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0원 향해 내달리는 환율, 당국 개입 왜 안먹히나[경제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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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 서울 중구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 현황판에 환율과 코스피지수가 표시되고 있다. 연합뉴스
국회가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가결한 지난 27일 원·달러 환율은 장중 달러당 1486.7원까지 치솟았습니다. 글로벌 금융위기인 2009년 3월16일1488.5원 이후 15년9개월만의 최고치입니다. 코스피는 2400선까지 추락하며 2008년 이후 16년만에 6개월 연속 하락월말 종가 기준을 코앞에 뒀습니다.
지난 40년간 코스피가 6개월 연속 하락한 것은 1997년 외환위기, 2000년 닷컴버블 붕괴, 2008년 금융위기 등 세 차례에 불과합니다. 환율이 1450원을 넘긴 것도 변동환율제가 도입된 이후 외환위기, 금융위기 두 차례에 불과합니다. 현재 국내 금융시장이 한국 경제의 역대 최악 수준에 버금가는 위기를 마주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외환당국의 환율 방어에도 환율의 수준과 변동성 모두 잡히지 않는 상황입니다. 27일 변동폭은 무려 21.2원에 달했습니다. 시장에선 당국의 방어가 환율 상승 속도를 소폭 저지할 수 있을 뿐, 개입 규모가 적어 추세 자체를 막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머지않아 달러당 1500원을 넘길 것이란 전망도 팽배합니다.
강달러 기조로 환율이 흔들린 것은 사실이지만 12·3 비상계엄 사태와 갈수록 얼어붙는 경제, 주주를 보호하지 못한 국내 증시에 대한 실망감으로 투자자가 이탈하는 등 대내적 요건도 환율에 크게 작용한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방어책에도 방어 안 되는 환율
1년 전만 해도 환율은 달러당 1288원 수준이었습니다. 올해들어 지난 27일 세운 연중 최고점1486.7을 기준으로 15.4% 상승가치 절하했습니다. 1년 만에 달러당 200원 가까이 오른 겁니다.
이달에만 달러당 80원 넘게 상승했고, 이번주에만 40원 넘게 출렁였습니다. 외환당국은 환율의 수준보다도 변동성을 경계하겠다고 밝혔는데, 적극적인 환율 방어에도 환율의 수준과 변동성 모두 잡히지 않는 겁니다.
당국의 방어 수단은 크게 보면 세 가지입니다. 구두 개입, 외환보유액 등을 통한 직접 개입, 국민연금공단을 통한 간접개입 등입니다. 불안한 심리를 진정시키고 외환시장에서의 달러 공급은 늘리면서 달러 수요를 어떻게든 줄이는 것이 골자입니다. 원화와 달러가 있는 외환시장에서 달러의 수요가 크면 원화의 상대적 가치가 떨어져 환율이 상승하기 때문입니다.
이 중 외환시장을 주시하겠다는 의사를 표명하는 구두개입은 강달러 압력과 갈수록 커지는 정치적 혼란을 달래기엔 역부족입니다. 원화 뿐만 아니라 일본 엔화 역시 일본은행의 구두개입에도 기준금리 동결이 계속될 것이란 전망에 계속 약세입니다.
환율을 방어하는 ‘실탄’인 외환보유고에 있는 달러를 외환시장에서 내다파는 직접개입 역시 적극적으로 실행하기는 어렵습니다. 달러로 표시된 외국환평형기금외평기금을 포함하는 외환보유고는 지난달 말 기준 4153억9000만달러로 외환위기로 이어지지 않을 만큼 충분하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그러나 강달러 기조가 계속되면서 외환보유고가 최근 3년간 내리 줄고 있습니다. 외환보유고가 큰 폭으로 하락한다면 시장에 불안심리를 키울 수 있어 부담스러운 요인입니다. 미국의 눈치도 보이죠. 웬만큼 큰 액수를 동원하지 않는다면 환율 상승세를 꺾기 어렵습니다.
이낙원 NH농협은행 FX파생전문위원은 “시장에서 개입물량이 시장 참가자들이 경계할 만큼 강하게 일순간에 나와줘야 한다”며 “수급과 대외 인식 모두 원화 약세로 가고 있는데, 외평기금 같은 작은 물량으로 기세를 꺾을 수 있지는 않을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이런 사정을 아는 외환당국도 국민연금을 통해서 움직이려 합니다. 최근 국민연금과 외환당국의 외환 스와프 거래 한도를 500억달러에서 650억달러로 늘리고 기간도 연장했죠. 해외투자를 해야하는 국민연금이 외환시장에서 달러를 가져가면 달러가 더 오르니, 외환시장으로 가지말고 한국은행 외환보유고에 있는 달러를 원화랑 바꾸자는 거죠.
국민연금의 전략적 환헤지환율을 고정해 환율 변동 위험을 피하는 것 비율도 최대 10%까지 상향하도록 했습니다. 이러면 외환시장에 달러 공급을 늘려 환율의 상승 압력을 줄이는 효과가 있죠. 그렇지만 이 역시 외환당국의 직접개입처럼 시장 심리를 반전시킬 만큼 규모가 크지 않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최근엔 연말 휴가시즌인 만큼 외환시장 하루 거래액이 50억달러를 밑돌지만, 통상 일일 거래액은 100억달러약 14조원를 넘깁니다. 상승세에 브레이크를 걸 수는 있지만 하루 수 천억원 규모의 개입으로는 완전 제동은 어렵다는 겁니다.
이 위원은 “환헤지 물량이 환율 상승을 막을 정도의 물량이면 얘기가 나왔을 때 시장에서 반응했어야 했지만 그렇지 않았다”며 “기세를 꺾을 만한 물량이 나오려면 국민연금에서 하루에 최소 10억 달러씩은 나와야 하지만 그런 물량도 없고, 그렇다 하더라도 기세를 꺾을 순 없을 것 같다”고 했습니다. 환헤지가 처음 도입된 2022년 11월 이후 실제 발동된 적이 없습니다.
뒤늦게 도착한 고환율의 ‘청구서’
3일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있다. 연합뉴스 tv 캡쳐
종합하면, 환율 방어책은 환율 상승 속도를 소폭 줄이는 효과가 있을 뿐 추세적 흐름이 반전돼야 환율이 안정된다는 것입니다. 강달러 압력 요인이 진정되고 정치 불확실성이 완화돼야 하는 것이죠.
정부 책임이 크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단적으로 비교할 순 없지만, 달러의 힘을 나타내는 지표인 달러인덱스주요 6개 통화 대비 달러 가치를 비교한 지수는 108포인트 수준으로 112포인트 수준까지 올랐던 2022년보다는 낮습니다. 강달러 압력이 큰 건 맞지만 지금의 환율 급등이 그 영향만은 아니라는 겁니다.
하반기 이후 국내 투자자들은 113억달러 가량 미국자산을 사들였고, 외국인투자자들은 국내 증시에서 20조원 넘게 팔았습니다. 박석현 우리은행 연구원은 “국내 주식시장 수익률 부진의 배경은 경제 성장 부진”이라며 “미국 대비 낮은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내년까지 3년 연속 이어질 것으로 예상되는데, 이는 1953년 국내 GDP 성장률이 집계된 이후 첫 케이스가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건전 재정 기조에 묶여 내수 부양을 위한 재정정책을 제대로 쓰지 못하고, 주주들을 보호하는 정책엔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면서 증시 개혁에 실패한 ‘청구서’가 환율로 나타나는 셈입니다.
김경민 기자 kim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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