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법 제정안, 결국 역사 속으로…의료계 갈등은 2R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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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호사 처우 개선 18년간 외치다 전사
간호협회, 내년 총선 판 갈이로 부활 꿈꿔 업권 명확화, 요양·돌봄 수요 부응 딜레마
간호법안의 태동은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닌, 무려 18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간호법안은 2005년 4월, 당시 열린우리당 김선미 의원이 간호사법을, 그해 8월 한나라당 박찬숙 의원이 간호법을 대표발의하면서 처음 거론됐다. 당시 법안은 임기만료로 폐기됐지만, 2021년 3월, 더불어민주당 김민석 의원간호법안, 국민의힘 서정숙 의원간호법안, 국민의당 최연숙 의원간호·조산법안이 각각 대표발의하면서 부활했다. 다시 살아난 간호법안은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 상정된 후, 올해 2월 9일 더불어민주당의 주도로 법제사법위원회법사위를 거치지 않고 본회의에 부쳐지는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지정에 올라타면서 여야뿐 아니라 간호계와 비간호계의 직역 간 업권 침탈 가능성을 두고 갈등이 극에 치닫는 상황이 이어졌다.
간호법안이 본회의에 직회부 된 지 17일 만인 지난 2월 26일, 대한의사협회 등 13개 단체로 구성된 13보건복지의료연대는 서울 여의대로에서 간호법 강행 처리 규탄 총궐기대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장인호 대한임상병리사협회장, 강용수 대한응급구조사협회장, 최운창 전라남도의사회장 등은 삭발까지 강행하며 전면전을 예고했다. 이들은 "직역 간 업무영역의 경계가 무너지면 의료현장은 엄청난 혼란으로 의료의 질 저하를 불러일으킬 것이며, 이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갈 것"이라고 간호법안을 절대 수용할 수 없다고 맞섰다. 간호사가 타 직역의 업무를 침해할 수 있고, 간호사가 의사 없이 병원 밖 지역사회에서 단독 개원할 여지를 줘 결국 국민 건강에 피해를 줄 것이란 게 그들의 공통된 주장이었다. 하지만 간호협회는 "더는 상상에 기반한 가짜뉴스를 퍼뜨리지 말라"며 맞서왔다. 그다음 날, 대한간호협회는 새 수장제39대 회장으로 김영경 부산가톨릭대 명예교수를 선출하며 전의를 새롭게 다졌다. 당시 김영경 회장은 "올해 간호협회가 설립된 지 100주년을 맞아 새로운 100년을 위한 토대를 만들 것"이라며 "백의종군하며 간호법이 제정되는 그날까지 혼신을 다해 투쟁할 것"이라고 선포했다. 그가 제시한 향후 100년의 토대는 사실상 간호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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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정 직후 쪼개진 의료계, 단식 대결로도 이어져
━ 간호협회는 간호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자 잠시 안도감을 내쉬는 분위기였다. "윤석열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 간호법 입법을 약속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윤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인 지난해 1월, 서울 중구 대한간호협회 서울연수원을 방문해 간호사들과 대화하며 "국민에게 도움 되는 게 어떤 건지, 간호사들이 고생하는 건 저희가 가족들이 병원에 입원해 보고 눈으로 다 봤습니다. 전 할 겁니다"라고 강조했다. 간호협회는 전 할 겁니다란 그의 말을 간호법을 입법화하겠다는 뜻으로 받아들였다. 급기야 간호협회는 해당 대화가 담긴 동영상을 협회 유튜브 채널에 올리고 "공약을 이행하라"며 서울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집회와 기자회견을 이어갔다.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여부에 간호법의 운명이 달리게 된 5월, 각 단체장은 무기한 단식이란 카드를 쓰며 강 대 강으로 대치했다. 간호법을 반대하는 13보건복지의료연대의 이필수 대한의사협회장, 곽지연 대한간호조무사협회장이 각각 8일간, 9일간 단식을 진행하다가 구급차에 실려 가 진료받았고, 지난 8일 단식을 끝냈다. 그다음 날인 9일, 김영경 대한간호협회장을 비롯한 간호협회 임원진도 무기한 단식에 돌입했다. 김영경 회장은 단식 4일째인 지난 12일, 서울 광화문의 2023 국제간호사의 날 기념 축하 한마당 행사에 참석했다가 협회로 돌아가던 중 국립중앙의료원 응급실에 이송돼 단식을 멈췄다.
