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과의 동침 즐기고 좋은 사람 있으면 창업자 물러나…시총 100조 치폴레에... > 경제기사 | economics

치폴레는 미국 텍사스식 멕시칸 음식을 파는 ‘패스트 캐주얼 다이닝’ 체인이다.

손님이 고르는 샐러드, 고기류, 콩류, 치즈 등을 부리또에 싸주거나 샐러드 그릇에 담아주는데 가성비가 뛰어나다. 기자도 미국 근무시절 10~12달러에 한끼를 해결할 수 있어 애용했던 곳이다.




미국에만 3,300개 매장을 운영 중이다. 멕시코 음식이지만 미국인들의 생활 속에 깊이 침투한 브랜드다.

건강한 음식을 간편하게 먹을 수 있다는 점에 급성장했다. 외식업계의 ‘패스트 캐주얼’ 시대를 열었다. 특히 팬데믹 시절 배달 주문 시장 성장에 빠르게 대응해 제2의 성장 모멘텀을 마련했다.

이 회사의 2분기 실적이 24일현지시간 발표됐다. 치폴레 2분기 매출은 29억7500만달러약 4조 1200억원, 영업이익은 5억8600만달러8116억원을 기록했다.

놀라운 것은 이 회사의 시가총액기업가치이다. 실적 발표일 기준 시총은 711억1200만달러로, 약 100조원에 달한다. SK하이닉스는 2분기에 이 회사의 매출보다 더 큰 영업이익5조4685억원을 달성했지만 시가총액이 140조원에 그친다. SK하이닉스는 국내 시총 2위 기업인데, 이런 기업 가치에 근접한 것이다.

왜 영업이익을 7배나 많이 내는 한국 기업은 미국 기업에 비해서 기업가치가 1.4배에 그치고 있을까. 더군다나 SK하이닉스는 AI인공지능 시대에 가장 중요해진 반도체 분야 기업인데도 이런 평가를 받고 있다.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치폴레는 1993년 7월 스티브 엘스가 캘리포니아 뉴포트비치에서 창업했다. 성장의 꽃을 피우게 된 것은 이 분야의 경쟁자라고 볼 수 있는 1998년~2001년에 걸쳐 맥도널드의 투자를 받았기 때문이다. 창업자인 스티브 엘스는 제왕적 오너로 군림하지 않았다. 지난 2018년 또 다른 유명 외식 브랜드인 타코벨 CEO를 역임한 브라이언 니콜을 CEO로 영입하며 이사회 의장으로 물러났다.

2006년 상장된 치폴레가 투자자들의 관심을 끌게 된 것은 ‘리틀 워런 버핏’이라고 불리는 빌 애크먼 퍼싱스퀘어캐피탈 회장이 투자에 나서면서다. 애크먼은 치폴레의 성장 가능성을 보고 2016년부터 베팅해 주가를 크게 끌어올렸다. 최근에는 지분을 많이 낮췄지만 치폴레가 100조원 기업으로 성장하는데는 애크먼의 역할이 적지 않았다.

적맥도널드과의 동침도 했고, 까탈스러운 투자자의 코칭에도 응했고, 유능한 CEO가 있다면 창업자는 바통을 물려줬다.

이런 포용성이 더 많은 발전을 이끌어낼 수 있었다. 주주들을 만족시켜 기업 가치 제고라는 선순환을 일으켰다. 치폴레가 멕시칸 음식이라는 비주류 메뉴를 기반으로 미국의 대표 외식업체로 성장한 것도 이런 미국적 포용성이 있기에 가능했다.

밸류업을 위한 제도 개선 논의가 활발하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바뀌어야할 것은 주주에 대한 인식 전환이다. 뉴욕증시 상장 기업이 실적 발표시 투자자에게 가장 중요하게 내미는 성적표는 EPS주당순이익이다. 1주당 얼마의 순이익을 창출했는지가 기업의 핵심가치라고 보는 것이다. 한국에선 여전히 매출과 같은 지표를 더 중시하고 있다. 한국의 대기업 순위는 수십년째 자산 순이다. 하지만 글로벌 기업 순위는 시총 순이다. 주식회사의 취지를 생각하면 주인인 주주가치 제고를 가장 우선시하는 것이 너무나 당연하다. 5대 그룹이지만 시총 순위로는 10위에도 들지 못하는 그룹도 있다. 이제 주주 중심으로 사고의 각도를 전환하는 것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



박용범 증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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