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때도 "석유 있다" 했지만 해프닝으로 끝난 포항 영일만 > 경제기사 | economics

본문 바로가기
사이트 내 전체검색

경제기사 | economics

박정희 때도 "석유 있다" 했지만 해프닝으로 끝난 포항 영일만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수집기
댓글 0건 조회 68회 작성일 24-06-03 13:35

본문

뉴스 기사
1975년 박 정부 "포항 인근에 석유 매장" 발표
정부에 보고된 원유 샘플 결국 경유 비중 높아
인근 해역 계속 시추했지만 원유 발견되지 않아
박정희 때 quot;석유 있다quot; 했지만 해프닝으로 끝난 포항 영일만


3일 윤석열 대통령이 최대 140억 배럴의 석유가 매장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발표한 포항 영일만 일대는 과거 박정희 대통령 시절에도 석유 발견 해프닝이 있었던 곳이다. 당시 정부 발표의 계기가 된 포항 영일만 원유라고 보고됐던 물질에선 인위적 정유 과정을 거쳐야 나오는 경유 성분만 나왔다.

1974년 박정희 정부는 1차 석유 파동으로 물가상승률이 20%대로 치솟자 석유 수급을 자체적으로 해야 한다는 판단을 내렸다. 박정희 정부는 1964년 시추한 적 있는 경북 포항시 인근 해역을 석유 탐사 및 시추 작업 최종 후보지로 결정하고 1975년 시추에 착수했다.

박정희 정부가 포항 영일만 일대 뚫은 시추공은 3개였다. 3곳의 지점의 상황에 따라 시추를 진행하다 1975년 12월 화강암층을 뚫고 1.475km 지점을 지난 시추공 한 곳에서 검은 액체가 나오기 시작했다고 한다. 당시 흘러나온 검은 액체의 양은 드럼 한 통 정도였지만이 검은 액체는 정부에 원유 샘플로 보고됐다. 박정희 정부는 해당 샘플을 원유라고 판단하고 다음해 1976년 1월 기자회견을 통해 "포항에서 석유가 발견됐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발표 당시 원유 샘플로 보고된 물질이 정말 원유인지는 확인되지 않은 상태였다. 이에 정부 관계자들은 민간 정유회사에 개별적으로 성분 분석을 진행했고 원유가 아닐 가능성이 높은 결론이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원유라면 휘발유, 경유, 등유, 증유, 가스 등 여러 물질이 뒤섞여 있는 것으로 나와야 하는데 경유 성분 비중이 굉장히 높게 나왔다는 것이다. 여기에 당시 발견 지점 인근에서도 더 이상 원유로 추정할 수 있는 물질이 발견되지도 않았다.

이후 박정희 정부의 석유 발견 발표는 해프닝으로 정리됐다. 원유 샘플은 시추 기계에서 사용한 정유가 흘러나온 것이거나 경유 비중이 굉장히 높은 독특한 원유 극소량이 하필 시추 지점에 있었던 게 아니냐는 추측이 제기되는 선에서 일단락됐다.

이상무 기자 allclear@hankookilbo.com



관련기사
- 尹-이종섭 통화 확인한 공수처 채상병 사건 해볼 만해
- 김호중 날 먹잇감으로 던져 인권침해… 경찰 동의 못해
- 탈북단체 대북전단 20만장·임영웅 USB 5000개 날린다
- 올해 48세 송승헌, 깜짝 발표 3년 안에 결혼할 것
- 유영재와 이혼 선우은숙, 방송 하차 알리며 눈물 피로감 안겨 죄송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회원로그인

회원가입

사이트 정보

회사명 : 원미디어 / 대표 : 대표자명
주소 : OO도 OO시 OO구 OO동 123-45
사업자 등록번호 : 123-45-67890
전화 : 02-123-4567 팩스 : 02-123-4568
통신판매업신고번호 : 제 OO구 - 123호
개인정보관리책임자 : 정보책임자명

접속자집계

오늘
2,155
어제
2,614
최대
3,299
전체
607,544
Copyright © 소유하신 도메인.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