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만에 귀향했지만…장례비까지 뜯어갔다[老 파고든 코인사기 탄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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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上수천억원대 유사수신 가담 혐의
아도인터내셔널 대표 이모씨, 1심 징역 15년
다른 사건으로 함께 기소된 3명 무죄
아도인터내셔널 피해자 권현선씨가 작성한 자필 탄원서. 사진제공 한국사기예방국민회
"빚에 시달려 사람 구실도 할 수 없습니다." 노인의 삐뚤빼뚤한 서체에는 절박함이 묻어났다. 아도인터내셔널 사기피해자 권현선가명씨가 엄벌탄원서에 써 내려간 문장이다. 경기도 부천에 거주하는 그는 남편이 간암으로 치료를 받던 중 아도인터내셔널 사기에 속아 신용카드 대출을 내 5000만원의 거금을 투자했다 돈을 몽땅 날렸다.
권씨가 겪은 ‘경제적 착취 및 사기’의 비극은 금융지식에 취약한 노인이라면 누구나 당할 수 있는 일이다. 인지·판단력이 떨어지면 착취 및 사기 피해의 대상이 되기 쉽다. ‘노후자금’, ‘외로움’과 같은 키워드들은 사기범의 먹잇감이다.
실제 아도인터내셔널 고소에 참여한 320명 중 △80대 0.3% △70대 11.87% △60대 43.75% △50대 29.68% △40대 8.75% △30대 4.37% △20대 1.25% 등으로 50대 이상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또 피해자 상당수는 노후 걱정, 병원비, 생활비 등을 걱정하며 살아야 하는 곤궁한 처지였다. 아도인터내셔널 모집책들은 피해자들의 이러한 부분을 파고들었다. 몸이 아파 일을 하지 못해도, 감당하기 어려운 병원비도, 백세시대 늘어만 가는 노후자금도, 아도인터내셔널 투자로 충당할 수 있다고 꼬드겼다. 자폐증을 앓고 있는 아들을 둔 가장, 세 아이를 둔 전업주부, 남편과 사별한 싱글맘, 뇌출혈로 쓰러진 딸을 둔 가정 등 평범한 서민을 꿈꾸지만 이보다는 조금 모자란 삶을 사는 사람들이 영업 대상이 됐다.
피해자들의 절규…"지옥 같은 노년"
"어렵고 가난한 이들일수록, 나처럼 동아줄이라도 잡고 싶은 심정으로 유혹에 빠졌다. 내 자신이 너무도 원망스럽다. 속은 제가 잘못이지만 작정하고 속이려는 사람들을 식별할 수 있는 혜안이 없어 오늘의 결과를 맞게 되었다." 피해자인 송정화씨가명는 본인을 자책했다. 더 잘살아 보자고 발들인 투자가 본인의 삶을 더 옥죄는 결과를 가져올 줄 몰랐다고 후회했다.
아도인터내셔널 피해자가 쓴 엄벌 탄원서. 사진제공 한국사기예방국민회
아도인터내셔널은 투자 결제시스템인 아도페이에 투자하면 원금 대비 월 200% 수익을 올릴 수 있다고 피해자들을 속였다. 사기 일당은 유흥업, 인테리어, 건설업, 정육점, 가상자산, 목재, 유통업, 공연기획, 샤시업 등 16개의 계열사를 통해 수익을 내는 구조라고 홍보했다. 이렇게 지난해 2월부터 7월까지 4467억원의 투자금을 긁어모았다.
"병원비라도 보태고자 한 것이 진흙탕에 빠져서 헤어나올 수 없는 그런 상황이 되어버렸다." 50대 중반의 네 아이의 어머니인 이미정씨가명는 아도인터내셔널 관련 재판을 맡은 서울중앙지법에 재판부에 이 같은 내용의 탄원서를 여러 번 보냈다. 남편과 갈라선 뒤 뇌종양 판정을 받은 아들과 홀로서기를 한 이씨는 늘 돈에 쪼들렸고 몸이 부서져라 일해도 형편은 나아지지 않았다. 이씨는 시체닦는 일까지 해봤다고 했다. 그런 이씨에게 투자로 한 달 월급에 준하는 돈을 만질 수 있다는 아도인터내셔널의 유혹은 쉽게 뿌리치기 어려운 것이었다. "고통스러워 잠을 잘 수도, 먹을 수도 없고 차라리 아침에 눈을 뜨지 말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이씨는 아들 앞에서는 차마 내색할 수 없었던 괴로운 심경을 탄원서에 털어놓았다.
아도인터내셔널 피해자가 쓴 엄벌 탄원서. 제공=한국사기예방국민회
전문가들은 노년층을 겨냥한 디지털 금융 사기 등을 방지하려면 투자 교육이 필수라고 말한다. 하지만 하루하루의 근로가 생계와 직결되는 저소득층에게 교육이란 먹고사는 것과 크게 관련 없는 일로 여겨질 뿐이다. 노동으로 자산을 축적한 경험이 대다수인 노년층은 투자 교육에는 큰 관심을 두지 않는다. 최근 어르신을 대상으로 한 금융사기 피해 사례가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이유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상반기 유사수신 민원 중 60세 이상이 36.5%, 보이스피싱 피해자 중 60대 이상이 46.7%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노년층 피해자가 많은 아도인터내셔널 사건에서 개인별 피해 금액은 크지 않다. 하지만 피해자가 감당해야 하는 일상은 훨씬 더 고통스럽다. 노년층일수록 재취업이 어렵고 사기로 인해 무너진 삶을 복구하기 쉽지 않아서다. 탄원서에 "70대 중반이 넘은 노인"이라고 본인을 소개한 이정수씨가명는 "아도인터내셔널을 접하게 되면서 빚도 지고 지옥과도 같은 노년을 보내고 있다"고 썼다.
