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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지보존지역 코앞까지 산폐장…대기업이 이래도 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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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178회 작성일 24-03-24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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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묻기만 하면 돈”…‘에코’·‘네이처’ 꼬리표 단 계열사 통해 산업폐기물 사업

경남 사천시 곤양면 일대에서 대진일반산업단지 조성 공사가 진행 중이다. 뉴스사천 제공

경남 사천시 곤양면 일대에서 대진일반산업단지 조성 공사가 진행 중이다. 뉴스사천 제공



[주간 경향] “주민들은 산업단지까지는 용납할 수 있다는 입장이었어요. 그렇게 산단 조성이 시작됐는데 시행사가 SK에코플랜트로 바뀌고, 산단 전체의 용도를 이차전지 재활용과 폐배터리 처리시설로 만들겠다고 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우리나라에서 나온 폐배터리만이 아니라 외국의 것도 들여와 처리한 후 매립하겠다고 해요. 처음엔 지역을 살리기 위해 산단이 들어와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후회하죠. 그것조차 못 들어오게 해야 했던 거예요. 돌아보면 산단을 개발하겠다고 해놓고 폐기물 사업장을 들여오는 게 업체들의 전략인 것 같아요.”

강호천 경남 사천시 대진산단 산업폐기물 처리장 반대대책위원장의 말이다. 그는 지난 3월 14일 서울에서 열린 ‘산업폐기물 처리 공공성 확보 요구 집중행동’에 참가했다. 이날 사천을 비롯해 충남 예산, 강원도 강릉·양양, 충북 천안과 경기도 평택·연천 등 전국 각지에서 산업폐기물 매립장·소각장·SRF소각시설에 반대하는 주민들이 모여 서울 종각역 인근 SK서린빌딩, 여의도 태영본사,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 당사 앞에서 집회를 열었다. 이들은 산업폐기물 사업을 추진하는 대표적인 기업인 SK와 태영을 규탄하고, 산업폐기물 처리의 공공성 확보 등을 담은 정책요구안을 각 정당에 전달했다.

■환경과 개발의 엇박자 보여준 대진산단

사천시 곤양면 대진일반산업단지는 원래 우주항공 분야 제조업 유치를 목적으로 조성됐다. 산단 개발이 진척을 보이지 않자 시공사였던 SK에코플랜트가 시행사로 나섰고, 산단 용도를 통째로 ‘자원순환단지’로 바꾸는 변경 요청을 했다. 시는 산단 조성의 본래 목적과 다른 매립장·소각장 등 산업폐기물 처리장으로의 전환은 안 된다며 불허했는데 SK에코플랜트는 지난 1월 24일 ‘이차전지 리사이클링 복합단지’ 조성을 위한 투자의향서를 제출하며 산단 계획 변경을 다시 요청했다.

시는 아직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는데 반대하는 주민들은 SK에코플랜트의 계획이 포장만 바꾼 폐기물 처리장이라고 보고 있다. 새로운 배터리를 만드는 게 아니라 폐배터리를 분쇄·분리·추출·폐기하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SK에코플랜트는 하루 200t이던 소각시설 용량을 절반으로, 매립시설은 16% 줄이고 중금속 추출 과정의 환경오염과 매립장 침출수는 기술적으로 해결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그간 전국 여러 폐기물 매립 시설에서 침출수 유출이나 에어돔 붕괴 사고가 심심찮게 있었다는 점에서 주민들의 불안감은 크다.

대진산단 바로 앞에 있는 사천 광포만 갯벌은 지난해 10월 23일 습지보호지역으로 지정됐다. 국내 최대 규모의 갯잔디 군락지로 생태적 가치가 높은 곳이다. 광포만 습지는 2000년대 초부터 산단 조성으로 사라질 위기에 놓여 있었으나 지역 주민들의 보존 노력 끝에 보호지역으로 지정되는 결실을 얻었다. 하지만 산단에 폐기물 처리장이 들어오면 습지가 오염될 가능성이 크다는 게 주민과 환경단체의 우려다. 박남희 사천·남해·하동 환경운동연합 운영위원은 “‘매립장 땅을 15~20m 파고 돔을 만들어 가스를 저장하고, 침출수는 외부로 유출하지 않겠다. 대기업이라 그런 기술을 갖고 있다’라고 하는데, 실제로는 전국 곳곳에서 침출수 오염이나 해양오염, 에어돔 붕괴가 비일비재하다”라고 말했다.

