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4000대 판매 달인들의 비결 "車가 아니라 나를 판다"
페이지 정보
본문
[위클리 리포트] 자동차 ‘판매의 신’ 4人 만나보니
하루 수차례 고객 경조사 찾아다니고… 마을체육회-주민행사서 인맥 형성 지인 소개로 이름 알리며 車 판매 체력-정신 고된 영업일, 가족보며 버텨… 자신과 닮은 車 부품보며 마음 다잡기도 검은 양복의 사나이는 100cc 88오토바이를 타고 마을 곳곳을 누볐다. 차디찬 겨울바람을 이기기 위해 셔츠 속에는 신문지 뭉치를 덧댄 채로. 훗날 현대자동차 ‘판매거장’이 된 김창58은 자신의 영업 첫날을 그렇게 회상했다. 그는 올해로 누적 판매 5000대를 달성해 판매거장에 19번째로 이름을 올렸다. 1989년 11월, 막 제대했을 무렵이다. 신문에서 현대자동차 영업사원 모집 공고를 봤다. 새 정장을 빼입고 대전으로 갔다. 호기롭게 면접장에 들어선 그였지만 면접관은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김창은 질문을 기다리지 않았다. 손을 들고 일어나 도리어 물었다. “근데 왜 지한테는 질문 안 혀유? 지는 목표가 현대차 사장인데유.” 행동파 영업사원 김창의 탄생 비화다. 패기 있게 시작한 영업 인생이었지만 신입 판매사원이 실적 올리기는 결코 쉽지 않았다. 연고가 없는 탓이었다. 그는 고객을 기다리는 대신 찾아가기를 택했다. 그의 첫 차는 1985년 출시된 포니의 후속 차종 프레스토, 계기판에는 첫해에만 10만 km가 넘는 숫자가 찍혔다. 22일, 충남 아산시 현대자동차 아산탕정지점에서 김창 영업부장을 만났다. 수소차 ‘넥쏘’에 호두과자를 10박스씩 싣고 영업을 다니는 그의 모습은 35년 전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인터뷰를 진행하는 2시간 남짓한 시간 동안 그의 휴대전화는 10차례가 넘게 울렸다. 뭐든지 온라인으로 판매하는 시대에도 여전히 자동차 딜러가 활약할 수 있는 비결은 뭘까. 자동차 매매업은 딜러들의 ‘진심’이 통하는 영역일까. 현대차와 기아의 ‘판매의 신’ 4명에게 물어봤다. ‘판매거장’과 ‘그레이트 마스터’는 5000대 이상 판매한 직원, ‘그랜드 마스터’는 4000대 이상 판매한 직원에게 부여되는 칭호다. 판매왕들을 관통하는 비밀이 숨어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들은 하나같이 단골 고객과 높은 재구매 비율을 꼽았다. “직영 사업소에서 살다시피 했습니다. 엔진오일 교체부터 AS까지 고객 차를 직접 몰고 잔심부름을 많이 했죠. 앞 유리가 깨진 차를 사비로 수리해 드린 적도 있어요.” 김 부장은 작년 10월 아산탕정지점으로 자리를 옮기기 전까지 성환지점에서 25년, 직산지점에서 9년을 근무했다. 도심 외곽 지점들이다 보니 AS가 원활하지 않았다. 고객 편의를 위해 두 발로 뛰었다. “차를 판매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판매하는 거죠.” 김 부장은 입사 초기 월급 20만 원 중 12만 원을 적금을 들었다. 남은 생활비가 8만 원뿐이어서 주말도 없이 일했다. 고객을 상대하느라 밤늦게 녹초가 돼 현관 비밀번호를 누르는 날이 빈번했다. 그러나 잠든 아이들의 얼굴을 보면 어김없이 힘이 솟았다. “악착같이 키웠습니다. 아들은 2년 전에 결혼했고 딸도 올해 결혼해요. 열심히 달려온 덕분에 조그만 집이라도 보탤 수 있었습니다.” 홍 이사는 ‘엔진’ 같은 사람이다. 엔진에 부하가 걸리지 않도록 서서히 속도를 높였다. 입사 초기에는 가망 고객차를 살 것으로 예상되는 고객 모집에 집중했다면 영업에 속도가 붙은 이후에는 출고 고객까지 영역을 확대했다. 주기적으로 엔진오일을 교체하며 차를 달래듯이 기존 고객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홍 이사는 “고객도 자동차처럼 부드럽고 섬세하게 다뤄야 한다”며 “엔진이 멈추기 전까지 제 달리기도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성만의 세일즈 전략은 사이드미러를 닮았습니다.” 정 선임은 사이드미러가 단순히 뒤를 보는 기능을 넘어 앞으로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외환위기 직후 1억 원 만들기 운동이 인기를 끌었을 때다. 연간 판매가 120대 이상이면 1억 원을 돌파한다는 사실을 깨달은 정 선임은 판매 대수 올리기에 몰두했다. 새벽시장, 도로 인사 판촉 행사 등을 바쁘게 오갔다. 그러나 매출에 쫓긴 탓에 성과는 만족스럽지 못했다. 방향을 틀어 사람에 집중한 것이 돌파구가 됐다. 고객 1명을 대해도 정성을 기울였다. 자연스럽게 100명이 넘는 지지자가 생겼고 매출도 뒤따라왔다. |
관련링크
- 이전글KTX·4대강 이끈 정종환 전 국토해양부 장관 별세 24.04.27
- 다음글국세청도 "주의하세요"…새 주택 갈아탈 때 챙겨야 할 혜택 24.04.27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