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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대 족보 가진 선배=권력"…학교 복귀 못하는 의대생의 속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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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14회 작성일 24-09-26 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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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계 블랙리스트 연속 보도 후 이메일로 연락와
의대는 선배 영향력 특히 세…2020년 파업 선례 작용
기출문제 공개하고 사직 전공의 처분 확정돼야 복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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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의 한 의과대학 강의실이 텅 비어있다./사진=[대구=뉴시스] 이무열 기자

의료계 블랙리스트 연속 보도 이후 의대생으로 추정되는 A씨가 머니투데이에 이메일을 보냈다. 그는 "의료계 내부에서 보는 것과 외부의 생각에 괴리가 있다"며 의대생, 전공의가 복귀하지 못하는 이유를 상세히 밝혔다. A씨에 따르면 의대 족보와 전공의 선발에서 권력을 선배들이 갖고 있다는 점이 의대생 복귀를 가로막고 있다. 그와 세 차례에 걸쳐 나눈 이메일 내용을 질의응답 형식으로 정리한다. 현직 의사에게 내용에 과장과 허위가 없는지 확인했다. 이 의사는 "대체로 맞다"고 했다.

-의대생 2학기 수업 출석률은 2.7%7월 22일 기준, 진선미 더불어민주당 의원실로 전공의 복귀율9월 24일 기준 8.8%보다 훨씬 낮다.
▶끈끈하게 묶인 선후배 관계가 그 누구도 이 단일대오에서 이탈하지 못하게 한다. 블랙리스트에서 보듯 서로서로 감시하고 있다. 의사면허가 있고 소속이 있는 전공의들은 그나마 조금씩 복귀하지만, 의대생들은 지금 아무것도 못 하고 사태를 지켜보고만 있다. 불만을 갖는 의대생도 많다.

-선배의 영향력이 그렇게 큰가.
▶자료를 다 막아놔서 지금 돌아가면 말도 안 되는 고생을 하며 학교에 다녀야 한다. 복귀하면 전공의 선발 때 인기과피부과, 안과, 성형외과 등 가는 걸 반드시 막겠다는 선배들도 많다.


-자료는 시험 족보를 말하나.
▶그렇다.

-얼마나 중요한가.
▶의대 교수가 올리는 수업 자료는 너무 많다. 하루에 PPT가 수백장 나오기도 한다. 시간상 전부 정리하고 외우기란 불가능하다. 의대 공부는 어렵고 쉬운 게 아니라 무엇이 중요한지, 무엇을 외워야 하는지를 모르는 게 어려운 것이다. 그래서 시험 문제를 복원하고, 중요한 수업 내용만 뽑아 간소화해서 족보라는 형태로 전해져 내려온다. 선배들이 후배에게 주는 정리 자료, 기출 복원 등이 핵심이고 인계장 등 종류가 엄청나게 많고 굉장히 체계적이다. 족보가 한 학기에 몇 장이 나오는 게 아니고 1000장 단위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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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대 족보는 책으로 만들 만큼 분량이 방대하다./사진=웹페이지 캡처

-족보가 없으면 시험을 보지 못할 정도인가.
▶족보는 수백장의 ppt를 수십장 내외로 줄인 것이다. 시험은 대부분 거기서 나온다. 족보가 없으면 정상적인 진급이 거의 불가능하다. 족보가 있어도 2년 이상씩 유급하는 사람이 꽤 많다. 포털 사이트에 의대 족보로 검색하면 알겠지만, 족보마저 양이 많아 버텨내지 못하는 학생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이마저 없으면 족보가 있는 학생의 적어도 몇 배 이상은 공부해야 한다. 의대와 다른 과의 공부는 결이 굉장히 다르다. 나도 타과 전공수업을 들었고 족보 없이 공부했지만, 성적을 잘 받았다. 그런데 의대 공부는 그런 것과는 매우 다르다.

-이게 복귀를 막는 원인이라는 건가.
▶많은 학교에서 복귀자에게 족보는 제공되지 않고 있다. 그래서 복귀해도 유급 커트라인을 못 넘은 경우도 있다고 들었다. 너무 힘들다며 "2학기는 휴학할 테니 나도 휴학 의대생으로 받아달라"는 경우도 발생하고 있다. 의대생들이 25학번도 탕핑누워서 아무것도 하지 않음 시킬 수 있다고 괜히 자신하는 게 아니다. 의대 입학생이면 어느 정도 족보의 존재를 알고 듣고 들어온다. 나도 당연히 25학번도 강제로 누울 수밖에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이건 겪어보면 거의 당연한 미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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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용산구 대한의사협회 대강당에서 열린 사직 전공의들을 위한 근골격계 초음파 연수강좌에서 사직 전공의들이 초음파 강의를 듣고 있다./사진=서울=뉴스1 오대일 기자

-전공의가 과를 선택하는 것은 성적순이라고 안다. 이 과정에도 선후배 간 유대가 영향을 미치나.
▶성적만으로 뽑는 게 아니라 성적도 좋아야 한다. 전공의 선발 과정에는 전공의 선배들이 개입할 수 있다. 일반 회사라면 같은 팀의 대리가 신입 인사권을 쥐고 있는 것과 같다. 전공의 채용 과정에 대해 한 의사는 "일 잘하는 사람 뽑아야 하니 평가하는 사람채용담당자=교수뿐만 아니라 부서 사람들전공의 의견을 묻는 것"이라 설명했다 2020년 전공의 파업 선례도 있어 의대생이 복귀를 더욱 꺼린다.

