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한국이 아는, 그 중국이 아니다…밤 새워 콰이콰이 혁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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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역협회, 중국서 뛰는 기업인 30명 심층 인터뷰
일러스트=김성규
최근 한국무역협회가 중국에 법인을 두고 있는 국내외 기업인 30명을 대상으로 심층 인터뷰를 한 내용이다. 이번 심층 인터뷰에서 기업인들은 “중국은 반도체를 제외하면 한국을 다 따라잡았고, 대부분은 추월했다”면서 “중국 현지에서 느끼는 위기감은 본국에서 느끼는 것보다 훨씬 심각하다”고 입을 모았다. 무협은 이번 인터뷰를 바탕으로 보고서를 만들고, 오는 11월 말 관련 포럼을 개최할 예정이다.
24쪽에 달하는 보고서 초안에는 자동차·부품·배터리·석유화학·항공·유통·게임·바이오·금융 등에 걸쳐 중국에서 사업하는 기업인들이 느끼는 위기감이 담겨 있었다. 기업인들은 “중국은 필요하면 밤을 새우는 유연한 근로 체계, 아이디어가 있으면 바로 실행하는 신속한 의사 결정, 실패한 90% 기업의 기술을 남은 10%가 흡수하는 ‘빠른 혁신’ 전략으로 눈부신 성장을 하고 있다”며 “특히 지난 4~5년간 코로나와 미·중 갈등을 거치면서 중국은 엄청난 변화가 진행돼 왔다”고 말했다. “이제 한국에 경쟁력이 남아 있는 산업은 10% 수준인데, 여기서 머뭇거리면 다 놓칠 수 있다”는 경고도 있었다. 무협의 의뢰를 받아 조사를 이끌고 있는 정만기 덴톤스리 상임고문은 “우리는 중국 기업들이 정부의 보조금 때문에 컸다는 인식이 강하지만, 현지에선 중국 기업들의 빠른 혁신 능력이 더 위협적이라는 인식이 강했다”며 “과거 중국은 ‘만만디慢慢地·천천히’, 한국은 ‘빨리빨리’ 문화였지만, 지금은 그 반대로 중국이 ‘콰이콰이快快·빨리빨리’ 혁신을 이루고 있다”고 했다.
그래픽=김성규
이번 연구 용역에서 법인장 30여 명이 들려준 현장의 목소리는 ‘혁신에 대한 열정이 무서운 성장세로 이어진 중국’을 보여주는 세세한 증언으로 가득했다. 철강·석유화학 등 전통 제조업뿐 아니라, 자율 주행 자동차, 스마트폰·게임 등 미래 첨단 산업에서 중국이 위협적 성장을 이루고 있다는 위기감이 팽배했다.
특히 비야디BYD, 바이두 등을 앞세워 자율 주행 차량 개발에 나서는 중국의 자동차 굴기#x5d1b;起가 무섭다는 반응이 많았다. 코트라 조사에 따르면, 2022년 중국에서 생산된 자율 주행 자동차는 약 700만대로 1년 만에 45.6% 늘었다. 자동차 부품사의 한 법인장은 “중국은 최근 4년간 대대적인 스마트화·전동화를 추진해 오면서 우한 등에서는 운전자가 아예 없는 자율 주행 3~4단계 택시가 이미 영업하고 있다”며 “한국은 여전히 1~2단계 자율 주행 기능을 자동차에 장착하는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고 했다. 또 다른 자동차 부품사 법인장은 “중국 공장에서는 이미 한국보다 앞서 컨베이어 벨트 없는 공장을 도입하고 있다”고 했다.
국내 IT업계 한 법인장은 “삼성 폴더블폰이 중국 화웨이 제품보다 결코 낫다고 자신할 수 없다”고도 토로했다. 실제 화웨이는 최근 두 번 접는 폴더블폰트리폴드폰을 삼성전자보다 먼저 세계 최초로 출시해 중국 시장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지난해 중국에서 화웨이 등을 중심으로 출하된 폴더블폰은 전년보다 370만대114.5% 넘게 늘어 700만대에 달했다. 이는 지난해 한국이 생산한 폴더블폰약 190만대의 3.6배 수준이다.
철강·석유화학 업계는 중국에서 설 자리가 없어지고 있다. 철강 업계 한 현지 법인장은 “중국산 품질이 과거에는 낮았지만 최근 몇 년간 기술력이 급격히 향상돼 이젠 차이가 없다”고 했다. 석유화학 업계 한 법인장도 “중국 내에선 한국 대기업이 이름 모를 스타트업 규모밖에 안 된다는 말도 나온다”고 했다. 코트라 조사 등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의 철강 수출량은 9120만톤으로 1년 만에 35.2% 늘었고, 석유화학의 기초 재료인 에틸렌 생산량도 5174만톤을 기록해 미국을 제치고 세계 1위에 올랐다.
중국 전기차 기업 BYD의 주력 세단 한의 모습. /BYD
인터뷰에 응한 중국 현지 법인장들은 중국 기업들의 ‘빠른 혁신’이 가능한 가장 중요한 비결로 “유연한 근로 체계가 바탕이 된 일의 속도”를 꼽았다. 중국의 노동법상 기본 근로시간은 주당 40시간이다. 초과 근무는 월 최대 36시간 가능하다. 하지만 이런 규제는 사실상 큰 의미가 없고, 실제로는 근로자들이 보상만 충분히 해주면 적극적으로 일을 하고 싶어 한다는 것이 법인장들의 이야기였다.
