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소프트파워가 역전됐다…日상 파고드는 K서비스 [스페셜리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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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면 1. 현대카드가 금융업계 최초로 독자 개발한 ‘인공지능AI 소프트웨어’를 일본 ‘빅3’ 신용카드사 중 하나인 ‘SMCCSumitomo Mitsui Card Company’에 수출했다. 유니버스는 현대카드가 자체 기술력으로 개발한 데이터 사이언스 기반 고객 초개인화 AI 플랫폼. 이번 계약으로 현대카드는 수백억원을 벌어들이게 됐다. 한국 역사상 최대 규모 단일 소프트웨어 수출 기록도 세웠다. SMCC 측은 “올해 2월부터 6개월간 현대카드와 기술 실증PoC·Proof of Concept을 진행, 철저한 검증 끝에 유니버스의 우수성을 인정하고 도입을 결정했다”며 “현대카드가 세계 최고 수준 데이터 분석·설계 역량을 보유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 장면 2. 미용 기술 선진국 하면 흔히 일본을 떠올리는 이가 많다. 국내 유명 메이크업, 헤어디자이너 중에 일본 유학파도 꽤 있다. 그런데 최근 역전 현상이 감지된다. 준오헤어가 그 선봉장에 있다. 준오헤어 소속 강사들은 일본 점유율 1위 염모제 회사 호유가 주최하는 ‘룩앤런’ 세미나에 초청받아 강연을 진행했는가 하면 올해 10월에는 일본 쉐논CHAINON헤어와 마스터프랜차이즈 계약을 체결하기도 했다. 마스터프랜차이즈란 해외 업체가 한국 업체의 상표권·교육·운영 노하우 등에 대해 로열티를 내고 현지에서 사업을 전개하는 방식을 뜻한다. 한국인이 미용 기술을 배우러 갔던 일본이 이제 한국을 배우는 시대가 된 셈이다.
한국 소프트파워가 위세를 떨치고 있다. 소프트파워는 문화예술, 정보과학 등을 앞세워 해당 국가에 부드러운 변화를 이끄는 힘을 뜻한다. 외교 용어로 쓰여왔으나 최근에는 경제 분야에서 비제조업 상품·서비스 점유율이 높아질 때 이런 표현을 사용한다.
일본이 압도적인 선진국이었던 시절만 해도 한국은 일본 문화나 기술 등을 받아들이는 데 열을 올렸다. 그런데 K컬처가 글로벌 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하면서 상황이 180도 달라졌다. 이제는 한국에서 유행 혹은 각광받는 문화·서비스 등 무형 상품을 일본이 먼저 반영하려 하는 경향이 생겼다.
이는 숫자로도 증명된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식재산권 무역수지는 지난해 사상 최대 흑자를 기록한 데 이어 올해 상반기에도 1억4000만달러를 기록, 또 한 번 역대 기록을 갈아치웠다. 2021년 이전만 해도 이 분야는 만성 적자를 면치 못했다. 특히 일본과의 교역에서 지재권 수지가 눈에 띈다. 무역수지 부문에서는 여전히 만년 적자다. 그러나 지재권만큼은 흑자상반기 1000만달러로 돌아섰다. 지식재산권은 크게 산업재산권과 저작권으로 나뉘는데 현대카드 사례처럼 IT·소프트웨어 부문은 물론 K컬처·뷰티·패션·웹툰 등 문화예술 분야에서도 일본 수출이 크게 늘어나는 분위기다.
韓 기업에 DX·AX 맡기는 日
AI 마케팅·협업툴 등 노하우 이식
현대카드 사례 외에도 IT 분야에서 빠르게 시장 변화를 알아채고 현지 시장에 깊이 침투한 한국 소프트웨어 기업이 꽤 많다. 모바일 메신저 부문 ‘현지 국민 앱’이 된 네이버의 라인을 필두로 원격제어 서비스알서포트, 협업툴플로우, AI 솔루션올거나이즈, 이커머스 솔루션유젠 등 다양한 분야에서 각광받는 업체가 수두룩하다.
한국소프트웨어산업협회 관계자는 “한국 문화 콘텐츠 인기는 한국에 대한 전반적인 이미지 개선으로 이어졌고, 이는 자연스럽게 한국의 기술력에 대한 신뢰로 확장되고 있다”며 “특히 제조업 강국인 일본은 최근 디지털 전환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는데 코로나19 이후 IT 시스템 혁신이 가속화되면서 AI, 클라우드, 데이터 분석 등에서 앞선 기술력을 가진 한국 기업을 중요한 파트너로 인식하고 있다”며 현장 분위기를 전했다.
