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낳고, 낳지 못하고…가르는 기준, 돈이 돼간다 > 경제기사 | economics

본문 바로가기
사이트 내 전체검색

경제기사 | economics

아이 낳고, 낳지 못하고…가르는 기준, 돈이 돼간다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수집기
댓글 0건 조회 90회 작성일 24-04-08 08:05

본문

뉴스 기사
지난해 4분기 출산율이 처음으로 0.6명대로 떨어지며 저출산 현상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지난 2월 서울 시내 한 산후조리원 신생아실에서 간호사 등 관계자들이 신생아들을 돌보고 있다. 연합뉴스

1800년대 후반을 배경으로 한 판소리 사설 ‘박흥보가’신재효 개작, 흥부전에 나오는 흥부는 가난하지만 ’자식 부자’였다. 슬하에 아들만 스물다섯을 뒀다. 제비 다리를 고쳐준 착한 흥부 이야기 뒤 한국인에게 오랫동안 각인된 숨겨진 메시지가 있다. 가난한데도 무책임하게 자꾸 애만 낳는다거나 자녀를 많이 출산해 가난하다는 서사다.



고전 소설에 깃든 서사는 20세기 중반 국가 주도로 재생산해 확산했다. 1964년 2월4일 제작 방영한 ‘대한 뉴스’ 가족계획 광고는 섬뜩하다. “해마다 대구시만 한 인구가 늘고 있어 100년 후면은 6억 인구가 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먹고살 땅도 똑딱 하는 순간마다 자꾸 늘어야 할 텐데, 그렇진 않고요. 이건 그저 만화라고 웃어넘길 수는 없습니다.” 앵커 음성에 맞물린 흑백 애니메이션은 쌀의 수요량보다 공급량이 부족한 그래픽으로 설득력을 높인 뒤 발 디딜 틈 없는 땅에서 밀려난 사람들이 물에 빠져 죽는 장면으로 끝맺는다. 식량은 산술급수적으로 느는데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 식량 부족으로 인한 빈곤이 불가피하다는 18세기 맬서스가 쓴 ‘인구론’의 만화적 표현이다. 묵시록 느낌의 공익 광고는 “덮어 놓고 낳다 보면 거지꼴을 못 면한다”는 자막으로 갈무리한다. 자녀가 많은 게 빈곤의 원인이라는 인식을 잘 보여준다.




다자녀가 가난의 원인이라고 볼 순 없지만 자녀를 얼마나 낳는지가 소득 수준과 깊은 상관성을 갖는 건 사실이다. 지난해 우리나라 합계출산율TFR, 이하 출산율은 0.72로 세계에서 가장 낮다. 출산율은 여성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하는 평균 출생아 수를 나타낸다. 시계를 거꾸로 돌려 흥부전 배경이 된 조선 후기에는 6.81로 추정된다‘한국인구학’ 32권 1호. 100년 뒤 6억 명까지 늘어날 수 있다며 인구과잉 공포를 조성했던 1964년도에도 여전히 5.36으로 매우 높다. 정작 2064년 인구는 4020만명 수준으로 지금보다 천만 명 이상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이후 출산율은 1980년대까지 날개 없이 추락했고 이후에도 반전의 기회를 찾지 못한 채 지금까지 하락세가 이어졌다. 시간이 지날수록 출산율이 떨어지는 것과 반대로 소득 수준은 빠르게 높아졌다. 1인당 실질 국민소득은 1964년 157만원에서 지난해 3703만원으로 24배 늘었다.



1960년대 이후 전 세계 합계 출산율 추이. WB 갈무리

이 같은 현상은 많은 나라에서 공통으로 관찰된다. 1964년 지구촌 평균 출산율은 5.1에서 최근 2.32021년 기준까지 떨어졌는데 같은 기간 세계 1인당 평균 GDP국내총생산, 2015년 미 달러 고정 가격 기준는 4105달러에서 1만1319달러2022년 기준로 늘었다.



미국을 보면 산업화 초기인 1800년 7.0을 웃돌던 출산율이 1940년 2.06까지 내려간다. 2차 대전 뒤 반등했다가 이후 다시 하락해 지금은 1.66에 걸쳐 있다. 거꾸로 1인당 실질소득은 지난 220년 동안 거의 40배나 늘었다.



소득 수준에 따른 나라별 출산율 차이도 확연하다. 세계은행WB이 구분한 한국을 포함한 고소득 국가1인당 GNI 1만3846달러 이상의 출산율은 평균 1.5로 낮지만 중간소득 국가는 그보다 높은 2.1, 저소득 국가는 더 높은 4.61135달러 이하으로 나타났다.



소득 수준이 높을수록 출산율이 낮아지는 이유는 소득이 높을수록 자녀의 ‘수’보다 ‘질’을 선호한다거나 ‘엄마의 시간 기회비용’더 많은 자녀를 키우려면 시장에서 일하는 시간을 더 줄여야 하는 일종의 트레이드 오프 비용이 보다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런데 소득과 출산율의 이 오래된 ‘법칙’이 흔들리고 있다.



