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주민끼리 사돈 맺어요"…슈퍼리치 울타리 된 강남 아파트 커뮤니티 > 경제기사 | economics

작년 말 서울 서초구 반포동에 위치한 래미안 원베일리 내 컨벤션센터. 주말 오후 3시부터 원베일리 입주민을 부모로 둔 미혼 남녀 60명이 속속 모였다. 원베일리 입주 1주년을 맞아 열린 원베일리 미혼 자녀 단체미팅 자리다. 이들은 1대1 미팅, 그림으로 알아보는 이상형 찾기 등 간단한 게임 등을 통해 서로를 알아나갔다. 저녁시간이 되자 뷔페와 와인파티가 열렸다. 3·4차로 이어진 자리에서 이들은 자체적으로 회장과 부회장 등을 선출한 뒤 모임을 지속해나가기로 했다.

한국 대표 부촌으로 자리매김한 반포동의 ‘그들만의 리그’로 일컬어지는 ‘원베일리결혼회원결회’의 장면이다. 원베일리에 입주한 이들이 미혼 자녀들의 단체 미팅을 지원하기 위해 생겨난 모임이다. 반포맘 사이에서 입소문이 나 이제는 래미안 퍼스티지, 아크로 리버파크 주민까지 참여하는 ‘반포 대표 결혼회’로 자리매김했다. 최근 결혼식장을 예약한 1호 커플에 이어 2호 커플까지 나왔다고 한다. 지난 18일에는 ‘30대30’ 단체미팅도 진행했다.

회원들조차 가벼운 소모임으로 시작한 원결회의 급성장에 놀라워하는 눈치다. 원결회 회원인 중년 여성 A씨는 “아파트 입주민들끼리 자녀 결혼에 대한 고민을 공유하다 ‘원결회’가 만들어졌다”며 “처음에는 ‘우리 딸이 28세인데, 그쪽 아들과 만나보게 하는 거 어때’라며 회의를 시작했다. 그런데 어느덧 회원만 300명에 달한다”고 말했다. 이들은 자녀 미팅 주선 외에도 신혼집 마련 세미나, 투자 교육 세미나 등을 함께 들으며 ‘고급 정보’를 공유하고 있다.

최환석 하나은행 부동산투자자문센터장은 “과거 부촌은 옆집은 교수님댁, 뒷집은 회장님댁 같은 식으로 ‘알음알음’ 알게 되는 자연스러운 커뮤니티였던 반면 지금은 래미안 원베일리처럼 ‘실질적 커뮤니티’로 변모하는 것이 특징”이라고 말했다. 높은 경제적 수준을 기반으로 모인 공동체다 보니 공유하는 정서와 문화가 비슷한데 사회관계망서비스SNS가 발달하며 입주민 커뮤니티까지 활성화되다 보니 서로 쉽게 연결되고 신뢰하는 문화가 만들어진 것이다.



원결회는 주거 공간이 주목적이었던 아파트가 투자 수단을 넘어 사회적 신분의 보증수표화 되어가는 장면의 단적인 예다. 과거 배우자와 만남에 있어 ‘학벌’ ‘연봉’ 등이 중요했다면 이제 ‘아파트 입주민 카드’ 하나로 끝나는 세상이 된 것이다. 밖에서 보는 시선이 냉랭할 수 있지만 이 역시 이웃 간 교류하는 일종의 커뮤니티란 측면에서 마냥 부정적으로 보기 힘들다는 평가도 있다.

문제는 아파트 이너서클 문화에 편승해 부추기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다는 거다. 젊은이들 사이에 인기인 소개팅 애플리케이션 ‘골드스푼’에서는 남성의 경우 일명 ‘금수저’ 요건을 갖춘 사람들만 가입이 가능하다. 서울 강남구, 서초구, 송파구 소재 아파트에 거주하거나 20억원 이상 아파트에 거주한다는 사실을 입증할 경우에만 가입이 가능하다.

하이엔드 주택 분양업체들은 분양 단계에서부터 ‘입주민 거르기’에 나서고 있다. 삼성동에 들어서는 라브르27, 도산공원 바로 앞에 지어지는 더피크도산은 분양 문의를 할 때부터 소득 수준을 증빙해야 상담이 가능하다. 이들은 기자의 분양 상담 문의에 “명함이나 소득 및 자산을 증빙할 수 있는 서류를 제출해달라”며 “회사의 승낙을 받아야 상담이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반론도 있다. 이런 아파트가 단순히 신분제의 상징이 아니라 비즈니스적 실용성도 크다는 것이다. 롯데 시그니엘 레지던스에 월세 2000만원을 주며 거주 중인 사업가 C씨가 대표적이다. 그는 높은 월세에도 이곳에 살며 얻는 소득이 월 4000만원이라며 자랑스러워 했다. 그는 “집에서 제일 조망이 좋은 방은 게스트룸으로 활용하고 있다”며 “해외 거래처 사람들을 집에 초대해 대접하면 안 되던 사업도 잘 풀린다”고 말했다.



VVIP급 고소득자가 한 곳에 모여 있다보니 생활편의 인프라스트럭처도 집중되고 있다. 원베일리 스퀘어에는 오프라인 매장이 대형 거점화되는 경향 속에서도 6개 증권사의 VIP 자산관리 점포가 들어섰다. 전국 주요 은행 PB센터 위치를 보면 ‘강남3구 쏠림 현상’이 뚜렷하다. 77개 PB센터 중 서울에 위치한 것이 60개다. 이중 절반을 상회하는 38개 PB센터가 강남3구에 몰려 있다.

윤향미 유안타증권 GWM반포센터장은 “반포 주민들은 한번 거래하면 할아버지, 아버지, 자녀까지 3대가 거래한다”며 “증여·상속 시점 등 부촌 주민들에게 진짜 필요한 서비스를 ‘주민밀착형’으로 제공하고 있다”고 말했다.

은행들도 VIP 고객 유치를 위해 이 같은 부촌 아파트 상가에 PB점을 입점시키는 데 주력하고 있다. KB국민은행의 경우 서울숲PB센터는 아크로 서울포레스트 디타워 스트리트동에, 여의도PB센터는 브라이튼여의도 상가에, 목동PB센터는 목동트라팰리스 이스턴에비뉴 빌딩에 있다.

이처럼 같은 동네에서도 신축 고급 아파트와 구축 아파트 간 빈부 격차와 생활 인프라 격차가 커지는 현상이 심화되는 중이다. 당연히 입주민과 비입주민 사이에 선을 긋고, ‘끼리끼리 문화’를 형성하며 부동산을 통해 형성된 사회적 양극화가 소통의 단절을 야기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이는 정치적 성향 차이로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위지혜·박재영·황순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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