 물론 바이오 디젤, 제조 과정에서 오염 물질을 배출하지 않는 화학제품이 탄생했다. 아널드와 스미스, 윈터 세 사람은 2018년 노벨 화학상을 공동 수상했다. 노벨위원회는 “이들은 다윈의 원리를 시험관에 적용해 인류에게 가장 큰 이익을 주는 새로운 물질을 개발했다”면서 “진화에 기반한 혁명”이라고 했다. 아널드는 마리 퀴리, 이렌 졸리오 퀴리, 도러시 크로풋 호지킨, 아다 요나트에 이어 노벨 화학상을 받은 역대 다섯 번째 여성이자 미국 최초 여성이 됐다. 아널드는 미 과학·의학·공학한림원에 모두 선출된 첫 여성이기도 하다. 아널드의 기술은 수많은 이점에도 생명체를 인위적으로 조작하는 비윤리적 행동이라는 비판을 받는다. 그는 이에 대해 “나는 창조자가 아니라 진화론자이자 사육사”라며 “결국 모든 것을 창조하는 것은 자연”이라고 했다.

◇두 남편, 아들과 사별

아널드는 자신의 성과가 연구실에만 머무르는 것을 원치 않았다. 그는 평생 수많은 특허를 획득했지만, 정작 ‘유도 진화’와 관련해서는 아무 특허도 출원하지 않았다. “많은 사람이 자유롭게 활용해 더 깨끗한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는 취지였다. “돈 속에서 헤엄치고 싶지는 않다”면서도 과학의 가치를 입증하는 상용화에는 적극적이었다. 2005년 이후 제자들과 함께 제약, 바이오 연료 분야에서 세 회사를 창업했고 지금도 참여하고 있다. 유전자 분석 회사 일루미나와 구글 모회사 알파벳 이사로도 일했고, 2021년부터는 조 바이든 대통령의 과학기술자문위원회 외부 공동 의장을 맡고 있다. 그는 “과학에 대한 미국 국민의 신뢰를 다시 확립하기 위해 자리를 수락했다”고 했다.

최고의 과학자가 됐지만, 인생은 순탄치 않았다. 생화학공학을 개척한 제이 베일리와 칼텍에서 만나 결혼했지만 2001년 사별했고, 사실혼 관계였던 천체물리학자 앤드루 레인지는 2010년 우울증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2005년 유방암에 걸려 투병하기도 했고, 둘째 아들 윌리엄은 2016년 20세에 사고로 사망했다. 2020년에는 과학 인생 최악의 시련을 겪었다. 2019년 5월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에 발표한 아널드 연구실의 논문이 재현이 불가능하고, 주요 데이터가 누락됐다는 점이 밝혀져 철회됐기 때문이다. 당시 아널드는 “내 할 일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고 사과했다. 논문 조작이나 표절 의혹을 받은 과학자가 대부분 끝까지 변명으로 일관하는 것과 달리 곧바로 잘못을 시인한 것이다. 그는 “아무도 시간을 낭비하지 않도록 공개적으로 인정하는 것이 가장 빠른 일이고, 내가 정직하게 답한다면 용서를 받을 것으로 믿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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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건형 기자 defying@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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