1980년 미국의 가구백인과 히스패닉 기혼여성 대상 소득 10 분위별소득 크기 따라 10등분 출산율은 정확히 소득과 반비례했다. 즉 소득이 높을수록 출산율이 낮았다. 하지만 30년이 지나자 큰 변화가 나타났다. 과거 내리막이었던 소득 크기에 따른 출산율 그래프 기울기가 2010년 들어서 다소 평평해진다. 이는 중상위 소득층 이상에서 출산율이 증가하면서 나타난 결과다. 특히 소득 최상위10분위 계층의 출산율 반등 폭1.82에서 2.66으로이 가장 컸다. 연구 결과는 마이클 바 샌프란시스코 주립대 교수 등이 2018년 미 세인트루이스 연방준비은행을 통해 발표한 보고서에 담겼다.



1980년 대비 2010년 미국의 소득 분위별 출산율의 변화로 과거 소득이 높을수록 출산율이 낮던 그래프가 30년이 지난 뒤 다소 평평해진 모양새다. 미 세인트루이스 연방준비은행, 2018년

최근 들어 부유한 가정에서 출산율이 상대적으로 더 높아진 원인으로 ‘보육의 불평등과 시장화’를 꼽았다. 즉 보육이 점점 시장화하면서 부자일수록 소득 대비 시간 기회비용이 줄어상대적으로 더 적은 비용으로 구매를 통한 보육 부담을 감소시킬 수 있으므로 출산율을 더 높이는 선택을 한다고 설명한다.



나라 간 비교에서도 소득이 높을수록 출산율이 낮아진다는 이론은 이미 효용성을 빠르게 잃고 있다. 마티아스 드프케 미 노스웨스턴대 교수는 2년 전 전미경제조사국NBER을 통해 발표한 ‘출산의 경제학’에서 “소득과 출산율 간 정형화한 ‘음’#x2013;의 관계가 더는 보편적으로 적용되지 않은 시대에 접어들었다”고 밝혔다. 1980년대 중반에 들어서면서부터 고소득 국가에서 소득과 출산율이 평탄화하거나 일부 국가에서는 역전되기 시작했다. 실제 비교 분석이 가능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13개 나라 가운데 출산율이 가장 높은 나라가 1980년에는 소득 수준이 가장 낮은 스페인과 포르투갈이었다. 하지만 2000년이 되자 가장 부유한 미국과 노르웨이의 출산율이 가장 높은 곳에 위치했다. 특히 스페인은 20년 사이 출산율이 가장 높은 나라에서 가장 낮은 나라로 추락했다.



OECD 고소득 13개국의 출산율 변화를 보여주는 그래픽으로 1980년 대비 2000년에 들어서 소득이 높을수록 출산율도 높아지는 ’역전 현상’을 보여준다. 마티아스 드프케, 2022년.

이런 변화된 법칙은 우리나라 안에서도 강하게 나타났다.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출산율 하락을 겪고 있지만 자세히 뜯어보면 소득 계층에 따라 출산율 차이가 확연하다. 초저출생 사회에서 출산율이 가장 낮은 계층은 소득이 가장 적은 가구다. 소득과 출산율의 관계가 거의 정비례하는 모양새다. 소득이 적은 계층일수록 애 낳기 더욱 꺼리는 불편한 현실을 드러낸다.



지난 2002~2013년 건강보험공단 자료를 활용한 소득 5분위별 출산율 변화를 살펴보면 중상위 소득계층3, 4분위의 출산율이 상대적으로 높고 최하위1분위 계층의 출산율이 가장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계층 간 격차도 컸다. 출산율이 가장 높은 4분위와 1분위 차이는 0.7 안팎으로 두배에 이른다. 그 차이는 11년 동안 거의 그대로 이어졌다. 이는 한국개발연구원KDI 강동수 선임연구위원 등 11명의 전문가가 지난 2020년 펴낸 ‘저출산에 대응한 통합적 정책방안’에 담긴 내용이다. 연구에 참여한 이철희 서울대 교수가 시계열을 2017년까지 확장한 추가 분석2022년, ‘저출산 대응정책 효과의 이질성 분석’에서도 결과는 비슷하다. 결혼과 출산을 하는 데 여건이 가장 나쁜 하위 소득 가구의 형편이 별반 달라지지 않은 것이다.



건강보험 직장가입자 소득수준별 합계출산율 그래프로 소득 5분위 가운데 가장 낮은 1, 2분위 계층의 출산율이 가장 낮다. 이철희, 2022년.

되레 더 나빠졌다고 볼 여지도 적지 않다. 2년 전 유진성 한국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이 한국노동패널 자료로 소득계층별 출산율 변화를 분석한 결과가 그렇다. 2010년에 견줘 2019년 출산율의 변화는 하위층의 경우 51%, 중위층은 45.3%, 상위층은 24.2%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출산율이 다 줄긴 했으나 하위층의 감소 폭이 가장 컸다. 분석은 가계의 가처분소득을 기준으로 크게 3등분 하고, 합계출산율 대신 100 가구15~49세 가구주당 출산 가구 수의 변화로 측정했다.



