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보려고 왕복 8시간 걸어요"…시골마을 74%가 식품사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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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 춘천시 북산면 조교리의 한 마을에 사는 20여 가구 주민들은 당장 먹거리를 구하는 것부터 힘든 일이다. 가장 가까운 편의점이나 농산물전문점에 가려면 행정구획선을 넘어 홍천군으로 가야 한다. 약 14㎞ 도로를 걸어갔다 오려면 왕복 8시간가량이 걸린다. 자동차를 타야 1시간 정도로 줄일 수 있다. 다른 생필품도 함께 구매하기 위해 춘천 시내 대형마트에 가려면 더 큰맘을 먹어야 한다. 자동차로 약 60여㎞를 오가면 2시간 정도가 흐른다. 이 마을을 관할하는 행정복지센터 관계자는 “주민 중에는 시내로 빨리 가기 위해 소양호에 모터보트를 띄우는 경우도 있다”고 전했다.
한국에 사막은 없지만, 조교리처럼 집 근처에서 먹거리를 구하기 어려운 ‘식품사막’이 있다. 최근 수도권 인구 집중 등의 여파에 따라 지방을 중심으로 폭넓게 퍼지는 중이다. 식품사막Food Desert이란 식재료 등 식료품을 구하기 힘든 지역 또는 사회문제를 일컫는 말로 1990년대 영국에서 처음 쓰인 학계 용어다.
식품사막은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 16일 통계청의 ‘2020년 농림어업총조사’에 따르면 전국 행정리 3만7563개 중 2만7609개73.5%는 식료품 소매점이 없다. 행정리란 법정리에 1개 또는 여러 개로 설치한 행정 구역을 뜻한다. 20~100여 가구가 모여 사는 촌 또는 부락을 기초로 하는 경우가 많다. 쉽게 말해 농·어·산촌의 마을 단위로 볼 수 있다.
최근엔 신선식품 등을 집까지 ‘새벽배송’ 해주는 서비스가 유행이다. 그러나 수도권·도시를 중심으로만 제공되고 있다. 나라살림연구소에 따르면 지난해 말 현재 쿠팡·SSG닷컴·컬리·오아시스의 새벽배송을 받지 못하는 시·군·구는 전체 250개 중 123곳49.2%에 달했다.
식품사막에 사는 주민들은 소비에 불편을 겪는 것을 넘어 영양 불균형 등 건강 문제에 시달리기도 한다. 충북 옥천군 청성면 장연리 한 마을의 70대 주민 홍모씨는 “장을 보기 어려워 반찬은 주로 오래 보관할 수 있는 장아찌나 젓갈”이라며 “인스턴트 라면도 자주 먹어, 건강 걱정이 많이 든다”고 말했다. 홍씨가 10㎞가량 떨어진 마트에 갈 방법은 옥천군이 운영하는 ‘다람쥐 택시’버스가 다니지 않는 마을 주민에게 저렴한 요금으로 제공하는 공공 택시 서비스를 타는 것뿐이다.
식품 사막은 확산 흐름을 보인다. 저출산과 수도권·도시 집중화 현상 등이 겹친 탓이다. 소비층이 감소하면 소매점 입장에선 수지타산을 맞추기 어려워 떠날 가능성이 커진다. 전남 영암군 대신리 한 마을의 60대 주민 강모씨는 “2000년쯤 동네에 유일하게 있던 구멍가게가 없어져 주변 마을 가게를 이용했다가 사람이 계속 빠져나가 그 가게마저 문을 닫았다”며 “동네 가게들은 다 없어지는 추세”라고 말했다.
김한호 서울대 농업자원경제학과 교수는 “식품사막을 방치하면 도시 집중 현상을 가속화하는 데다 귀농 등을 하려는 움직임을 막게 되고 농·어·산촌 공동화 심화→식품사막 확대 등으로 악순환에 빠질 수밖에 없다”고 진단했다. 이미 농촌의 경우 소멸의 길로 가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12월1일 현재 국내 농가 수99만9000가구는 조사를 시작한 1949년 이래 처음으로 100만 가구 선을 밑돌았다. 농가의 65세 이상 인구 비율52.6%은 처음으로 50%를 넘어, 농촌 소멸 흐름은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다. 앞으로 식품사막은 계속 늘어날 것이라는 의미다.
김주원 기자
식품사막은 서울에도 있다. 구자용 상명대 공간환경학부 교수 연구팀은 지난해 낸 논문 ‘위치기반 소셜 네트워크 데이터를 이용한 서울시 식품 사막의 공간적 탐색’을 통해 “서울에서 500m 이내에 식품 상점이 위치하지 않는 지역은 약 6.32㎢”라고 밝혔다. 서울 전체 면적605.21㎢의 1%가량에 해당하는 비율이다. 서울 식품 사막 대부분은 북한산과 관악산 등 주변 지역과 은평·강서·구로구 등 외곽 지역에 위치했다.
김성훈 충남대 농업경제학과 교수는 “식품사막은 거리 이동이 어려운 노인이나 장애인 등 식품 취약계층의 삶을 위협한다”며 “정부가 더욱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농·어·산촌 식품사막 현상과 관련해 현재 농림축산식품부는 ‘가가호호 농촌 이동장터’를 추진하고 있다. 트럭에 식품 등 생필품을 싣고 식품사막을 찾아 주민들이 손쉽게 장을 보도록 하겠다는 게 주요 내용이다. 일부 지역에서 운영 중인 이동장터를 전국화하겠다는 이야기다. 송미령 농림부 장관은 “이동장터가 오아시스 같은 존재가 될 수 있도록 지자체와 농협이 적극적으로 참여해달라”며 “정부도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한이철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흩어져 있는 마을을 거점 지역으로 모으도록 유도하든지, 여러 마을당 하나씩 소매점이 들어서도록 지원을 하든지 등의 대안도 검토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도시의 식품사막 문제에 대해서는 정비사업을 활성화하는 것이 대안으로 꼽힌다. 서진형 광운대 부동산법무학과 교수는 “재개발 등 정비사업을 통해 마트 등이 들어가기 쉽게 인프라를 조성해야 한다”며 "정비사업을 활성화하면 주민 밀도가 높아져 마트 등을 끌어들이는 효과가 있다"고 설명했다.
☞식품사막=1990년대 영국 스코틀랜드에서 처음 쓰였다. 교외화가 진행되면서 식료품점이 따라 이전하자 남은 거주자 중에선 식품 구매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생겼기 때문이다. 일본에선 거주지에서 500m 이내에 식료품점이 없는 노인 등을 ‘장보기 약자’로 규정하는데, 그 수는 800만명을 넘는 것으로 추산된다.
세종=김민중 기자 kim.minjoong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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