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증시 위협하는 0.001초 AI 초단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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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8월 8일 오후 2시께, 점심 이후 나른했던 시장 공기가 일순간 팽팽해졌다. 당시 초전도체 관련 테마주로 꼽히며 급등했던 종목들이 무더기로 급락한 것이다. 주가 조정까지 걸린 시간은 단 20여분. 이 급락 사태는 국내 연구진이 발견한 상온·상압 초전도체 물질LK-99과 관련된 진위 논란 속에서 발생했지만, 이렇게까지 매도세가 급격한 건 단순히 개인 투자자들의 ‘패닉 셀’로만 보기 어렵다는 분석이 나왔다. ▶관련기사 3면
증시 전문가들은 DMA직접전용주문선를 통한 초단타 매매가 주가 급락의 방아쇠가 됐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DMA는 외국인과 기관들이 AI 알고리즘으로 설계한 주문을 거래소 체결 시스템에 곧바로 전송할 수 있는 ‘고속 매매 시스템’이다. 개인이 사용하는 시스템의 처리 속도가 0.02~0.05초인 반면, DMA를 통한 주문은 단 0.001초 만에 처리된다.
▶“개미 울린 ‘제2의 시타델 사태’ 연상”=지난해 급락 장면이 다시 소환된 배경에는 최근 시장에서 ‘제2의 시타델 DMA 사태’가 의심되는 현상이 부쩍 잦아졌기 때문이다. 2017년 시타델증권은 DMA를 이용한 알고리즘 매매로 매수세를 유도해 가격을 올린 뒤, 보유 물량을 처분하고 매수 주문을 취소하는 방식으로 시장을 교란시켰다.
6년이 지난 지금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올해 3월, 정의정 한국주식투자자연합회 대표는 이복현 금융감독원 원장을 만나 “주로 조세회피처를 통한 펀드나 외국인들이 시세 차익을 위해 DMA를 이용해 0.001초 단위의 고빈도 단타 매매를 하면서 시세조종에 관여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한 업계 관계자는 “현재의 시장 우려를 가볍게 넘겨서는 안될 것”이라고 말한다.
▶DMA 기반 ‘극초단타’거래자 증가=DMA를 통해 ‘극초단타’ 매매를 하는 외국인 투자자들이 얼마나 될까? 먼저 DMA 채널을 활용한 ‘극초단타’를 하려면 거래소에 사전 등록을 해야 한다. 거래소가 ‘제2의 시타델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 지난해 1월부터 ‘고속 알고리즘 거래자 등록제’를 시행했기 때문이다.
본지가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강훈식 의원실로부터 한국거래소 제출 자료를 확인한 결과, 올 들어 고속 알고리즘 거래자로 등록된 외국인 투자자는 총 64곳8월 9일 기준으로 작년 말59곳 대비 8.5%기관 5곳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고빈도 알고리즘 매매High Frequency Trading·HFT 거래자로도 불리는데, HFT는 통상적으로 고속 알고리즘 거래를 통해 고속·고빈도로 이뤄지는 주식 거래를 뜻한다.
이는 미국과 유럽에서 HFT 규제가 강화됨에 따라 외국인 투자자들이 아시아 시장으로 눈을 돌린 결과라는 분석이 나온다. 현재까지 등록된 국내외 HFT 투자자개인·기관는 총 281곳이며, 외국인이 전체 등록자의 23%를 차지한다. 이들은 막대한 자금을 굴리고 있어, 기관 한 곳이 늘어날 때마다 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상당할 것이라고 업계 관계자들은 말한다.
▶“外人, 개인회전율 높은 코스닥 종목 노려”=전문가들이 우려하는 점은 외국인들이 개인들의 매수 비중과 회전율이 높은 코스닥 종목을 타깃으로 HFT 거래를 하는 행태가 강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최근 모 외국계 창구의 매수·매도 포지션 변동이 유독 잦은데, 이는 2017년 시타델증권의 시장 교란 때보다 더 심각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최근 10년간 해당 증권사의 거래비중을 살펴보면, 한자리 수에서 지난해 돌연 14%대까지 증가한 것으로 파악됐다.
아울러 지난 5월에는 통상 우량주를 매수해 장기 보유하는 가치 투자 전략을 썼던 외국인들이 최근 들어 HFT로 주도 세력이 바뀌고 있다는 연구 결과한국증권학회도 발표됐다.
▶“HFT 글로벌 트렌드 VS 시장교란 부작용”=일각에선 HFT 거래를 지나치게 부정적으로 보는 것에 대한 반박도 제기한다. HFT는 유동성을 공급하는 데 기여하고 이미 미국 등 글로벌 시장에서도 널리 사용되는 매매 기법이기 때문이다. 자본시장연구원에 따르면, 2020년 기준 미국 주식 거래량의 50%, 유럽 주식 거래량의 20~40%는 HFT 거래로 추정된다. 오히려 과도한 제약을 가하면 HFT 전략을 사용하는 외국인의 이탈, 파생상품 시장 거래량 위축 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HFT에 대한 불신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면 ‘공매도 시즌2’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한다. HFT는 사실상 대규모 자금을 운용하는 외국인과 기관의 전유물로, 개인들은 이러한 매매 방식에 대응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게다가 초단타 매매는 수백, 수천 개의 종목을 일일이 분석해야 해서 불법성이나 조작 의도를 입증하는 게 매우 어렵다.
서지용 상명대 경영학부 교수는 “DMA를 통한 HFT는 아직 공매도처럼 실제 피해 사례가 더 많이 나오지 않아 사회적으로 이슈가 안됐을 뿐”이라며 “사전 예방과 사후제재를 더 강화해야 하는 중요한 문제”라고 강조했다. 강훈식 의원은 “날로 정교해지고 있는 AI 초단타 매매 성장 속도를 금융당국과 거래소가 따라가지 못한다면 개인 투자자 피해로 이어질 수 밖에 없다”고 했다.
유혜림·김민지 기자
forest@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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