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거란전쟁 부른 이 동물, 조선 건국의 기틀되다[땅의 이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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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려거란 전쟁의 발단은 만부교에서 희생된 낙타 50마리
- 발해 멸망시킨 요에 낙타로 응징한 고려, 훗날 조선에 멸망 - 조선 도읍 한양의 좌청룡 낙산은 낙타에서 지명 유래 [이데일리 전재욱 기자] 고려거란전쟁은 고려에서 굶어 죽은 낙타 오십 마리가 결정적인 원인으로 꼽힌다. 만주의 거란족이 세운 요나라는 고려와 친해지고자 924년 사신 30명과 낙타 50마리를 보내 화친을 요청했다. 그러자 고려는 요에서 온 사신을 유배 보내고 낙타 50마리를 개경의 만부교라는 다리 밑에 묶어 굶겨 죽인 것이다. 외교적으로 보면 초강수 대응이었다. 고려가 유난히 강경하게 나온 이유는 요나라가 발해를 멸망시킨 때문이었다. 고려의 태조 왕건은 발해를 “우리와 혼인한 나라”라고 부를 만큼 혈맹으로 여겼다. 발해의 동맹 고려가 발해를 멸망시킨 요나라와 관계를 맺는 것은 부부의 의를 저버리는 일이었다. 이런 배경에서 애먼 낙타가 희생되는 만부교 사건이 발생했고 이후로 양국 관계는 파국으로 치달았다. 그러나 고려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요나라를 금수지국짐승의 나라으로 지칭하고 거리를 뒀고, 지속적으로 북진 정책을 추진했다. 요나라는 이를 빌미로 삼아 993년과 1010년, 1018년 세 차례에 걸쳐 고려를 침공했다. 서희의 담판과 강감찬 장군의 귀주대첩으로 고려는 요의 침공을 막아냈다. 낙타의 죽음이 불러온 나비효과는 요나라의 멸망으로까지 이어진다. 요나라는 1125년 멸망하게 되는데, 고려 침공에 국력을 쏟느라 요동에서 지배력이 흔들린 게 원인으로 꼽힌다. 낙타 때문에 전쟁을 치른 고려는 훗날 조선에 멸망하고, 조선은 낙타 지명을 유래 삼아 건국의 기틀을 다졌다. 조선 태조가 도읍으로 정한 한양은 풍수상 북현무북악산과 남주작남산, 좌청룡낙산, 우백호인왕산가 어우러진 명당이었다. 개중에 낙산은 한양의 동쪽에 있어서 서쪽의 인왕산과 함께 좌우 용과 호랑이로서 조선을 수호하는 명산이었다.
난개발이 이뤄지면서 낙산 주변으로 주택과 아파트가 들어서기 시작했다. 과거 낙타의 형상을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풍광이 크게 훼손됐다. 뒤늦게 서울시가 수립한 낙산복원 계획에 따라 공원화 사업이 진행됐다. 지금의 낙산공원은 2002년 7월 개원했다. ▶ 관련기사 ◀ ☞ 류준열♥한소희 열애인정→환승 의혹 부인…혜리도 입열까 ☞ 김수현♥김지원 ‘세기의 만남..퀸즈그룹 사장의 럭셔리한 차는 ☞ 마이크 꺼주세요...김행·진중권, 말려도 소용없었다 ☞ 미국인과 바람난 아내…美 상간남 소송 가능할까요 ☞ ‘돈나무 언니 캐시 우드 ‘테슬라 사랑…하루새 470억달러 사들여 [바이오 성공 투자 1%를 위한 길라잡이 팜이데일리] 전재욱 imfew@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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