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 거래를 보면 인도 시장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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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을 사기 딱 좋은 시즌이 왔다. 인도에서는 힌두력을 기준으로 금을 사기 가장 좋은 ‘길일’이 정해져 있다. 특히 인도 최대 명절인 디왈리 축제 기간2024년은 10월29일~11월3일에 금 구매가 가장 집중적으로 이뤄진다. 명절의 주인이자 부와 풍요를 상징하는 여신 락슈미에 대한 존경의 표시로 금을 구매하면서 가정에 행복과 번영을 가져다주기를 비는 것이다. 락슈미는 보통 한 손에는 연꽃을, 다른 손에는 금화가 넘쳐흐르는 항아리를 들고 있는 모습으로 묘사된다. 넘쳐나는 금으로 축복해달라는 모두의 염원이 담겨 있다.
디왈리 축제가 끝나면 웨딩 시즌이 시작된다. 11월 중순부터 약 두 달간 결혼식이 집중적으로 열리며, 금 수요가 다시 한번 급증한다.
세계 2위의 금 소비국
세계금협회에 따르면 인도의 연간 금 수요는 700~800톤t으로, 세계에서 중국 다음으로 많다. 중국과 인도를 합치면 전세계 금 수요의 60%에 이른다.
인도 금 수요의 50%는 결혼식과 관련이 깊다. 예비부부와 일가친척이 결혼 예식을 준비하면서 길일에 맞춰 금 장신구를 구매한다. 인도에서 치러지는 결혼식이 연평균 800만~1천만 건에 달한다고 하니 금 수요가 큰 폭으로 들썩일 수밖에 없다.
신부 집에서는 딸이 태어나는 순간부터 금을 사 모은다. 법으로는 1961년에 금지됐지만, 현실에서는 아직 뿌리 깊게 남아 있는 결혼 지참금 문화 때문이다. 딸을 가진 부모는 여윳돈이 생기는 대로 금을 사들여야 한다. 문제는 가구당 연평균 소득의 6배에 달할 만큼 지참금 규모가 가혹하다는 점이다.
이러한 현실적인 문제로 금값이 오르면 여아 사망률도 높아진다고 주장하는 논문도 있다. 1972~2005년 약 10만 건의 출산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금값이 오른 달은 여자아이가 신생아 시기를 넘기는 확률이 남아에 비해 현격하게 낮다고 한다. 논문 저자는 여아가 태어난 경우 방치해서 죽게 두거나, 미리 알고 유산시키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당초 지참금 제도의 취지는 딸에게 유산을 남겨주기 위함이었는데, 본말이 전도된 것이다.
결혼식 외에, 인플레이션 헤징이나 자산투자 목적의 금 수요도 적지 않다. 2021년 ‘유비에스UBS증권 인디아’에서 회귀분석 결과를 발표했는데, 인도의 인플레이션이 1% 상승할 때마다 금 수요가 2.6% 늘었다고 한다. 인도와 같이 변동성이 큰 신흥시장에서는 화폐가치 절하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인플레이션에 대비한 금 수요가 탄력적으로 반응하는 것이다.
다만, 인도 주식·채권 시장의 폭발적인 성장세가 이어지면서 수익률이 훨씬 더 높은 대체시장으로 투자수요가 많이 몰리고 있다. 이에 따라 금 투자가 예년보다는 많이 줄었다.
디지털 금융 발전과 함께 금을 최고로 여기던 올드 세대에서 다양한 투자 옵션에 능통한 젊은 세대로의 투자주체 교체도 이러한 추세를 거들고 있다. 세계금협회 통계에 따르면, 보통 자산투자 목적으로 구매하는 금괴나 코인 수요가 2010년에는 340t에 달했으나 이후 지속적으로 감소했다. 특히 2023년에 185t에 그친 것은 이러한 추세를 방증한다.
2016년 고액권 지폐를 전격 폐기한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의 화폐개혁 추진도 금 투자수요 감소세에 불을 지폈다. 화폐개혁 직후 금시장으로 순식간에 자금이 몰리자, 구매자 신원확인 절차를 강화하는 등 투명성을 제고하면서 수요가 위축되기 시작했다.
한편, 연간 금 수요로 짐작할 수 있듯, 인도 가정에서 그동안 축적한 금 보유량도 막대하다. 세계금협회는 이 규모를 2만5천t현재 가치로 약 1조5천억달러으로 추정한다. 미국 중앙은행과 재무부가 보유한 금 보유량이 8100t이라고 하는데, 인도 가정에서 보유한 금은 이의 약 3배에 달하는 셈이다. 한국은행 금 보유량 104t보다는 250배나 많다.
인도 가정에 막대한 금이 쟁여져 있는 만큼, 금담보 대출시장도 활성화돼 있다. 전당포나 대부업체 등 비공식 부문뿐만 아니라, 은행이나 제2금융권 등 제도권 금융기관을 통해서도 금을 담보로 금값의 약 80~85%를 손쉽게 대출받을 수 있다. 특히, 농촌 지역에서는 금 보유량은 많지만 은행 지점이 드문 특성상, 급전이 필요할 때 금담보 대출을 많이 활용해왔다.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PwC가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금대출 시장규모는 제도권 금융기관 집계 기준으로 현재 7조1천억루피844억달러에 달하고, 향후 5년 안에 2배 규모인 14조1900억루피1688억달러까지 성장할 전망이다. 금담보 대출의 시장침투율이 5.6%에 불과해, 성장 잠재력이 매우 높을 것으로 주목받는다.
