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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비교]⑥갈 곳 없는 시니어의 핫플레이스…종로엔 외로움이 모인다[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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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88회 작성일 24-06-26 0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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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 1000만 시대, 일본을 배우다]⑥
심심함 이기려 아침부터 먼 곳에서 와
장기 시합을 하거나 영화관, 콜라텍으로 향해
갈 곳 없어 오는 경우가 대다수

[한일 비교]⑥갈 곳 없는 시니어의 핫플레이스…종로엔 외로움이 모인다[르포]

서울 종로3가역 인근 국일관 내부에서 남녀가 박자에 맞춰 몸을 움직이고 있다. 사진=박재현 기자


지난 20일, 지하철 1·3·5호선이 교차하는 종로3가역 4번 출구 탑골공원 인근엔 아침부터 멀리서 온 어르신으로 가득했다. 낮 12시 탑골공원 부근 ‘원각사 노인무료급식소’ 앞엔 무료배식을 기다리는 어르신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더운 날씨에도 탑골공원 외곽엔 장기 두는 노인들이 꽤 있었다.


종로3가역 탑골공원 인근엔 저렴한 가격의 음식점과 이발소, 찻집, 영화관이 자리 잡고 있다. 주머니 가벼운 어르신들은 한 끼에 3000원 정도인 작고 허름한 국밥집에서 점심을 먹고 근처의 저렴한 이발관이나 영화관, 콜라텍, 복지관 등에서 시간을 보내다 해가 질 때쯤 집으로 간다.


낙원상가 4층 실버영화관에서 만난 A씨79는 매표소 앞에서 한참 포스터를 바라보고 서 있었다. 종로에 오려면 그가 사는 경기도 김포에서 지하철을 타고 1시간 반을 와야 했지만, A씨가 사는 동네엔 나이 든 이들이 갈 곳이 없어 자주 종로에 온다. A씨는 젊은 시절부터 영화를 좋아했다. 실버영화관 매표소 앞에 붙은 영화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여러 번 봤을 정도다. 이날 영화관엔 1944년 개봉한 ‘서부의 왕자’가 방영되고 있었다. A씨는 서부영화를 좋아해 재관람을 위해 영화관에 왔다.


“노래도 좋아하고, 기타도 잘 치고, 악기도 잘 다뤄요. 외로우니까 다 배웠던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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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종로구 낙원상가 옛 허리우드 극장 자리에 있는 실버영화관과 낭만극장 입구. 사진=허영한 기자 younghan@


가족들과 함께 사는 A씨는 아침 식사를 한 뒤 집을 나선다. 역에 도착해 간단히 점심을 먹고 가장 먼저 들르는 곳은 실버영화관. 이곳에서 영화를 보며 시간을 보내다 서울 동대문구 경동시장으로 향한다. 경동시장엔 1000원만 내면 춤추고 노래 들을 수 있는 콜라텍이 있다. 오후 5~6시쯤 이곳에서 나와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가면 어느새 해가 진다.


낙원상가에서 나와 몇 걸음을 옮기니 장기를 두고 있는 어르신들이 보였다. 그들은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장기판 앞에 동그랗게 둘러앉아 장기 시합을 하고 있었다. 이곳엔 오래된 커피자판기가 있는데, 어르신들은 이곳에서 커피 한 잔 내기로 장기 시합을 한다. 대부분은 나이가 든 남성이다. 워낙 자주 보는 얼굴들이 많다 보니, 굳이 묻지 않더라도 서로의 안부를 알고 있다. 장기 두는 모습을 구경하던 기자에게 B씨는 “장기에 관심 있어요?”하며 말을 걸어왔다. 그는 이곳에 나오는 어르신들의 안부를 챙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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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종로구 탑골공원 뒤 도로변에서 어르신들이 장기를 두고 있다. 사진=허영한 기자 younghan@


“매일 나오던 분이 안 나오면 돌아가셨다는 걸 그때 아는 거죠. 근처에서 저렴하게 점심을 해결하고, 이곳에서 장기를 두며 시간을 보내다가 해가 질 때쯤 집에 돌아가는 분들이 많아요.”


종로2가 육의전빌딩에서 낙원상가 앞까진 송해길이 이어진다. 근처 이발소 앞에 앉아 있던 C씨86는 서울 강동구 천호동에서 아침 9시쯤 종로에 온다. 그는 천호동에도 구립 노인복지관이 있지만, 종로 노인복지관만큼 시설이 좋진 않은 탓에 이곳에 자주 온다. C씨는 종종 종로 노인복지관에서 당구나 탁구를 치고, 춤을 추거나 영어를 배운다. 예전엔 색소폰을 불기도 했다. 그가 천호동에서부터 이곳 종로까지 발을 옮기는 건 혼자 있기엔 심심하고 적적하기 때문이다.


“나는 방 두 개짜리 집에서 혼자 편안하게 살아. 그래도 심심하고 적적하니까 여기로 나오는 거지. 돈이 많아도 슬프고 외로운 건 마찬가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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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종로구 송해길에 송해 선생 흉상이 설치돼 있다. 사진=허영한 기자 younghan@


송해길을 지나 길을 건너 국일관 드림팰리스로 향했다. 기자가 국일관으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에서 9층 버튼을 누르자 함께 탄 어르신은 기자에게 "왜 여길 왔냐"고 물었다. 9층에 도착해 입장료 2000원을 내고 국일관에 들어가자, 디스코 노래와 함께 미러볼 조명이 빛나고 있었다. 어두운 공간엔 남녀가 서로의 손과 허리를 잡고 가볍게 몸을 움직이고 있었다. 오후 3시경, 이곳은 춤을 추는 남녀로 가득 찼다. 한쪽은 ‘246블루스’, 또 한쪽은 ‘잔발’이나 ‘일발’이란 팻말이 붙어 있었다. 어느 공간에 있는지에 따라 움직임도 미세하게 달랐다. 국일관 안쪽엔 작은 카페가 마련돼 있어 커피나 오렌지주스 등을 1000~3000원 가격에 팔고 있었다.


회색 베레모를 쓴 D씨60대는 매일 오후 2~3시쯤 국일관에 온다. 아내랑 따로 사는 그는 아침 일찍 집을 청소한 뒤 점심을 먹고 나와 2시쯤 이곳에 도착한다. 서울 중구 약수동에 사는 D씨는 평소 갈 곳이 없는 탓에 이곳에서 시간을 보낸다. 국일관은 어르신들의 홍대라고도 불린다. 처음 보는 이들끼리 춤을 추고 부킹도 한다. D씨는 이곳에서 음악을 듣고, 춤도 추며 또래들과 이야기를 나눈다. 가볍게 추는 춤이라 부담도 없고 무엇보다 시간이 금방 간단다.


“나이 들면 갈 데가 없잖아. 여긴 노인들이 놀기 좋은 곳이야. 돈도 조금 들고 재밌잖아. 나이가 들면 서로 비슷한 사람들끼리 만나야 해.”


종로에서 만난 어르신들은 때론 영화를 보고, 장기를 두고, 춤을 추며 각자의 여가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박재현 기자 now@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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