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만에 합격했는데 갈 곳 없네" 씁쓸한 추석맞은 CPA 합격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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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습 교육기관 부족으로 ‘미지정 회계사’ 속출 우려
수요예측 실패와 인원 과다선발로 금융당국 책임론
공인회계사CPA는 문과 전공 대학생의 대표적인 선호 진로 중 하나다. 전문직 자격증과 그에 걸맞은 대우, 사회적 인식까지 두루 갖춘 몇 안 되는 진로이기 때문이다. CPA 시험은 최종 합격까지 4년 가까운 시간이 소요될 정도로 날이 갈수록 경쟁이 치열해지는 시험이기도 하다. "요즘 문과는 로회대로스쿨·공인회계사·대기업"라는 말도 있다.
그러나 올해 CPA 합격생 수백명은 빛나는 자격증을 받고도 당분간 백수로 지내야 될 처지에 몰렸다. 올해 시험에서 역대 가장 많은 1250명이 시험에 합격한 반면 4대 회계법인 채용 규모는 842명잠정으로 역대급 차이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빅4가 흡수하지 못한 400여명 중 절반은 로컬 회계법인으로 갈 것으로 전망되지만 나머지 200명가량은 갈 곳이 마땅치 않아 발을 동동 구르는 상황이 발생했다. 합격의 기쁨이 채 가시기도 전에 씁쓸한 추석을 보내게 생긴 것이다.
업황 악화로 빅4 채용 규모 내림세
지난 12일 모두 예비소집을 진행한 빅4에 따르면 삼일 301명, 삼정 306명, 안진 120명, 한영 115명 등 총 842명의 CPA 합격생이 채용 관문을 통과한 것으로 집계됐다. 예비소집에 입사계약서를 작성하기 때문에 올해 실제 채용규모가 이 정도라는 얘기다. 지난해875명보다 소폭 줄어든 규모다. 수석 합격자와 최연소 합격자는 삼일행을 택했다.
2019년 신외부감사법신외감법 도입 이후 호황을 맞은 회계업계는 2022년을 정점으로 조금씩 내림세를 걷기 시작했다. 고금리로 인한 인수합병Mamp;A 감소, 거시경제매크로 불확실성 등 때문이었다. 채용 규모 역시 2022년에는 공인회계사 최종합격자1237명보다 빅4 채용인원1275명이 많을 정도였지만 지난해부터 꺾이기 시작했다. 업황이 더욱 악화한 올해는 합계 600명대까지 감소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왔지만, 소폭 감소한 800명대 수준으로 선방했다는 말이 나온다.
미지정 회계사 속출할 듯
올해 합격생 1250명에서 빅4 채용인원 842명을 빼면 408명이다. 이 중 절반가량은 빅4보다 한 단계 아랫급인 로컬 회계법인이 흡수할 것으로 전망된다. 물론 로컬 회계법인 역시 어두운 업황의 타격을 받고 있기 때문에 200명 수준의 채용도 장담할 수 없는 수준이다. 문제는 로컬마저 가지 못하는 나머지 200여명이다. 이들은 살길을 찾기 위해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을 통해 정보를 공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공인회계사는 수습 교육 1~2년을 거쳐야 정식 회계사 자격을 얻는다. 업계에서는 돈을 주고 가르치는 기간으로 통한다. "전문직 자격증이 있는데 배부른 소리 아니냐"는 생각을 얼핏 할 수 있으나 업계 특성을 고려한다면 수습 교육기관을 찾지 못한 회계사들은 어려운 처지에 놓인 것이 사실이다. 일반 기업이 굳이 돈을 주고 수습도 떼지 못한 회계사를 채용할 이유도, 명분도 없기 때문이다. 상당수의 미지정 회계사실무수습기관을 찾지 못한 회계사가 속출할 것이라는 우려 섞인 전망도 나오고 있다.
"왜 이리 많이 뽑았냐" 금융당국 원망도
취업대란의 근본적인 원인은 수요예측에 실패한 금융당국에 있다는 책임론도 제기되고 있다. 지난해 금융위원회는 2024년 합격 인원을 역대 최대인 1250명으로 정할 당시 "회계감사 품질을 유지하는 수준에서 시장의 수요와 공급을 종합적이고 균형 있게 고려하여 결정했다"고 했다. 그러나 감사원의 지적에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인원을 늘린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왔다. 지난해 감사원은 금융위가 과거 최소선발 예정 인원을 결정할 때 실제보다 공인회계사 수요 증가요인을 작게 가정한 용역 결과를 반영하는 등 선발인원을 축소했다는 내용을 담은 CPA시험 점검 결과를 발표했다.
한 회계업계 관계자는 "금융위가 감사원의 지적에 화들짝 놀라서 올해 선발인원을 역대 최대로 늘린 것 아니냐"며 "올해 사정이 어려운 빅4 채용인원이 합계 600명대까지 주저앉을 수 있었으나 취업대란을 우려한 금융당국의 직간접적인 압박 때문에 울며 겨자 먹기로 채용 인원을 늘린 것"이라고 했다. 금융당국의 실수를 시장에 전가했다는 얘기다. CPA 합격생 사이에서도 "수요 예측에 실패한 금융당국의 잘못"이라는 원성이 나오고 있다.
오유교 기자 5625@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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