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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추 승인 요청 없는데 승인한 대통령, 대통령 승인했는데 검토 중인 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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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227회 작성일 24-06-17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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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생산이 종료된 동해 가스전의 옛 모습. 한국석유공사 제공

2021년 생산이 종료된 동해 가스전의 옛 모습. 한국석유공사 제공



“대통령은 동해 심해 가스전에 석유·가스 부존 여부를 확인하기 위하여 금년 말 1차공 시추를 포함하여 앞으로 최소 5공의 시추가 필요하다는 산업부 장관의 보고를 받고 이를 승인한 것입니다. 산업부는 석유공사가 1차공 시추계획을 구체적으로 수립하여 승인을 요청하면 검토를 거쳐 승인 여부를 최종 결정할 것입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 16일 이 같은 내용을 담은 보도설명자료를 배포했다. 경향신문 단독 보도석유공사, 이미 1월 ‘동해 심해’ 탐사 시추 이사회 의결…대통령 직접 브리핑 왜?에 대한 설명자료였다. 경향신문은 한국석유공사가 이미 지난 1월 열린 이사회에서 동해 심해 유전 탐사 시추를 추진하기로 의결했음에도, 승인 권한이 없는 윤석열 대통령이 의결로부터 4개월여 지난 시점에 승인을 발표한 부분을 짚었다. 산업부는 같은 자료에 “석유공사가 실제 시추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30일 전에 시추 일정과 장소, 시추 필요성 등을 포함한 세부 시추계획을 수립하여 산업부의 최종 승인을 받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산업부 설명은 2개 명제로 축약할 수 있는데, 서로 논리가 맞지 않는다. 산업부 설명을 풀어 쓰면 다음과 같다. ① 안덕근 산업부 장관이 1차 탐사 시추를 포함해 5차 탐사 시추까지 필요하다 보고했고, 윤 대통령이 지난 3일 승인했다 ② 석유공사가 시추하려면 세부 계획을 세워 산업부 승인을 받아야 하는데 아직 석유공사는 산업부에 승인을 요청하지도 않았다. 종합하면, 산업부조차 승인하지 않은 계획을 장관이 대통령에게 보고했고 대통령이 승인했다는 말이다. 다른 말로는 대통령이 이미 승인한 계획을 산업부가 검토한 뒤 승인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의미다. 사실상 법령에서 명확히 규정하고 있지 않은 권한을 승인 이유로 들다 보니, 이 같은 설명이 나온 것으로 보인다.

윤 대통령이 직접 브리핑에 나선 배경을 두고 정치권 안팎에서는 국면 전환용이 아니었냐는 의혹이 나온다. 당시 브리핑에서 크게 주목받지 않은 대목이 있다. “우리 정부 들어와서”다. 윤 대통령은 브리핑에서 “우리 정부 들어와서 지난해인 2023년 2월 동해 가스전 주변에 더 많은 석유 가스전이 존재할 가능성이 높다는 판단하에 세계 최고 수준의 심해 기술 평가 전문기업인 미국의 액트지오사에 물리탐사 심층 분석을 맡겼다”고 말했다.

동해 심해를 15년간 탐사하던 호주 유력 개발사 ‘우드사이드’는 2022년 7월 철수 의향을 밝혔고, 이때부터 석유공사가 독자적으로 탐사를 진행했다. 윤석열 정부 시기와 딱 맞물리게 된 것이다. 여기에 액트지오가 심층 분석한 결과, 탐사 자원량 최대 140억배럴이라는 업계에서도 믿기 힘든 결과가 나왔다. 대통령실 입장에서 윤석열 정부의 치적으로 ‘이보다 더 좋을 순 없었지 않았을까’ 하는 의혹이 제기되는 건 어떤 면에서 자연스러운 해석이다.

시추 비용과 관련해 시추 1회당 1000억원, 총 5000억원이 거론된다. 그런데 이는 석유가 있는지 파보는 ‘탐사 시추’ 회당 비용이다. 탐사 시추로 원유나 가스가 매장돼 있는 걸 확인하더라도 평가 시추를 거쳐야 생산 가능성을 판단할 수 있다. 석유공사에 따르면 탐사 시추에서 석유가 발견되더라도 매장량이 얼마인지 알아보기 위한 평가 시추도 3~4회 더 진행해야 한다. 평가 시추 이후 품질이나 여러 측면에서 경제성이 없다고 판단되면 그동안 투입한 천문학적 비용은 모두 매몰된다. 물론 실패하더라도 석유공사 등의 심해 탐사 능력과 노하우는 얻을 수 있다. 다만 이 역시 해외 탐사를 통해서 얻을 수 있는 부분이다.

동해 심해 탐사와 관련해 비판적 보도를 하니 ‘석유가 안 나오길 바란다’는 오해를 받기도 한다. 동해에 석유가 매장돼 있다면 반가운 일이다. 탄소 배출 문제로 인해 당장 생산하지 않더라도 21세기 들어 발견된 심해 최대 가이아나 광구보다 많은 석유가 있다면 이를 반기지 않을 국민은 매우 적어 보인다. 적어도 한국은행이 이역만리 영국에 맡겨둔 금괴보다 더 든든한 일이다.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건너라’는 말이 있다. 그런데 돌다리를 분석한 업체에 대한 전문성·신뢰성, ‘건너도 된다’는 분석 결과에 대한 검증, 입찰 과정 등 여러 의혹이 나오고 있다. 건넌다 해도 그 앞에 어떤 길이 있는지 알 수 없다. 낭떠러지탄소중립 시대라 되돌아와야 할 수도 있다. 대통령실 입장에서 임기 내 석유가 나오면 이보다 더 좋을 순 없겠지만, 충분히 두들겨 보고 조금 늦더라도 다리 건너 뭐가 있는지 확인한 뒤 건너는 걸 결정해도 늦지 않다. 경제성 있는 석유가 매장돼 있다면 임기가 끝난 뒤라도 윤석열 정부의 치적과 석유공사의 업적은 매몰되지 않는다.



김경학 기자 gomgo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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