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현행법 허점 노린 구영배, 한국서 1700억 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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큐텐 그룹이 위메프를 비롯한 국내 계열사와 자회사에서 본사 소재지인 싱가포르로 유출한 돈이 1700억원에 육박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정산 지연으로 ‘티메프 사태’를 촉발한 상품 판매 대금도 이렇게 새어 나갔다는 의혹이 짙다. 구영배 큐텐 대표가 적극적으로 추진한 미국 이커머스 기업 ‘위시’ 인수 자금으로 흘러들어갔을 가능성이 크다. 느슨한 현행법 탓에 큐텐 측은 막대한 자금을 국내에서 해외로 가져가는 동안 아무 제지를 받지 않았다. 31일 국민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지난해 말 기준 큐텐 그룹에 소속된 국내 회사 4곳에서 싱가포르로 모두 1675억원이 유출됐다. 회사별로 큐익스프레스가 싱가포르 큐익스프레스에 1168억원, 인터파크커머스·위메프는 싱가로프 큐텐에 각각 280억·131억원, 큐텐테크놀로지옛 지오시스는 싱가포르 큐브네트워크에 96억원을 각각 대여 형태로 송금했다. 그동안 양측이 빌리고 갚으면서 오간 돈을 모두 더하고 뺀 최종 금액이다. 이 기간 국내 큐텐 자회사와 계열사끼리도 돈을 주고받으면서 싱가포르로 넘어간 자금의 원천은 더 모호해졌다. 지난해 말 기준 위메프→티몬 250억원, 인터파크커머스→큐텐테크 215억원, 큐텐테크→큐텐 102억원, 위메프→큐익스프레스 20억원 등 모두 587억원이 대여됐다.
1700억에 판매자 정산금 포함된 듯
이런 자금 흐름은 큐텐이 판매자들에게 줘야 할 정산 대금을 위시 인수 자금으로 유용한 것 아니냐는 의혹과 맞닿아 있다. 큐텐 그룹은 지난 2월 2300억원에 위시를 인수했다. 투자은행IB업계는 국내에서 싱가포르로 넘어간 자금 상당 부분이 큐텐 그룹의 위시 인수에 쓰인 것으로 추정한다. 이 돈에 티몬·위메프 판매자들이 제대로 받지 못한 미정산 대금이 적잖게 포함됐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구영배 대표는 전날 국회 정무위원회 긴급 현안 질의에서 “위시 인수 자금 중 400억원은 티몬·위메프 판매 대금 아니냐”는 질문에 “포함된 것으로 안다”고 인정했다. 구 대표는 자신이 인수한 티몬·위메프·인터파크커머스 등 국내 이커머스 기업을 큐텐 몸집 불리기를 위한 금고로 사용했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그는 2022년 9월과 지난해 4월 각각 티몬·위메프를 인수할 때 큐텐·큐익스프레스 주식을 맞바꿨기 때문에 실제로 투입한 현금은 없다. 지난해 3월 인터파크커머스를 야놀자로부터 인수할 때도 대금 1870억원 중 10%에 불과한 190억원만 현금으로 내고 나머지는 큐익스프레스 주식 등을 담보로 잡았다. 야놀자는 1700억원 가까운 현금을 현재까지도 받지 못한 상태다.
현행법은 ‘금고 털기’ 못 막아
구 대표는 누적 적자가 수천억원인 ‘좀비 기업’ 큐텐 주식을 활용해 국내 주요 이커머스 기업을 대거 인수한 뒤 이들 회사에서 현금을 해외로 빼간 셈이지만 법적으로는 문제가 된 적이 없다. 외국 회사가 외국인직접투자FDI 방식으로 국내에 설립하거나 인수한 자회사 및 계열사에서 자금을 가져갈 때는 금융 당국에 신고만 하면 되기 때문이다. 구 대표는 자금 유출 전 외국환거래법 제18조 등에 따라 당국에 신고했다. 당국은 현행법상 문제가 없다고 판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향후 유사 사례를 막기 위해서는 현행법을 폭넓게 재정비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재 정부는 구 대표가 전자금융거래법과 전자상거래법을 어긴 점은 없는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티몬·위메프와 소비자 간 거래 등을 담당하는 전자상거래법, ‘티몬 캐시’ 등을 관장하는 전자금융거래법을 중심으로 제도 개선과 재발 방지 논의를 이어가고 있다”고 전했다. 국회 관계자도 “여야가 티메프 사태를 정무위가 담당하는 것으로 정리해 산하 부처인 공정거래위원회와 금융위원회 법규를 중점적으로 들여다보고 있다”고 말했다. IB업계 관계자는 “한국에서 싱가포르로 무기력하게 흘러간 자금에는 티메프 사태를 촉발한 판매자 정산 대금뿐 아니라 소비자에게 돌려줘야 하는 돈, 한국 금융권에서 빌린 자금 등이 포함돼 있을 것”이라며 “다른 기업 사냥꾼이 주식 교환과 같은 방식으로 국내 회사를 손쉽게 인수한 뒤 현금을 꺼내 가더라도 제동을 걸지 못하는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진욱 기자 reality@kmib.co.kr [국민일보 관련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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