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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싹 다 뒤엎더니"…맥주 팔던 회사가 로봇사업 뛰어든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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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72회 작성일 24-07-21 1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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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 뼈를 깎은 두산, 위기 때마다 변신 DNA 발휘

맥주 팔다 로봇 회사 도약
두산의 127년 Mamp;A 역사

1896년 두산의 모태 포목상
화장품 박가분 대규모 생산
맥주 수탁 판매로 사업 확장

“두산은 ‘사업’을 이어가는 것보다 ‘기업’을 이어가는 게 중요하다고 봅니다.”

2019년 10월24일 서울 삼성동 그랜드인터컨티넨탈호텔에서 열린 서울대 공대 건설산업최고전략과정ACPMP 조찬 포럼. 두산가家 4세인 박태원 당시 두산건설 부회장은 ‘두산의 변신: 소비재B2C에서 산업재B2B로’라는 주제의 강연에서 이같이 말했다. 그는 박용현 전 두산그룹 회장의 장남이자 박정원 두산그룹 회장의 사촌 동생인 두산가家 4세다.

박 전 부회장은 이날 두산이 변신에 나선 이유로 ‘100년 기업 병病’에 빠져들지 않기 위해서라고 했다. 그는 “업력이 오래된 기업일수록 계속된 성공에 자만심이 생겨 새로운 시도를 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며 “두산은 ‘성공의 함정’에 빠지지 않기 위해 1세대 포목상, 2세대 OB맥주를 중심으로 한 B2C 기업, 3세대 인프라 사업을 중심으로 한 B2B 기업을 거쳐 4세대에 새로운 변신을 다시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11일 발표한 사업재편 계획은 두산이 수년 간 준비해온 변화의 결과물이다. 로봇 등 ‘스마트 머신’과 원자력·수소 등 ‘청정 에너지’, 반도체 등 ‘첨단 소재’를 그룹의 미래로 삼겠다는 것. 업계에선 “‘변화 DNA’가 몸에 밴 두산의 세 번째 변신이 시작됐다”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

127년 역사의 最古 기업
두산은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최고最古 기업이다. 1896년 포목점인 ‘박승직상점’으로 출발했으니, 올해로 127세가 됐다. 당시 잘 나갔던 상점들과 이름난 거상들은 세월의 흐름과 함께 하나둘 사라졌고, 두산 하나 살아남았다.

박 창업주는 포목점이 자리를 잡자 첫 번째 변신에 들어갔다. 외모를 가꾸려는 수요가 늘어나는 트렌드를 포착, 화장품 사업에 뛰어든 것. 이렇게 탄생한 ‘박가분’은 전국적인 유명세를 타면서 하루에 4200원당시 쌀 700 가마에 해당 어치나 팔렸다. 두산은 박가분 대량생산에 들어갔다. 유통업에서 제조업으로 변신한 것이다.

맥주 사업도 이 무렵 시작했다. 박 창업주는 일본 기린맥주가 세운 소화기린맥주훗날 OB맥주 설립에 소액주주로 참여하는 동시에 기린맥주 수탁판매 사업에 뛰어들었다.

후계자인 박두병 회장은 두산그룹의 기틀을 짰다. 1945년 해방 이후 미 군정 소유가 된 소화기린맥주를 1951년 불하받아 두산그룹의 성장 발판을 마련했다.
소비재 기업서 인프라 사업으로
100년 넘게 소비재 기업으로 성장해온 두산이 두번째 변신에 나선 건 1990년대 들어서다. “그동안의 성공에 취해 기민하게 대응해야 하는 소비재 사업의 변화 트렌드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내부에서 터져나온 직후였다. 29개 계열사1998년 기준를 거느렸지만, 매출이 3조원대에 머무르면서 “신성장 동력을 찾아야 한다”는 고민도 영향을 미쳤다.

그렇게 찾은 업종이 인프라 등 중공업 분야였다. B2C 기업이 B2B 기업으로 변신하겠다는 의미였다. 라이프 사이클이 짧은 소비재보다 중장기 전략에 따라 차근차근 경쟁력을 키울 수 있는 중공업이 보다 유망하다고 판단한데 따른 것이다. 박용곤 회장은 당시 “선친박두병 회장이 과감하게 창업주가 일으킨 포목상을 버리고 동양맥주현 OB맥주로 재창업한 것처럼 소비재를 접고 인프라 위주의 글로벌 기업이 되자”고 했다.