하지만 간호협회는 간호법의 국회 재의결에서 원안 그대로 가결돼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며, 대응 카드로 준법투쟁을 내밀었다. 법을 지키는 것만으로도 의료계를 뒤흔들겠다는 전략이다. 이와 관련, 간호협회는 의사의 불법 업무 지시 사례를 대거 접수하고 관련 유형을 분석하고 있다. 간호협회가 지난 18~23일 접수한 불법 업무 지시 사례는 총 1만2189건이다. 그중 종합병원 이상 의료기관에서 교수전문의가 지시하는 불법 사례가 가장 많았다. 병원급 이상 의료기관에 일반 간호사뿐 아니라 불법 진료보조인력인 PA가 대거 근무하는 특성이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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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협, 내년 총선 판 갈이 통해 재도전 추진 전략
━ 국내에 간호사 면허증을 보유한 사람은 50만 명을 넘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 유권자를 바탕으로 간호협회가 지지하는 정당더불어민주당이 총선에서 승리하도록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계획인 것으로 보인다.
한국간호대학 남자교수회 교수는 병원에 암암리에 퍼진 PA 제도에 대해 반기를 들었다. 이들은 29일 성명을 통해 "PA 제도는 인건비를 아끼기 위한 병원 측의 꼼수로 간호사에게 부당업무대리처방, 대리수술, 대리오더를 수행하게 하고, 비용은 담당 의사의 수가로 처리돼 환자와 국민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부당이득을 취하고 있다"며 "상황에 따라 불법과 합법을 오가는, 보호받지 못하는 간호사PA들이 현재 1만 명이 넘어가는 것으로 간호대학생들에게 세미 닥터가 되기보다 슈퍼널스가 돼라고 가르치는 교수의 입장으로 통탄을 금치 못하는바"라고 규탄했다. 그러면서 이들은 "미래 간호사가 될 간호대학생들이 졸업 후 맞게 되는 불합리한 간호업무환경 개선을 위해 적극적으로 참여하겠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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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우 개선, 노인 돌봄 수요 등 과제 풀어야
━ 대신 진료환경에 따라 의료인 간 업무 범위가 중복될 수 있다는 점을 유연하게 허용해야 한다는 지적도 그는 내놨다. 김윤 교수는 "거동이 불편한 노인의 집을 찾은 간호사가 의사 처방이 없다는 이유로 혈압·혈당도 못 재거나, 병원 밖에서는 응급환자에게 주사도 놓고 심폐소생술도 실시하는 응급구조사가 병원 응급실에서는 채혈도, 심전도 측정도 못 하게 하는 건 비합리적"이라고 덧붙였다. 당초 간호법은 곧 다가올 초고령 사회를 대비해 의료·요양·돌봄을 하나로 연결하는 법으로 고안됐다. 학계에선 초고령 사회에서 의료·요양·돌봄을 한데 엮을 새로운 시스템은 꼭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그 수단이 간호법이 아니라도 말이다. 이주열 남서울대 보건행정학과 교수는 "정부와 여당, 간호협회에서 새로운 법을 만들지 않을까 싶다"고 조심스레 점쳤다. 간호법이라는 이름은 아니겠지만 다른 형태의 법이 만들어질 수 있다는 관측이다. 간호사들은 이번 간호법 제정을 통해 간호사 처우 개선과 노인 돌봄 수요 부응 등 두 마리 토끼를 원했다. 임인택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의료-요양-돌봄이 통합적으로 규정이 되는 통합 법안이 하나 만들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며 "이미 국회에 3건가량이 지역사회돌봄법이라는 이름으로 제안된 상태"라고 부연했다. 이어 임 실장은 "간호사의 업무 영역은 사회적 논의를 거쳐 합의된 부분을 법안에 최대한 담도록 노력하도록 하겠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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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심교 기자 simkyo@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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