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과점 플랫폼 규제법 무산…공정위, 업계 반발에 백지화 > 경제기사 | economics

공정거래위원회가 거대 플랫폼들을 ‘지배적 사업자’로 사전 지정해 규제하는 방안을 철회하기로 했다. 대신 불공정 행위를 저지른 플랫폼 가운데 독점력을 갖춘 곳을 지배적 사업자로 사후 추정해 위법성 입증 책임을 무는 방식을 도입한다. 사전 지정 방안이 국내 플랫폼에 대한 과잉 규제가 될 수 있다는 업계와 전문가의 지적을 수용했다는 게 공정위 측 설명이지만, 사후 추정 방식으로는 규제 실효성이 크게 떨어질 것이란 비판도 나온다.

◇사전 지정 발표 9개월 만 백지화

9일 공정위는 ‘플랫폼 공정 경쟁 촉진 방안’을 발표하고, 이 같은 내용의 공정거래법 개정안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당초 공정위는 지난해 12월 국무회의에서 지배적 사업자를 사전 지정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플랫폼법’을 제정하겠다고 밝혔다. 사전 지정 방안은 EU나 영국, 일본 등에서 도입한 플랫폼 규제로, 사전에 독·과점력을 갖춘 사업자로 지정된 플랫폼은 자사 우대나 끼워팔기 등 불공정 행위를 벌일 경우 위법성 입증 책임을 지게 된다. 플랫폼이 위법성이 없다는 사실을 입증하지 못하면 곧바로 처벌을 가할 수 있어, 신속한 제재가 가능하다.


공정위는 이 방안을 그대로 들여와 새로운 규제법안을 도입하려 했지만, 국내·외 플랫폼 업계에서 반발이 컸다. 특히 우리나라는 미국 플랫폼에 의존하는 유럽 등과 달리 국내 플랫폼이 자리를 잡고 있어, 규제가 도입될 경우 국내 플랫폼만 타격을 입고 경쟁력을 잃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에 공정위는 지난 2월 사전 지정 방안 ‘원점 재검토’ 입장을 밝혔다. 이어 법 제정 의사를 밝힌 지 9개월 만에 사전 지정 방안을 전면 철회하고 기존 경쟁법을 개정하는 수준의 타협안을 제시한 것이다.

◇시장 점유율 60% 이상이면 ‘지배적 플랫폼’ 추정하기로

공정위는 사전 지정 방안을 포기하는 대신, 시장 지배적 사업자인 플랫폼을 ‘사후 추정’해 입증 책임을 물기로 했다. 이 플랫폼들에 대해서는 적용되는 과징금 상한도 8%로 올라가고, 임시중지명령도 내리기로 했다.

이에 따라 플랫폼이 자사 우대나 끼워팔기 등 불공정 행위를 하게 되면, 공정위는 이 플랫폼이 지배적 사업자인지를 따져보게 된다. 만일 이 플랫폼의 시장 점유율이 60% 이상이고 이용자 수가 1000만명 이상이거나, 이 플랫폼을 포함한 상위 3개 사업자의 시장 점유율이 85% 이상이고 각사별 이용자 수가 2000만명 이상인 경우엔 지배적 사업자로 분류된다. 다만 연매출이 4조원 이하면 적용 대상에서 제외된다.

이렇게 사후적으로 지배적 플랫폼으로 추정되면, 위법성 입증 책임이 플랫폼 측에 부과되고, 과징금이 관련매출액의 최대 6%에서 최대 8%로 상향된다. 동시에 ‘당장 위법행위를 멈추라’는 취지의 임시중지명령도 부과할 수 있다. 규제 강도 자체는 사전 지정 방안과 비슷한 수준이라는 게 공정위 측 설명이다.

그러나 사후 추정 방식은 결국 시장의 범위를 획정하고, 시장 내 점유율을 계산하는 작업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사전 지정 방안보다 제재 신속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공정위는 정기적인 시장 실태 파악을 통해 주요 플랫폼사의 점유율 등을 미리 파악할 예정이라고 하지만, 실태 파악 시점과 불공정 행위 발생 시점 간의 시차가 있으면 결국에 별도 조사가 이뤄질 수밖에 없다.

◇구글·애플·카카오 등 ‘지배적 플랫폼’ 예상...쿠팡·배민 빠질 듯

한편, 업계에서는 불공정 행위를 할 경우 지배적 사업자로 사후 추정될 것으로 보이는 플랫픔으로 구글앱마켓, 동영상, 운영체제, 검색 분야, 애플앱마켓, 운영체제 등, 카카오SNS, 택시중개 등, 그리고 네이버검색 등이 거론된다.

다만 쿠팡과 배달의민족은 매출요건연간 4조원이나 점유율 요건이 안돼 빠질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쿠팡의 경우에는 매출에서 직매입이 90% 정도이고 중개거래가 10% 정도인데, 이번에 규제하는 분야는 중개만 포함되기 때문에 더욱 지배적 사업자 추정에서 제외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이날 공정위는 티몬·위메프 사태처럼 플랫폼으로부터 입점 업체가 판매 대금을 제때 정산받지 못하는 등의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대규모유통업법’ 개정 방향도 발표했다. 공정위는 대규모유통업법 적용대상에 재화·용역 거래를 중개하는 일정 규모 이상의 플랫폼을 포함시키고, 이 플랫폼에 대해서는 정산 기한을 준수하고 판매 대금을 별도 관리하도록 하는 의무를 부여하기로 했다.

이때 정산 기한은 구매 확정일청약 철회 기한 만료일로부터 10~20일 이내, 혹은 월 판매 마감일로부터 30일 이내 중에서 결정할 계획이다. 한기정 공정거래위원장은 “‘대규모유통업법’ 개정 관련 내용은 공청회를 통해 각계 의견을 수렴한 후, 이달 중 최종안을 확정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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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순완 기자 soon@chosun.com 강우량 기자 sabo@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