두산은 1996년 글로벌 컨설팅업체인 맥킨지의 도움을 받아 소비재를 버리고 중장비·발전 중심의 중후장대 기업으로 포트폴리오 전환에 나섰다. 변신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한국네슬레, 한국3M을 매각하고 그룹의 ‘얼굴’이었던 OB맥주와 코카콜라, 버거킹, KFC 등을 차례차례 정리했다. 이 자금으로 한국중공업현 두산중공업과 대우종합기계두산인프라코어를 인수했다. 이렇게 극단적으로 사업 포트폴리오를 바꾼 사례는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흔치 않다.
채권단 관리까지 가기도
그렇다고 두산이 ‘꽃길’만 걸었던 건 아니다. 2007년 인수한 두산밥캣은 한동안 그룹의 큰 짐이었다. 두산은 당시 국내 인수합병Mamp;A 역사상 최대인 49억달러현 환율 기준 6조7000억원를 주고 미국기업 밥캣을 인수했다.

하지만 이듬해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지면서 두산은 ‘승자의 저주’에 시달렸다. 캐시카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했던 두산밥캣은 ‘돈 먹는 하마’로 전락했다. 부족한 인수자금을 감안해 차입매수LBO 방식으로 Mamp;A를 진행한 게 화근이었다. 금융위기 탓에 이자 비용이 크게 늘자 국내 금융사의 신디케이트론으로 자금을 막아야 했다.

금융위기가 실물경기에 영향을 주면서 영업 상황도 크게 악화됐다. 미국 노스다코타주 비즈마크 공장 문을 닫는 등 자구노력을 했지만, 2008년과 2009년에만 2조5000억원 적자를 냈다. 모회사인 두산인프라코어현 HD현대인프라코어가 1조원을 투입하고, 2010년부터 업황이 살아나면서 두산밥캣은 ‘효자’로 거듭나기 시작했다.

두산밥캣이 살아나자 다른 위기가 두산을 덥쳤다. 두산건설 등 주요 계열사 실적이 악화하며 심각한 유동성 위기에 휩싸인 것. 코로나19가 한창이던 2020년 4월 두산그룹은 3조원 규모의 자구책을 채권단에 내놨다. 그렇게 동대문 의류상가의 메카인 두산타워, 두산솔루스, 두산 모트롤BG, 골프장 클럽모우CC 등을 떠나보냈다. 두번째 변신의 핵심 역할을 한 두산인프라코어 역시 HD현대그룹에 내줬다.

박정원 회장을 비롯한 대주주들은 두산퓨얼셀 지분 전량당시 5740억원 규모을 무상으로 두산에너빌리티에 증여하는 등 자구 노력에 동참했다. 이후 1년 10개월 만에 채무 상환을 완료했고, 290.7%였던 ㈜두산 부채비율은 지난 3월 말 기준 154.6%까지 내려갔다.
세번째 변화는 스마트 머신 기업
채권단 관리를 졸업한 지 2년 만에 두산은 사업재편을 통해 세 번째 변신을 시작했다. 두산에너빌리티 자회사인 두산밥캣을 떼어내 두산로보틱스 자회사로 붙이는 게 핵심이다.미래 유망 산업인 로봇 분야에 힘을 주기 위해서다. 모회사인 두산에너빌리티가 흔들리면 두산밥캣까지 영향을 받는 구조를 바꾸려는 측면도 있다. 두산은 두산밥캣이 기존의 강점인 동력 장치에 로봇과 자율주행, 인공지능AI 등을 붙여 경쟁력을 키울 계획이다.

두산에너빌리티는 독립 회사로서의 자립성을 높일 계획이다. 두산에너빌리티는 지난 17일 체코 원전 수주를 통해 수년 동안의 일감을 확보했다. 여기에 더이상 그룹 내 중간 지주회사가 아난 청정 에너지 전문 기업으로 Mamp;A 등 확장에 나설 계획이다.

김우섭/성상훈 기자 dute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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