-어떤 일이 있었나.
▶2020년 파업에 동참하지 않은 의대생이 성적과 무관하게 전공의 선발에 무수히 떨어졌다고 한다. 이걸 막았다고 자랑스럽게 얘기하는 선배들이 있다. 이런 선례가 있어서 협박하는 것이다. 의국 선배가 다행히 큰 관심이 없으면 들어갈 수도 있겠지만 걸고넘어지는 사람이 있는 것은 맞다.

-제대로 수련받기도 어렵겠다.
▶전문의를 쉽게 따지 못하게 하거나, 필요한 것을 배우지 못하도록 괴롭힐 수 있다고 생각한다. 상급 연차 전공의가 후배 전공의에게 업무를 가르쳐주는 형태이기 때문이다. 업무를 몰아버릴 수도 있다. 일반 업무와 다르게 생명을 다루는 일인지라 시도 후 교정trial and error 방식처럼 혼자 해보기는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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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시내의 한 대학병원 전공의 생활관 출입문이 열려있다./사진=[서울=뉴시스] 김근수 기자

-향후 진로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을까.
▶인턴 후 레지던트 원서는 단 1개 병원의 단 1개 과만 쓸 수 있다. 여러 곳에 원서를 넣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인턴부터 시작하는 괴롭힘의 구조를 벗어나기가 굉장히 힘들다. 인턴을 하는 병원의 어떤 의국도 받아주지 않는다면 다른 병원에 가는 건 더 어렵기 때문에 비인기과를 하거나 아니면 전공의를 하지 못하고 일반의를 하는 선택지가 강제된다. 설령 비인기과를 전공하더라도 괴롭힘의 여지가 없는 것도 아니다. 전공의 TO를 다 채우지 못하는 외과, 흉부외과와 같은 비인기과도 괴롭힘으로 중도 포기를 하는 사례가 이번 의료사태 이전에도 적지 않았다.

-진로에 대한 부담이 적을 텐데 예과 복귀율이 더 낮은 이유는 뭔가.
▶24학번은 가장 아래 학년이라 선배의 지시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전문의 취득 전까지 가장 오랜 시간 선배와 지내야 하니 거부하기에 부담이 크다. 특히 선배들은 예과 1학년의 복귀를 심하게 막는데 "24학번이 중요한 키KEY다. 너희가 다 누워야 새로 신입생을 못 뽑기 때문에 올라오면 각오하라"는 식으로 얘기한다. 하지만 수시 모집 이후에는 이런 사기 치던 사람들이 연기같이 다 사라졌다. 배신감을 느끼는 사람이 많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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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사진=임한별머니S

-의대생의 분위기는 어떤가.
▶사직 전공의들은 면허 빼고 돈 버는데, 우리의대생는 몇 년이고 기약 없이 기다리라는 거냐며 불만을 가진 사람이 꽤 있다. 군대에 간 남학생과 여학생 간에 차별이 있는 거 아니냐는 얘기도 나온다. 여학생들은 꼼짝없이 기다려야 하고, 남학생들은 이 기회에 군 문제 털고 오는 거 아니냐는 건데 실제로 그렇기도 하다. 전공의들은 밑에 의대생들이 올라오지 않을 걸 아니 마음 편하게 있기도 한데 의대생들은 아래에서 계속 신입생이 올라오니 계속 뻗치기가 쉽지 않다. 걱정도 들고 혼란스럽기도 하다.

-내부 소통은 어떻게 이뤄지고 있나.
▶소통은 없어진 지 오래됐다.

-남기고 싶은 말이 있다면.
▶피해를 보면 교육부가 신고하라고 했는데 이를 믿었다가 신상을 노출했는지 한 의대생의 정보가 다 털려서 아마 자퇴할 것 같다. 이번 블랙리스트도 그렇고 교육부나 보건복지부 모두 아무런 보호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 전공의는 파업이 아니라 사직했는데 여전히 복귀가 전제돼 있다. 사직 전공의가 대학수련병원에 남지 못하면 전공의 선발 영향력이 사라지고, 그런 생각이 들어야 의대생과 전공의 복귀 시점에 대한 재논의가 있을 수 있다. 또 의대 수업 기출문제 공개를 의무화하면 복귀자들의 부담이 상당히 줄 수 있다. 이것만으로 당연히 성적을 잘 받지는 못한다. 복귀자들이 학교에 다닐 수 있게 최소한의 숨구멍을 만들어주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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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렬 기자 parkjr@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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