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아연 경영권 분쟁 한 방 정리…자사주 프리미엄 매수 합법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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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날 때까지는 끝난 게 아니다.” 미국 프로야구의 전설급 선수였던 뉴욕 양키스 요기 베라가 했다는 이 말은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겠다.
고려아연은 장씨 집안과 최씨 집안이 공동 창업한 영풍그룹의 계열사다. 대주주는 영풍인데 고려아연 경영은 최씨 집안 3세인 최윤범 회장에게 맡겨졌다. 최 회장과 장씨 집안은 고려아연 경영 방향 등을 놓고 최근 수년 동안 갈등을 빚어왔다. 지난 9월 중순께 영풍은 최 회장 중심의 이사회를 뒤엎기 위해 사모펀드운용사 엠비케이MBK파트너스와 손잡고 고려아연 주식 공개매수를 선언했다. 이후 주가가 오르자 매수 가격을 주당 66만원에서 75만원으로 상향 조정했다.
공개매수는 매수자가 기간과 가격, 물량을 사전에 공지하고 장외에서 주주들로부터 주식을 사들이는 행위다. 시장은 엠비케이연합의 공개매수 성공 가능성을 아주 높게 평가했다. 9회 말 투아웃에 투스트라이크를 잡아낸 상황으로 판단한 것이다. 그러나 지난 2일 최 회장 쪽이 3조1천억원을 투입해 대항공개매수매수 가격 83만원에 나설 것이라 공식 선언하자, 이틀 뒤인 4일 엠비케이연합 역시 매수 가격을 83만원으로 재상향하면서 이 분쟁의 결말은 누구도 장담할 수 없게 됐다. 엠비케이연합의 매수 시한은 4일이었으나 14일로 정정됐고, 최대 14.56%까지 사들일 계획이다. 최 회장 쪽의 매수 주체는 고려아연이다. 다시 말해 고려아연이 자기주식자사주을 공개매수 형식으로 취득하겠다는 것이다. 총 매수 예정 물량은 18%인데, 최 회장 쪽과 손잡은 글로벌 사모펀드운용사 베인캐피탈이 2.5%를 사들인다.
매수 가격은 주당 83만원으로, 엠비케이연합과 같다매수 시한은 24일. 최 회장 쪽이 다시 매수 가격을 높여 대응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현재로선 이번 ‘쩐의 전쟁’ 향방을 전망하기는 어렵다. 엠비케이연합이 매수 가격을 83만원까지 올린 것은 고려아연 주가가 4일 75만원을 뚫었기 때문이다.
3조1천억원이냐, 586억원이냐
시장에서는 고려아연이 공개매수 방식의 자사주 취득에 제동이 걸릴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며, 엠비케이연합이 제기한 소송이 주주들의 응모 전략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우선 영풍은 지난 2일 고려아연 이사진이 자사주 매수 결의를 하자마자 배임 혐의로 형사고소했다. 또 고려아연의 자사주 매수 절차를 중지해달라는 가처분 신청을 법원에 제기했다. 공개매수 이전의 평소 고려아연 주가는 55만원대에서 움직였다. 공개매수 프리미엄으로 고려아연 주가가 과거 시세나 실질가치보다 훨씬 높아졌는데, 이 가격을 기준으로 자사주를 비싸게 취득하는 것은 업무상 배임에 해당한다고 영풍은 주장했다.
배임 논란보다 더 눈여겨볼 만한 대목이 있다. 자사주 취득 한도에 대한 논쟁이다. 엠비케이연합은 고려아연이 매입 가능한 자사주 규모가 586억원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고려아연이 추진하는 2조7천억원 규모의 자사주 취득은 위법하다는 이야기다. 이에 반해 최 회장 쪽은 상법 규정을 따랐으므로 문제 될 것이 없다고 반박하고 있다.
회사는 이익이 있어야 배당이 가능하다. 여기서 말하는 이익이란 상법에서 정한 ‘배당가능이익’을 말한다. 배당가능이익은 상장사가 자사주를 취득할 수 있는 한도가 되기도 한다. 상법상 배당가능이익을 산출하는 공식을 크게 보면, 순자산자본총액에서 법정적립금자본준비금과 이익준비금 등을 제외한 금액이다. 이를 적용하면 고려아연의 배당가능이익이 약 6조원 정도라는 데는 양쪽 견해가 일치한다. 그러나 엠비케이연합은 법정적립금 외에 임의적립금까지 고려해야 법적으로 문제없는 자사주 취득 한도를 산출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고려아연 반기보고서를 보면 지난 6월 말 별도재무제표 이익잉여금은 약 7조3500억원이다. 이 가운데 법정적립금은 497억원에 불과한 반면 임의적립금은 무려 6조6300억원에 이른다. 임의적립금은 회사가 미래 특정 목적 달성을 위해 이익잉여금 중 일부를 사내에 회계상으로 적립시킨 것을 말한다. 실제 현금 적립은 아니다. 고려아연의 임의적립은 크게 두가지다. 자원사업 투자에 필요하다며 약 3조2200억원, 해외 투자를 이유로 약 3조4100억원이 누적되어 있다. 임의적립 규모가 이처럼 이익잉여금 총액의 90%에 이르는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배당가능이익금’의 상이한 계산
회사가 임의적립을 하는 이유는 특정 목적 달성을 위해서는 이익잉여금이 배당 등으로 유출되는 것을 막을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주주들의 몫인 이익잉여금에 대해 배당 제한을 거는 것이므로 사외로 유출되는 재원을 줄이는 효과가 있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고려아연의 이익잉여금 가운데 법정적립금과 임의적립금을 제외했을 때 산출되는 미처분이익잉여금은 6259억원이다. 이것이 추후 배당 등에 활용할 수 있는 실제 재원이 되는 셈이다. 고려아연은 이후 올해 3월 주총에서 미처분이익잉여금에 대한 처분 내용배당, 임의적립 등이 담긴 재무제표를 승인받았다. 이를 고려했을 때 현재 실질적으로 배당 가능한 이익잉여금은 586억원에 불과하다는 게 엠비케이연합의 주장이다.
간단하게 말해 자사주 취득 한도의 기준이 되는 배당가능이익을 산출할 때 임의적립금은 제외하는 것이 적립 취지에 맞는다는 이야기다. 엠비케이연합은 임의적립금을 헐어 배당가능이익에 포함시키려면 임의적립 목적을 변경해야 하고, 이는 주총 의결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고려아연이 이사회만으로 의결한 것은 위법하다고 말한다. 영풍 관계자는 “수십년간 목적을 특정해 적립해온 임의적립금의 목적 전환을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은 주총에 있다는 법률 자문을 받았다”고 말했다.
이에 대한 고려아연 쪽의 반박은 간단하다. 상법에 명문으로 규정된 배당가능이익에 따르면 약 6조원으로 산출되는 게 맞고, 이 금액이 바로 자사주 취득 한도라는 것이다. 회사 쪽 조현덕 변호사김앤장법률사무소는 지난 2일 기자간담회에서 법원 판례나 학설 모두 임의적립금을 배당가능이익에 포함시키는 쪽이라고 말했다. 공개매수의 승패가 어떻게 나든 양쪽 간 법적 분쟁은 당분간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MTN 기업경제센터장
‘기업공시 완전정복’ ‘이것이 실전회계다’ ‘하마터면 회계를 모르고 일할 뻔했다’ ‘1일 3분 1회계’ ‘1일 3분 1공시’ 등을 저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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