한 전자 업계 법인장은 “대부분 IT 기업은 저녁 11시에 퇴근하고, 필요하면 주 150시간 근무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일 많으면 밤을 새우고, 일이 없을 때 길게 쉬는 유연한 문화가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한국과 중국을 모두 경험한 한 외국계 기업 법인장은 양국의 노조 문화가 경쟁력에 큰 차이를 만들어낸다고 지적했다. 이 법인장은 “경영 전략이나 제품의 일부 사양 혹은 작업 방식을 변경하고 싶은 경우, 한국에선 노조와 협상하는 데 시간을 소모하지만, 중국 근로자들은 이의 제기 없이 즉각 수용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한국은 경영진이 노조와 협상하느라 진을 다 빼지만, 중국에선 노조 관련 업무가 차지하는 비율이 0%”라고도 했다.
다수 기업인은 한국과 대비되는 ‘빠른 의사 결정’도 중요한 혁신 비결로 꼽았다. 한국 유통 업체들이 중국에서 홈쇼핑 사업에서 독주하다가, 이커머스 투자 시기를 놓쳐 실기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현재 한국 유통 업체들은 중국 홈쇼핑 사업에서 거의 다 철수하고 GS리테일만 남은 상태다. 유통 업계 한 현지 임원은 “중국 업체들은 홈쇼핑을 건너뛰고 이커머스로 곧장 투자해 한국 기업들을 추월했다”며 “하지만 한국 기업들은 이커머스로 전환할지 말지 결정하는 데 1년을 소요해 투자 시기를 놓쳤다”고 말했다.
중국 항공사들은 성수기에 항공권 운임을 8배까지 올리면서 수익을 극대화하지만, 한국 항공사들은 의사 결정 하느라 성수기를 다 보낸다는 의견도 나왔다. 한 항공 업계 중국 법인 임원은 “중국 항공사들은 성수기엔 요금을 500위안에서 4000위안까지 올린다”며 “한국에선 의사 결정이 늦어져 성수기가 다 끝나버린다”고 말했다.
◇살아남은 10%가 90%의 기술 흡수… 정부는 사후 규제
한 자동차 업계 법인장에 따르면, 중국에선 부지 투자비 등에 대한 직접적 정부 지원으로 많은 기업이 만들어지는데, 약 90%는 완성차를 만들지도 못하고 정리된다. 그럼에도 남은 10% 기업이 사라지는 기업으로부터 기술이 축적된 고급 인력을 흡수하여 강력한 기업이 탄생한다. 중국 1위 전기차업체 BYD나 세계 1위 배터리업체 CATL이 대표적인 예다. 한 자동차 부품사 법인장은 “BYD는 비용·기술·속도를 이념으로 삼고 6개월마다 부품별 납품업체들을 비용을 기준으로 바꾸면서 부품 생태계의 혁신을 촉진한다”고 말했다.
중국 정부가 기술과 산업이 성숙될 때까지 규제하지 않다가 시장이 성숙되거나 부작용이 발생하는 시점에 시장 개입을 시작하는 점도 주효했다는 평가다. 중국은 미국과 비슷하게 신산업 분야는 일단 허용하고 부작용이 생기면 규제를 만드는 ‘네거티브 규제’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자동차 부품사 한 법인장은 “중국에선 어느 정도 기술이 개발되면 바로 시장에 투입해 시장 반응을 보면서 기술 개량을 하기 때문에 신기술과 스마트화 진전이 매우 빠르다”며 “한국에선 기술 개발만 주로 하고 규제가 많아 기술 개량이 더뎌 시장 투입엔 많은 시간이 걸린다”고 말했다.
신기술에 대한 과감한 지원과 시행착오를 용인하는 문화도 도움이 된다고 분석했다. 한 화학업체 임원은 “중국의 경우 신소재, 양자컴퓨터, AI 등에 대해선 전략적으로 지원한다”며 “초기 기업은 보험에서 투자액의 80% 정도를 지원해주기 때문에 마음껏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성장한다”고 말했다.
한 은행 법인장은 중국 최대 메신저 위챗의 성공 비결을 보면 중국 정부의 신산업 육성 전략을 엿볼 수 있다고 소개했다. 위챗은 무이자로 계좌 이체를 할 수 있는 사업을 시작하면서 시중은행 고객들을 끌어들였다. 중국의 5대 은행들이 반발하는데도 중국 정부는 위챗이 성공을 거둘 때까지 허용하다가 2017년에서야 위챗의 자금을 중국 은행에 위탁 관리하도록 규제했다. 위챗은 은행 업무는 하지 못하게 됐으나 대신 그동안 끌어들인 10억명에 이르는 가입자를 상대로 한 광고 등 다른 사업을 통해 성공할 수 있었다. 스타트업이 독자 생존할 수 있는 기반을 갖출 때까지 기다렸다가 규제에 들어간다는 것이다.
그래픽=김성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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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정 기자 well@chosun.com 서유근 기자 korea@chosun.com 조재현 기자 jb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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