일찌감치 일본에 진출, 제조, 통신, 금융 등 2만3000여개 현지 기업의 디지털 전환을 돕고 있는 알서포트가 대표적인 성공 진출 사례다. 알서포트는 일본 인력난이 심해질 것으로 보고 현지 맞춤형 원격제어 서비스 ‘리모트뷰’를 선보였다. 2020년 들어서는 발 빠르게 클라우드 기반 원격 솔루션으로 업그레이드했다. 마침 코로나19가 창궐하면서 현지 업체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그 덕에 2021년부터 해당 분야 시장점유율 1위를 차지일본 MIC 경제연구소 자료했다. 지난해 말 기준 알서포트 매출의 60%가 해외, 이 중 상당 부분이 일본에서 발생하고 있다. 2023년 기준 누적 수출액은 2억달러를 돌파했다.
AI 기술 수출에 성공한 기업도 있다. 올거나이즈다. 미쓰이스미토모금융그룹SMBC을 비롯해, 노무라증권, 아사카은행, 다이와증권 등 일본 굴지의 금융사와 대기업 150여곳이 이 회사 AI 시스템을 쓴다. 올거나이즈는 기업 업무 생산성을 혁신하는 AI 에이전트 서비스를 제공한다. 기업이 맞춤형 AI 에이전트를 만들 수 있도록 LLM 모델 개발부터 프레임워크, 애플리케이션을 한 번에 제공한다.
가장 매출이 높은 제품은 검색증강생성RAG을 중심으로 하는 생성형 AI다. 고객사 내부에 있는 다양한 문서나 관련 법령을 학습해 사용자가 물어보면 답을 하는 방식이다. 여기에 올거나이즈의 차별점은 사용자가 질문하면 내용이 여러 폴더에 흩어져 있어도 답변할 수 있다는 점이다. 답변할 내용이 법률에도 있고 시행령, 지침 등에도 있다면 AI가 차례차례 봐야 할 것이 많다. 이때 어떤 내용을 중심으로 답변을 할지 확인하기 위해 에이전트가 필요하다. 사용자 질문에 답변하는 것을 넘어, 어떤 업무든 필요하면 도울 수 있는 ‘업무 에이전트’를 만드는 것에 올거나이즈는 가장 집중하고 있다.
이창수 올거나이즈 대표는 “일본의 첫 금융권 고객인 미쓰이스미토모은행은 다른 AI 서비스를 쓰고 있었는데 상담사들이 매주 데이터를 일일이 모아 AI에 학습시키는 번거로운 과정을 거쳐야 해서 새로운 파트너를 찾고 있었다”며 “이를 자동화할 수 있는 올거나이즈 제품을 시험 도입해보더니 해당 부서에서 좋은 반응을 보여 현재 SMBC 계열사 서비스 120개에 올거나이즈 제품이 전부 들어갈 수 있게 됐다. 이후 입소문이 돌면서 다른 일본 금융사에서도 서비스를 도입, 일본 시장에 안착할 수 있었다”고 소개했다. 올거나이즈는 내친김에 일본 상장도 추진 중이다.
또다른 AI스타트업 ‘센드버드Sendbird’ 역시 미쓰이스미토모 금융그룹SMBC, 라쿠텐인터넷 서비스, 후지소프트시스템 소프트웨어, 페이페이간편 결제 서비스 등 총 21개 고객사를 두고 있다. 일본 고객사 대상으로는 라이브 스트리밍, 채팅, 콜 등 다양한 API 기반 서비스를 제공한다. 센드버드는 API 기반 서비스를 챗봇, 비즈니스 메시징Sendbird Business Messaging, SBM 등 AI 기반 커뮤니케이션 서비스로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
이미 일본 법인을 설립한 상태이며, 한국과 싱가포르 소재 인력이 사업은 물론 세일즈 지원을 하고 있다.
협업툴 분야에서도 한류가 시작됐다.
토종 협업툴 ‘플로우법인명 마드라스체크’는 2023년부터 일본 도쿄 현지 지사를 열어 일본 현지 상주 직원을 배치하고 글로벌 협업툴 ‘모닝메이트’를 판매하기 시작했다. 진출하자마자 일본 IT 기업 MJS에서 2000여명 전 직원이 쓸 수 있게 계약했다. 이후 모닝메이트는 1년 만에 70여 현지 유료 기업 고객을 확보하며 빠르게 사세를 확장하고 있다. 마드라스체크 해외법인 중 가장 빠른 성장세다.
이런 결과를 낼 수 있었던 비결은 현지화 전략. 이학준 마드라스체크 대표는 “트렌드에 민감한 한국과 달리 일본 기업은 신뢰성과 안정성, 기존 시스템과의 연동을 중시하는데 이런 고객 니즈에 맞춰준 것이 주효했다”며 “경쟁사 중 유일하게 글로벌 온프레미스사내구축형 모델을 제공해 차별성을 강화하고 일본 시장 내에서의 입지를 확고히해나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박수호 기자 park.suho@mk.co.kr, 조동현 기자 cho.donghyun@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82호 2024.10.30~2024.11.05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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