피해금액이 얼마가 됐던 노년층일수록 이를 회복하기 위해 투입해야 하는 노동시간은 길 수밖에 없다. 고령에 운좋게 일자리를 구했더라도 최저임금을 겨우 넘기는 수준이거나, 벌이가 안정적이지 않은 시간제 일자리인 경우가 대다수이기 때문이다. 57세인 정영숙가명씨는 아도인터내셔널에 투자한 대가로 다니던 회사에서마저 잘렸다. 2000만원 넘게 투자한 정씨는 "식당 서빙일을 하면서 월급 220만원을 받아 개인회생 빚을 갚고 있다. 누군가에게는 크지 않은 돈이지만 그 돈을 갚으려면 2년간 일해야 한다"고 하소연했다.
아도인터내셔널 피해자가 쓴 엄벌 탄원서. 사진제공 한국사기예방국민회
사기 스트레스로 시력까지 잃어…77세 한국귀화 조선족도 당했다
사기당한 사실을 알게 된 후 극심한 스트레스로 지병을 얻은 피해자들도 있다. 이근영가명씨는 평생 자영업에 종사했다. 동네에 마트를 열었지만, 대형마트의 기세에 밀려 문을 닫았다. 작은 피자가게를 운영하며 재기를 꿈꿨지만 아도인터내셔널의 덫에 걸렸다. 카드빚만 남은 현재 이씨는 아침에는 요양보호사, 낮에는 장애인 활동보조 업무를 하며 마이너스 인생을 메우고 있다. 이씨는 "사기당한 이후 스트레스로 황반변성까지 와 시력을 잃어가고 있다. 눈앞이 캄캄하다"고 적었다.
피해자 김모씨가 가족에게도 차마 털어놓을 수 없는 속마음을 탄원서에 적고 있다. 사진제공 한국사기예방국민회
30년 넘게 방글라데시에서 살았던 박은미가명씨는 지난해 한국에 들어왔다. 여생은 내 나라에서 가족들과 보내고 싶다는 바람에서였다. 박씨는 한 달만 돈을 넣어두면 은행 이자보다 높게 쳐준다는 모집책의 설명을 듣고 부부 장례비로 모아둔 1억원을 모집책 계좌로 덜컥 입금했다. 자식에게 손 벌리기 싫어 시작한 투자는 황혼 사기라는 부메랑으로 되돌아왔다. "남편이 알면 심장마비로 쓰러질까 봐 말도 못 했다"는 박씨는 하루하루 가시방석에 앉아있는 느낌이라고 토로했다.
한국에 귀화한 윤경화가명씨는 77세의 고령이지만 요양보호사로 일한다. 한국 사정에 어두웠던 윤씨는 육체노동만으로 버거웠던 남편 병원비를 투자로 충당할 수 있다는 말에 솔깃했다가 사기를 당했다. 한국에 터 잡고 산 뒤 간병인 노릇을 하면서 악착같이 모은 돈 4000만원을 아도인터내셔널에 집어넣었다고 했다. 윤씨는 암으로 투병 중인 남편 약값을 내야 한다고 통사정한 끝에 겨우 500만원만 건질 수 있었다.
피해 금액이 큰 편에 속하는 최희정가명씨는 노래방을 10년 넘게 운영했다. 코로나19가 터지면서 사회적 거리두기로 노래방은 실질적인 운영이 어려웠다. 정부 권고로 문을 닫아야 했던 시기에도 월세와 관리비는 500만원씩 꼬박 빠져나갔다. 빚에 짓눌리고 있던 지난해 6월 남편의 20년 지기로부터 투자 권유를 받았다. "서울의 역삼동에 있는 사무실에 가보니 중고 물품을 싸게 사서 동남아시아 등으로 수출해서 수익을 얻는 구조라고 사업 설명을 했다. 중고상품이 쌓여있는 창고도 보여줬다." 마침 전국에 리퍼전문매장과 리사이클 가게가 많이 생기던 때였다. 최씨는 가게를 담보 잡혀 대출받은 돈과 딸 아이에게 빌린 5000만원까지 보태 1억2000만원을 투자했고 한 푼도 건지지 못했다.
아도인터내셔널 피해자가 쓴 엄벌 탄원서. 사진제공 한국사기예방국민회
변호사 구할 돈마저 궁해 탄원서에 호소할 수밖에 없는 피해자들은 한목소리로 주범을 포함한 핵심 공범자들의 엄벌을 촉구했다. 이근영씨는 다단계 사기사건에 대해 "사기는 남는다가 아닌, 사기는 형벌만 남는다"는 인식을 줄 수 있도록 사기 집단을 강력히 처벌해야 한다고 했다. 이 같은 피해자들의 호소에도 서울중앙지법은 지난 16일 아도인터내셔널 상위 모집책 중 한 명인 함씨에게 겨우 5년형만 구형했다. 다른 유사수신 혐의로 함씨와 함께 기소된 3명은 무죄를 선고받았다.
김민영 기자 argus@asiae.co.kr
구채은 기자 faktu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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