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 MZ직원 무더기 반대…"재고용 선배들 욕심 과해" > 경제기사 | economics

서울 양재동 현대차 본사 모습. /김범준 기자

정년퇴직 후 계약직촉탁직으로 재고용된 ‘숙련 재고용 직원’을 노조에 가입시키려 한 현대자동차 노동조합의 시도가 내부 조합원 반대로 무산됐다. MZ세대밀레니얼Z세대와 중장년층 조합원들이 “선배들이 퇴직 이후에도 기득권을 놓치지 않으려 한다”는 이유 등으로 대거 반대표를 던진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사태로 퇴직 후 재고용된 직원을 다시 노조로 끌어들여 세를 불리려는 노동계 움직임에 제동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금속노동조합 현대차지부는 14일 임시대의원대회를 열고 숙련 재고용 직원의 노조 가입을 허용하는 현대차지부 규정 개정 안건을 상정해 투표한 결과, 해당 안건이 부결됐다고 밝혔다. 대의원 총 466명 중 269명이 표결에 참여해 32명11.9%의 찬성표를 얻는 데 그쳤다. 대의원 과반수 참석 요건은 채웠지만 3분의 2 이상 찬성 요건엔 턱없이 모자랐다.

안건은 숙련 재고용 직원에게 노조 지부장 등 임원 투표권, 단체교섭 잠정합의안 찬반 투표권, 쟁의행위파업 찬반 투표권을 주는 내용이 핵심이다. 안건이 통과되면 퇴직 후 재고용된 직원도 본인이 임원 후보로 나설 수 있는 권한을 제외하면 기존 조합원과 같은 권리를 가진다.


당초 안건 통과를 자신한 노조 집행부는 안건이 큰 표 차로 부결되자 당황한 것으로 알려졌다. 노조 집행부는 “촉탁직에게 조합원 자격을 줄 때 고려해야 할 여러 문제를 두고 대의원들이 이견을 좁히지 못해 최종적으로 부결됐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경제계는 “합리적인 결론이 나왔다”며 결과를 반겼다. 장정우 한국경영자총협회 노사협력본부장은 “촉탁직이 노조에 가입하면 정년까지 근무하는 이들을 대상으로 설계된 노조 단체협약의 취지에 맞지 않게 된다”며 “업무상 필요에 따라 회사가 촉탁직을 유연하게 활용할 수 있는 길까지 막힐 것”이라고 말했다. 노조 안팎에선 이번 투표 결과에 대해 정년퇴직 후 계약직촉탁직 직원들의 노조 가입을 탐탁지 않게 여기는 젊은 조합원과 중장년층이 대거 반대표를 행사한 결과라고 해석했다. MZ세대밀레니얼Z세대 직원들은 퇴직 후 재고용된 선배들의 노조 가입이 회사의 원가 경쟁력을 떨어뜨릴 뿐 아니라 본인들에게 돌아올 몫까지 줄일 수 있다고 우려한 것으로 알려졌다.

30대인 한 현대자동차 직원은 “회사가 부담할 수 있는 인건비는 정해져 있는 상황에서 은퇴한 선배들이 후배를 희생시켜 임금을 더 챙기는 것 아니냐”며 “선배들이 기존에 하던 쉬운 일만 전담한다는 불만도 많다”고 말했다. 다른 30대 직원은 “촉탁직 선배들은 기존에 몸담은 공정에서 하던 일을 계속할 수 있는 특권을 누린다”며 “쉽고 편한 공정은 촉탁직이 꿰차 젊은 직원들 사이에서 불만이 컸다”고 말했다.

일부 장년층 조합원은 “퇴직한 선배들이 여전히 노조의 주도권을 쥐려는 게 아니냐”며 반대표를 던진 것으로 전해졌다. 노조 한 관계자는 “중장년 근로자들도 퇴직한 선배가 가입할 경우 단체협상 등 과정에 이들의 이해관계에 끌려다닐 수 있다는 걱정을 했다”고 털어놨다.

현대차와 기아의 숙련 재고용 제도는 그동안 노사가 ‘윈윈’하는 제도로 여겨졌다. 회사 측은 상대적으로 저렴한 비용으로 양질의 인력을 확보하고, 현장 직원들은 정년 이후 2년간 일을 더 할 수 있어서다. 현대차·기아는 이런 제도를 2019년부터 기술직 및 정비직 정년 퇴직자를 대상으로 시행했다. 이런 촉탁직 처우 문제는 내년부터 베이비붐 세대 정년퇴직이 본격화함에 따라 제조업 현장의 중요한 이슈로 부상하고 있다. 현대차와 기아에선 매년 각각 2500명, 1300명 안팎의 촉탁직이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경제계와 노동계는 현대차의 촉탁직 노조 가입 문제를 유심히 지켜보고 있다. 최근 퇴직 후 재고용된 직원을 가입시키려는 노조가 잇따르고 있어서다. 금속노조의 기아지부 일부 지회는 지난 7일부터 1963년생 조합원들로부터 노조 가입 신청서를 받는 것으로 확인됐다. 60세 이상 촉탁직을 노조에 가입시킬지 결정하기에 앞서 사전 여론조사에 나선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앞서 KG모빌리티 노사는 지난 8월 타결된 단체협약에서 기술직 정년퇴직자 중 희망자를 1년 더 재고용하되 이들을 노조 조합원으로 인정했다. 경제계는 정년을 맞은 베이비붐 세대가 현장을 떠나면서 노조 세력이 약화하는 것을 걱정하는 일부 대기업 노조가 촉탁직 노조 가입을 지속적으로 추진할 것으로 보고 있다. 현대차 노조가 촉탁직 노조 가입을 재추진할 가능성도 열려 있다. 노동계 숙련 재고용 제도를 시행하고 있는 독일 프랑스 스웨덴 등 유럽 국가에서도 촉탁직 시니어가 노조의 보호를 받는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국내 노사 전문가들은 촉탁직의 노조 가입이 노동 비용 증가로 이어질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지적했다. 촉탁직 조합원 비율이 높아지면 이들의 임금 인상 및 복지 확대 등을 사측에 요구할 수밖에 없다는 논리다. 노동계 관계자는 “현대차와 기아 노조 지부장 선거는 지지율 3~4%포인트 차이로 결정되곤 한다”며 “노조 집행부가 촉탁직을 위한 선심성 정책을 쏟아낼 수 있다”고 말했다. 자동차 부품업계의 한 고위 관계자는 “촉탁직 노조 가입이 현실화하고 이들의 처우가 재직자 수준으로 올라가면 사실상 호봉제가 유지되는 정년 연장과 다를 게 없어진다”고 지적했다.

곽용희/김진원 기자 ky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