태영그룹이 산업폐기물 매립장을 추진하고 있는 강릉 주문진읍의 주민들도 침출수 유출에 대한 두려움이 크다. 태영그룹은 사모펀드 KKR과 손잡고 ‘에코비트’라는 회사를 만들어 여러 곳에서 산업폐기물 매립장 사업을 하는데, 주문진읍에서는 ‘태영동부환경’이라는 회사를 별도로 설립해 대규모 산업폐기물 매립장을 추진하고 있다. 지정폐기물까지 처리하는데, 670만㎡로 국내 최대규모다. 이곳도 강릉시가 생태공원으로 지정하려는 부지와 가깝다.

산업폐기물 처리의 공공성 확보를 요구하는 시민들이 3월 14일 서울 여의도 태영건설 본사 앞에서 집회를 열고 있다. 황의혁 제공

산업폐기물 처리의 공공성 확보를 요구하는 시민들이 3월 14일 서울 여의도 태영건설 본사 앞에서 집회를 열고 있다. 황의혁 제공



이날 집회에서 만난 양양군 주민 김경욱씨는 “폐기물 매립장 예정지에서 직선 5㎞ 거리에 주문진항이 있고, 소돌해수욕장이 있다. 해수욕장으로 이어지는 하천에 침출수를 내보낸다고 하는데 아무리 정화한다고 해도 지역 식당이나 횟집을 손님들이 찾을 것이며, 해수욕장에 손님이 올까. 강원 영동 지역에서 나오는 지정폐기물의 양이 전국의 0.2%도 안 되고, 우리나라에서 가장 넓게 남아 있는 청정지역이다. 왜 이곳에 폐기물을 끌어오려는 것인지 희한하다”고 말했다.

■대기업과 사모펀드까지 뛰어든 산업폐기물 사업

대기업이 ‘에코’·‘네이처’ 등의 이름을 단 계열사를 세우고 폐기물 사업에 열중하는 이유는 막대한 수익이다. 폐기물의 양이 늘면서 폐기물 평균 매립 단가는 2016년 t당 11만원에서 2020년 24만원으로 올랐는데, 현재는 그보다 더 높은 수준으로 추정된다. 방치폐기물은 더 비싼데 폐유기용제, 폐석면, 폐농약 등이 t당 60만원을 넘고, 의료폐기물은 t당 140만원에 가깝다.

일단 인허가를 받고 매립장을 건설하면 그 이후엔 돈을 쓸어 담을 수 있어 사모펀드와 대기업 사이에서 산업폐기물 매립장·소각장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인식된다. 실제 공익법률센터 농본의 2023년 자료에 따르면 에코비트는 산업폐기물 매립장 사업 분야에서 1368억원 매출을 거뒀는데 매출액에서 매출원가를 뺀 매출총이익은 1220억원으로 이익률이 89%에 달했다. SK에코플랜트가 100% 지분을 소유하고 있는 경기도 연천의 의료폐기물 소각장 운영업체 도시환경은 2021년 114억원 매출에 29억원의 당기순이익을 올렸다. 영국계 자본이 100% 지분을 소유한 경기도 용인의 의료폐기물 소각장 운영업체 스테리싸이클코리아는 2021년 277억원 매출에 69억원의 당기순이익을 올렸다.

현금 창출 능력이 탁월하다 보니 몸값도 높다. 태영그룹은 지난 1월 워크아웃 중인 태영건설 자구안으로 에코비트의 매각을 결정했는데 기업가치가 3조원 안팎으로 추정됐다. SK에코플랜트는 2021년 6월 클렌코, 대원그린에너지, 새한환경, 디디에스 등 4개 폐기물 처리 기업을 인수하면서 4000억원이 넘는 돈을 썼다. 2022년 5월엔 산업폐기물 매립장을 운영하는 제이에이그린의 지분 70%를 1925억원에 인수했다.

산업폐기물은 지자체가 관리 책임을 진 생활폐기물과 달리 전국 단위로 이동할 수 있다. 그래서 기업이 폐기물 사업을 추진하는 최적지는 땅값이 싸고, 인구가 적어 반대를 쉽게 물리칠 수 있는 농어촌 지역이다. 폐기물이 나오는 곳이 아님에도 폐기물 책임을 거의 전담하다시피 하는 상황이 벌어진다. 기업이 농어촌 지역을 설득하는 주요 논리는 지역 부흥과 일자리 유치를 위한 산단 개발이다. 실제 SK에코플랜트는 서산시 대산읍, 아산시 선장면 등 충남의 다섯 군데 지역에서 산업단지와 산업폐기물 매립장을 패키지로 추진하고 있다.

