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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병비율 산정의 제도적 허점은 없는가[경제밥도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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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99회 작성일 24-08-07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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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규 SK이노베이션 사장이 지난달 18일 서울 종로구 SK서린빌딩에서 SK Eamp;S와의 합병 관련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박상규 SK이노베이션 사장이 지난달 18일 서울 종로구 SK서린빌딩에서 SK Eamp;S와의 합병 관련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상장사와 비상장사 간 합병 시 합병가액을 결정할 때 상장사는 자산가치로 할 수가 있다. 그럼에도 SK이노베이션은 자산가치가 주가시가보다 더 높지만 주가로 정했다.”기자


“상장사는 시가를 채택하는 게 원칙이다. 예외적인 경우에만 자산가치를 택할 수 있다는 것을 분명히 하고 싶다.”강동수 SK이노베이션 전략·재무부문장

지난달 18일 서울 종로구 SK서린빌딩에서 열린 SK이노베이션·SK Eamp;S 합병 기자간담회의 질의응답 중 일부다.

최근 기업 지배구조 개편과 관련해 합병비율 산정 방식이 주목받고 있다. 합병비율이란 합병회사 간 주식의 교환비율을 말한다. 이 비율에 따라 합병 과정에서 어느 회사가 더 많은 가치를 인정받는지가 결정된다. 일반주주들이 불공정한 비율 때문에 자신의 주식가치가 희석된다고 반발하는 배경이다. 반면 기업들은 법에 따라 원칙대로 한 것이라고 항변한다. 합병비율을 어떻게 산정하는 것이 합리적일까.

합병비율 산정 방식은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자본시장법’ 시행령에 명시돼 있다. 상장사 간 합병의 경우 기준시가에 근거해 합병가액을 정하도록 한다. 기준시가는 최근 1개월간 평균 종가, 최근 1주일간 평균 종가, 최근일 종가를 거래량으로 가중평균한 값이다.

상장사와 비상장사가 합병할 때는 상장사는 기준시가를 원칙으로 하되 기준시가가 자산가치에 미달하면 자산가치를 적용할 수 있다. 비상장사는 자산가치와 수익가치를 1 대 1.5의 비율로 가중평균한 값을 합병가액으로 정한다.

최근 기업들의 합병비율 산정은 이 같은 시행령에 근거한 것으로 합법이다. 그럼에도 공정성 시비가 끊이지 않는 것은 근본적으로 현행 제도에 허점이 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상장사 간 합병가액은 주가로만 정해야 한다?


먼저 상장사 간 합병에서는 주가로만 합병가액을 정하도록 한 ‘경직성’이 오히려 공정한 비율 산정에 걸림돌이라는 의견이 나온다. 두산로보틱스와 두산밥캣의 합병 추진 사례를 보자. 두 회사의 시가총액은 5조원대로 비슷해 주당 기준시가는 두산로보틱스 8만114원, 두산밥캣 5만612원으로 계산됐다. 이에 따라 합병비율은 1 대 0.63으로 정해졌다. 두산밥캣 100주를 보유한 주주는 합병 후 두산로보틱스 63주를 받게 된다는 뜻이다.

시가총액은 비슷하지만 자산이나 영업실적을 보면 두 회사는 비교 불가 수준이다. 두산밥캣은 지난해 매출 9조7589억원, 영업이익 1조3899억원을 기록한 알짜기업이다. 순자산도 6조원에 달한다. 반면 두산로보틱스는 2015년 설립 후 한 번도 흑자를 내지 못했고 지난해 매출 530억원, 영업손실 192억원을 기록했다. 순자산은 4000억원대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주가를 기준으로 한 합병비율 산정에 따라 두산로보틱스의 기업가치가 더 높게 평가받은 것이다. 합병이 성공하면 그룹 지주사인 두산주의 두산밥캣에 대한 간접 지분율이 14%에서 42%로 올라간다.

1962년 증권거래법현 자본시장법이 제정될 때는 상장사 간 합병과 관련한 규제 자체가 없었다. 1997년 만들어진 자본시장법 시행령으로 현재의 주가 기준 합병비율 산정 방식이 도입됐다. 당시 취지는 지배주주가 계열사 간 합병에서 자신에게 유리한 비율을 적용하지 못하도록 하려는 것이었는데 부작용이 발생하고 있는 셈이다.



주가로만 기업가치를 정하는 현행 제도의 가장 큰 문제점은 지배주주가 합병 ‘시점’을 임의로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합병비율은 두 회사의 이사회가 결정하는데 이사회는 지배주주의 영향력 아래에 있다. 더구나 국내 합병의 99%는 계열사 간 합병이다. 지배주주가 두 회사의 주가 흐름을 보고 자신에게 유리한 시점에 합병을 시도할 수 있는 것이다. 자본시장연구원은 지난해 발간한 보고서에서 “지배주주가 시세조종 등 위법 행위를 하지 않더라도 합병 시점을 선택할 수 있다 보니 소수주주소액주주에게 불리한 시기에 합병할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상장사와 비상장사 간 합병 시에는 상장사가 기준시가와 자산가치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는 점이 문제로 지적된다. SK Eamp;S와 합병을 추진 중인 SK이노베이션은 합병가액으로 기준시가를 선택했다. 그런데 상장사인 SK이노베이션의 기준시가주당 11만2396원는 자산가치주당 24만5405원보다 낮았다. 비상장사인 SK Eamp;S는 자산가치와 수익가치를 따져 합병가액주당 13만3947원을 산출했다. 그 결과 합병비율은 1 대 1.2로 결정됐다. 그런데 SK이노베이션이 자신의 기업가치를 자산가치로 평가했다면 합병비율은 1 대 0.55로 완전히 달라진다.

앞서 2022년 상장사 동원산업과 비상장사 동원엔터프라이즈의 합병 당시에는 동원산업이 합병가액을 자산가치보다 낮은 기준시가로 정했다가 소액주주들이 반발하자 자산가치로 변경한 바 있다.

이사 충실의무 확대, 소수주주 과반결의제 요구로


이처럼 기업 지배구조 개편 때마다 합병비율 산정을 두고 논란이 발생하자 다양한 대안이 거론되고 있다. 최근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김현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자본시장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개정안의 골자는 상장사 간 합병 시 합병가액을 주가만이 아니라 자산가치와 수익가치를 종합적으로 고려해 정하도록 하는 것이다.

합병비율 산정 방식을 변경해도 이사회가 악용할 여지가 있기 때문에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을 회사에서 주주로 확대하는 상법 개정이 근본적인 해결책이라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합병비율로 손해를 본다고 판단하는 일반주주가 이사회를 상대로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하자는 취지다.

소수주주 과반결의제 도입도 거론된다. 이는 주주총회에서 일반주주 과반이 동의해야 주요 안건이 통과되도록 하는 제도다. 경제개혁연대는 “합병, 분할합병, 포괄적 주식교환 등 지배주주와 일반주주 간 이해충돌 소지가 있는 주요 안건에서 지배주주 의결권 행사를 제한하는 것으로, 해당 의사 결정이 전체 주주의 이익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추진되도록 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고 설명했다.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이 지난달 22일 서울 여의도 IFC 더포럼에서 ‘두산그룹 케이스로 본 상장회사 분할합병 제도의 문제점’ 세미나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이 지난달 22일 서울 여의도 IFC 더포럼에서 ‘두산그룹 케이스로 본 상장회사 분할합병 제도의 문제점’ 세미나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강병한 기자 silverman@kyunghyang.com

강병한 기자 silverma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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