또 출산 가구로 한정해 소득계층별 비중을 보면 ‘출산 불평등’은 더욱 뚜렷하다. 2019년 출산 가구 가운데 상위층 비중은 54.5%, 중위층은 37%인데 반해 하위층은 8.5%에 불과했다. 돈이 많을수록 아이를 더 낳는 셈이다. 아이를 낳는 사람과 낳지 못하는 사람을 가르는 기준이 점점 돈이 되는 현실이다.



이는 출산율이 소득 분배의 영향을 받는다는 주장과도 맞닿아 있다. 하준경 한양대 교수는 2011년 발표한 ‘저출산의 경제적 요인 분석’을 통해 소득 대비 자녀 1인당 교육 투자가 늘어날수록 출산율은 낮아지게 된다고 밝혔다. 그는 “소득 불평등도가 커질수록 출산율이 낮아진다”며 “소득이 양극화되면 저소득층의 경우 교육비 부담이 급증해서 출산율이 크게 떨어지는 데 반해, 고소득층 출산율은 중산층에 비해 크게 높아지지 않고 경우에 따라서는 중상계층보다 더 낮아질 수도 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시간이 지날수록 출산율이 떨어지고 있으나 OECD 평균회색과 비교해서도 한국파란색의 하락폭이 크다. OECD 데이터 갈무리.

그러니 그의 대안이 소득 대비 교육비 부담을 줄여주는 것만이 아니라 양극화 대책과 중산층 육성 정책으로 이어지는 것도 자연스럽다. 중산층의 비중이 높을수록 출산율이 높아진다는 전제에서다. 결이 조금씩 다르지만 유진성 선임연구위원은 소득 하위층 중심의 출산 정책을, 이철희 교수는 다양한 사회계층별 맞춤형 정책을 제안했다.



물론 소득 더 나아가 경제적 시각과 관점만으로 출산율의 변화를 결코 다 설명할 수 없다. 드프케 교수는 출산의 경제학에서 이제는 ‘여성의 커리어와 가족 목표의 양립을 결정하는 요인’을 출산율의 핵심 동인으로 봐야 한다고 말한다. 실제 과거와 달리 여성의 노동시장 참여율이 높은 나라선진 16개국 가운데 노르웨이, 덴마크, 스웨덴 등 8개국의 출산율이 그렇지 않은 나라보다 높은 것으로 나타난다. 1980년대 들어서면서부터 나타난 현상이다. 추세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드프케는 결정 요인을 크게 네 가지로 구체화했다. 공공보육 및 기타 ‘가족 지원 정책’과 아이 돌봄에 더 많이 기여하는 ‘협력적인 아빠’, 일하는 엄마에 ‘우호적인 사회규범’, 여성의 노동시장 참여가 쉬운 ‘유연한 노동시장’이다.



여성의 노동 참여와 출산율은 반비례하다가 1980년대 들어서 역전되는 현상이 나타난다. OECD 선진 16개국 대상 분석. 마티아스 드프케, 2022년

초저출생에 맞닥뜨린 한국은 위 기준에 맞춰 점수를 매긴다면 거의 낙제점 수준이다. 또한 앞서 살펴봤듯이 소득 수준에 따른 출산 불평등도 심각하다. 세계사적으로 유례를 찾기 힘든 출산율의 하락은 급격한 사회적 변화에 맞선 대응이 총체적으로 부실했음을 보여준다. 흔히 출산율은 ‘종합지표’라고 일컫는데, 출산율 0.7마저 위태로운 우리 사회의 대응 또한 파편적 방식이 아니라 종합적이어야 함을 뜻한다.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류이근 선임기자 ryuyigeun@hani.co.kr



<한겨레 인기기사> ■

막판까지 정권심판론…모든 정책·이슈를 ‘압도’

“세월호는 바퀴 빠진 화물차였다”…가족이 본 미완의 진실탐사

[현장] 감자도 위태롭다…“이렇게 이상한 봄은 처음”

[단독] 주중대사, 보안예산 쓴 활동을 누리집에 공개

봄·여름 같이 왔니?…한낮 최고 26도

[단독] “조국혁신당 기호라서”…MBC ‘복면가왕 9주년’ 결방

[단독] ‘입틀막’ 대통령경호처, 억대 예산 들여 이례적 홍보 행사

‘전원 구조’ 오보, 국민·유족 갈라치기…세월호 보도 참사

총선, 이제 문책의 시간이다 [신진욱 칼럼]

“참을 수 없는 사랑스런 존재”…푸바오, WSJ 1면에

한겨레>


▶▶세월호10년, 한겨레는 잊지 않겠습니다 [후원하기]
▶▶한겨레 뉴스레터 모아보기 ▶▶[기획] 누구나 한번은 1인가구가 된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회원로그인

회원가입

사이트 정보

회사명 : 원미디어 / 대표 : 대표자명
주소 : OO도 OO시 OO구 OO동 123-45
사업자 등록번호 : 123-45-67890
전화 : 02-123-4567 팩스 : 02-123-4568
통신판매업신고번호 : 제 OO구 - 123호
개인정보관리책임자 : 정보책임자명

접속자집계

오늘
1,251
어제
1,084
최대
2,563
전체
488,403
Copyright © 소유하신 도메인.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