기업들은 사업을 원활히 추진하기 위해 ‘활동비’를 지급하면서 주민들을 회유하고, 마을 주민들은 찬성파·반대파로 나뉘어 갈등을 겪는다. 산단 개발이나 폐기물 매립장·소각장이 들어서는 농촌 지역에서 되풀이되는 광경이다. 곤양면 석문마을 이장이기도 한 강호천 위원장은 “SK에서 활동비를 받아서 찬성 활동을 하는 세력이 있는데, 그래서 주민 간 갈등이 심했다. 지금도 마을이 반대파·추진파로 갈려서 서로 말도 안 할 정도로 앙금이 남았다”고 말했다.

경기 연천군 청산면 대전리에 있는 염색 공장과 폐기물 소각장에서 매연이 나오고 있다. 황의혁 제공

경기 연천군 청산면 대전리에 있는 염색 공장과 폐기물 소각장에서 매연이 나오고 있다. 황의혁 제공



■발생지 책임 원칙, 공공 관리 도입해야

이익은 민간업체가 갖지만 사후관리는 결국 공공이 떠맡는 경우가 많다. 충북 제천시의 경우에 에어돔 붕괴사고가 일어난 매립장을 시가 98억원을 들여서 복구했고, 충남 당진시의 고대부곡 매립장과 경기도 화성시 주곡리 매립장의 경우 업체가 부도를 내면서 지자체가 사후관리 부담을 떠안았다. 업체가 매립으로 이익을 얻은 후 30년 사후관리를 맡을 땐 고의로 부도를 낸다는 의혹도 제기된다.

폐기물 매립장에서의 침출수 유출과 소각으로 인한 대기 오염에 따른 피해는 주민이 감당하고 있다. 경기 연천군 청산면 대전리에는 산업시설과 폐기물 소각장이 주거지를 중심으로 밀집해있다. 섬유 염색 공장이 15개 업체 이상 입주해 있고 아스콘 공장 한 곳, 건설폐기물 처리장 두 곳 등이 영업하고 있다. 여기에 지난해 12월 SRF폐비닐, 폐플라스틱 등의 가연성 물질을 선별해 건조 과정 등을 거친 고형폐기물연료 소각장이 추가됐다. SRF소각로는 마을 거주지와 불과 60m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

황의혁 SRF열병합발전소 설치 반대 대책위원회 부위원장은 “제일 심각한 건 지난해 겨울부터 가동한 SRF 소각장이다. 마을 한가운데 들어와 연기와 소음을 내고 있다”고 말했다. 황 부위원장은 “지난 10년간 마을 주민 30명이 돌아가셨는데 전부 사인은 암이었다. 30년간 마을 주변에 들어온 공장, 매립장이 내뿜는 오염물질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농촌 지역에 환경오염 시설이 주거지와 혼재한 경우는 드물지 않지만, 과학적으로 건강피해와의 인과관계가 규명되지 않은 곳이 많다. 정부·지자체 차원에서 실태조사가 필요한 부분이다. 농촌 환경오염 피해를 조사해온 고정근 공익연구센터 블루닷 대표는 “건강피해는 과학적 연관성을 규명해야 하지만, 소음과 냄새로 인한 스트레스 등으로 최소한 삶의 질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건 분명한 사실”이라면서 “대체로 농촌 지역에 고령자들이 많고, 적절하게 항의할 여건이 안 되는 분들이 많아 폐기물 처리시설이 그쪽으로 집중되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산업폐기물이 나오는 한 이를 처리할 시설은 사회적으로 필요하지만, 그 과정이 정의롭지 않은 게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이날 집회 참가자들은 산업폐기물 처리의 공공성 확보, 발생지 책임 원칙 확립, 주민감시 보장과 실태조사, 환경영향평가제도 개선, 정책 전환을 위한 국회 주관의 정·민·관 합동 TF 구성이라는 5가지 해결 원칙을 제시했다.

고정근 대표는 “법으로 어렵다면 지역 조례로라도 최소한 주거지에 인접해 들어가는 건 공적으로 제한해야 한다”며 “민간기업이 운영하더라도 공공이 운영하는 정도로 정보가 공개되고, 지역 의회와 시민사회가 감시할 수 있도록 공적 관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하승수 농본 대표변호사도 “폐기물 처리시설 설치촉진 및 주변지역지원 등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주민감시나 주민참여 조항은 생활폐기물에만 적용되고, 민간업체가 하는 산업폐기물에는 적용이 안 된다”며 “생활폐기물보다 더 위험성이 큰 산업폐기물에도 주민감시를 보장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정책 제안서에 민주당은 주민감시권 보장과 TF 구성에 찬성하고 나머지는 보류했고, 국민의힘은 아직 답변이 없다”며 “일단 논의를 시작하는 게 중요하고, 22대 국회가 구성되면 법 개정까지 가야 한다”고 말했다.

주영재 기자 jyj@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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