전량 수입에 의존
그런데 #x200b;이 많은 금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역설적으로 인도에서는 금을 거의 생산하지 못한다. 약 120년간 800t을 생산했다는 카르나타카주 콜라르Kolar 금광은 2001년 폐광됐다. 그나마 현존하는 인도 내 가장 큰 후티Hutti 금광도 연간 생산량이 1400㎏가량이다. #x200b;결국 거의 전량을 수입에 의존한다.
금 수요로 짐작할 수 있듯 인도의 금 수입액은 어마어마하다. 2023년 기준 426억달러약 59조원, 전체 수입액의 6.4%에 달하는데, 주로 스위스, 아랍에미리트, 남아프리카공화국 등에서 수입한다.
이들 제품은 반지, 귀고리, 팔찌 등 다양한 형태로 가공돼 내수용으로 팔리거나 다른 국가로 수출된다. 참고로, 힌두교 관습이 강하게 남아 있는 인도 북부에서는 금이 발에 닿는 것을 신성모독으로 간주해 금으로 된 앵클릿Anklet, 발찌이나 토링Toe ring, 발가락지을 착용하지 않지만, 일부 남부지방에서는 많이 사용한다고 한다.
금을 가공한 귀금속의 연간 수출액은 50억~60억달러 정도여서, 대부분의 제품은 내수용으로 판매돼 인도 가정에 쌓이고 있는 것으로 추측된다. 인도 가정이 보유한 금 2만5천t 중 상당 부분이 이러한 과정을 통해 축적됐을 것이다.
문제는 금 수요가 커질수록 가뜩이나 골머리를 앓고 있는 경상수지 적자 문제가 가중된다는 점이다. 금융위기 직후였던 2012/2013 회계연도2012.4.1~2013.3.31에 금 수입이 급격하게 늘면서 인도 전체 수입액의 10%를 넘었다. 결과적으로 인도 경상수지 적자가 급증해 경제에 적신호가 켜졌다.
지금은 인도 중앙은행 외환보유고가 7천억달러를 넘어섰고, 외화 유입 경로가 다각화되는 등 경상수지 적자 문제에 대응할 수 있는 실탄이 많아졌다. 하지만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인도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금 수입 자체를 억제하는 방법밖에 없었다. 이에 따라 2013년 8월부터 금 수입관세를 2%에서 10%로, 2019년 7월에는 12.5%까지 인상했다.
수입관세는 2021년 2월, 10.75%로 잠깐 인하됐지만 금 수입이 늘어나자 2022년 15%로 재인상됐다. 이러한 일련의 조치들 덕분에 금 수입도 이제는 전체 수입액의 7% 정도로 안정세를 보이며, 경상수지 적자 폭도 상당히 완화됐다.
2024년 7월 발표한 연방예산안에서는 두바이 등 해외에서 귀금속 쇼핑을 하는 대신 국내 소비를 촉진하기 위해 원자재인 금 수입관세를 기존의 15%에서 6%로 인하하는 파격적인 조치를 발표했다. 금 세공업자들에게 원자재 비용을 낮춰줄 테니 국내 생산을 늘리라는 것인데, 귀금속 산업 버전의 ‘메이크 인 인디아’ 정책으로 풀이된다.
효과는 즉각적으로 나타났다. 얼마 전 인도산업무역진흥청DPIIT이 발표한 2024년 8월 수입통계치에 따르면, 인도 금 수입액이 전월 대비 221%나 늘어난 100억달러를 기록했다고 한다. 덕분에 인도 귀금속업계도 디왈리 축제와 결혼식 시즌 동안 금 장신구 매출이 연간 기준 최대 40% 가까이 늘어날 것으로 기대한다.
종교·문화, 소비에 중요 역할
인도에서 금 소비는 종교·문화·경제적 동인뿐 아니라, 인구구조 변화와 정부 정책까지 맞물린 역학관계 속에서 이뤄져왔다. 이러한 맥락에서 금시장은 단순한 귀금속 거래를 넘어 거대한 인도 시장의 특성과 작동 원리를 보여주는 축소판이라 할 수 있다.
요약하자면, 인도는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경제대국이지만 여전히 종교#x2219;문화적 요소가 소비 결정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둘째, 지역마다 문화·관습 차이로 인한 소비성향 차이가 뚜렷하다. 셋째, 인구구조 변화에 따라 주력 소비계층이 교체되고 디지털 금융이 확산되면서, 소비 패턴도 달라지고 있다. 넷째, 9억1천만 명이 거주하는 농촌 시장은 막대한 소비 잠재력을 지니고 있는 만큼 적극적인 관심이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인도 정부는 ‘메이크 인 인디아’ 정책을 중심으로 최적의 산업 전략을 모색하며 수시로 다양한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이러한 기본 원리를 되새기며, 긴 안목을 갖고 인도 시장 진출을 준비해나간다면 시행착오를 최소화하면서 시장 진출에 성공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정선 인도비즈니스협력센터 센터장 jeongsunny@kotra.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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