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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영웅 학살자 두 얼굴의 사나이…미국 첫 계엄령 내린 사람은 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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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10회 작성일 24-12-08 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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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부전-80][오리저널-12] 미국의 첫 계엄령

[오리저널]

‘오리저널’ 시리즈는 몰랐던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나오는 감탄사 ‘오oh’와 지역·지방을을 뜻하는 ‘리저널regional’의 합성어로 전 세계 여러 도시와 지역에서 유래한 재미있는 오리지널original 콘텐츠입니다. 아래 기자 페이지를 ‘구독’하시면 더욱 알차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볼 수 있습니다.




밤 10시 반, 155분, 6시간의 역사
1979년과 2024년. 45년이란 긴 세월 동안 잊혔던 일이 다시 발생했습니다. 이번 주 전 국민을 놀라게 한 비상계엄이 그 주인공입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밤 10시 반 비상계엄을 선포합니다. 그리고 155분만 에 국회 의결로 해제 수순을 밟았습니다. 그리고 6시간 뒤인 새벽 4시 공식적으로 계엄이 해제됩니다.

전쟁 영웅 학살자 두 얼굴의 사나이…미국 첫 계엄령 내린 사람은 누구 [추동훈의 흥부전]


해당 뉴스는 전세계서도 화제가 됐는데요. 미국 정부 역시 이번 계엄을 미리 알지 못했다고 합니다. 문득 동맹국이자 민주주의 진영의 대표 국가인 미국에는 계엄이 있는지 궁금해졌습니다. 미국에도 계엄령이 있을까요. 그렇다면 최초의 계엄은 언제였을지 한번 알아보려 합니다.

미국 헌법엔 계엄령이 없다?
계엄戒嚴·Martial law. ‘경계할 계’와 ‘엄할 엄’이 만나 엄한 경계라는 뜻을 품은 계엄은 전시·사변 등 국가 비상 사태가 발생했다고 판단될 경우 대통령과 같은 국가 원수 또는 행정부 수반이 군대를 민간 및 사법에 투입하는 조치를 뜻합니다. 그리고 계엄을 선포하는 행정명령을 계엄령 戒嚴令·declaration of martial law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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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심한 사회 혼란과 정부 전복과 같은 엄중한 상황에서 군이 동원되는만큼 결국 최후의 수단으로 쓰여야 함이 자명합니다. 대한민국에서 이번 계엄은 건국 이래 17번째 발생한 것으로 민주화와 문민정부 출범후엔 처음 발생했습니다. 그렇다면 민주주의 진영의 대표국이라 불리는 미국에는 이러한 계엄령이 존재할까요?

민주주의 가치 담긴 인신보호영장
헌법 제77조에 계엄에 대한 내용이 담겨있는 대한민국과 달리 미국의 연방헌법에는 계엄령Martial Law라는 단어가 없습니다. 다만 제헌헌법부터 존재했던 제1조 9절에 반란과 침략이 있을 경우 인신보호영장Habeas Corpus을 중단할 수 있다고 적혀있고 미 대통령이 군통수권을 갖고있다는 점을 종합해 해석상 의회와 대통령에 계엄령을 선언할 권한이 있다고 해석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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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신보호영장을 뜻하는 ‘Habeas Corpus’는 라틴어로 ‘너는 몸을 가지고 있다’란 뜻입니다. 이는 국민이 이유 없이 구금됐을 때 법원에 신청해 법원의 판단으로 풀려날 수 있게 하는 제도입니다. 미국의 제헌헌법에서부터 규정된 인신보호영장 제도를 중단할 수 있는 경우를 ‘반란’과 ‘침략’으로 규정해둔 셈입니다.

미국 독립정신 담긴 첫 계엄령의 역사
그렇다면 미국 최초의 계엄령은 언제 발동됐을까요. 잘 알려져 있다시피 미국은 1776년 독립선언문을 발표하며 영국으로부터의 완전한 독립을 선언했습니다. 당시 독립을 선언한 미국은 영국과의 목숨을 건 전쟁을 벌였고 1775년부터 시작한 미국의 독립전쟁은 1783년 파리조약으로 영국 정부가 미국 독립을 공식적으로 인정하며 끝나게 됩니다.

하지만 미국은 국제무대에서 독립국으로서 인정을 널리 받지는 못했습니다. 프랑스 등 지원국의 도움이 컸던데다 영국 역시 독립전쟁 직전 다른 전쟁으로 여력이 없던 상황에서 발발된 전쟁에 제대로 화력을 집중하지 못했었는데요. 여전히 당시 유럽 중심의 글로벌 정세 속에서 미국은 아메리카 대륙에 위치한 약소국으로 불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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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후 영국은 앙숙인 프랑스와 교역하는 국가에 대한 고관세를 부과하며 미국에 대한 압박을 가했습니다. 또 현재의 캐나다 지역의 식민지를 두고 있던 영국에 대한 부담을 느껴온 미국이 여러 정무적 판단 끝에 선제적으로 영국과 일으킨 전쟁이 바로 1812년 미영전쟁입니다.

제2독립전쟁, 난세의 영웅이 탄생하다
제2의 독립전쟁이라고도 불립니다. 그리고 난세의 전쟁영웅이 탄생합니다. 추후 미국의 7대 대통령이 된 앤드루 잭슨 장군이 그 주인공입니다. 앤드루 잭슨은 사실 미국 역사에서도 악명높은 인물로 유명합니다. 인디언 학살자이자 유명한 흑백인종차별주의자인 그는 군인으로서의 명성을 인디언 학살로 쌓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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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1년 대령 계급의 민병대 사령관으로 임명된 그는 미영전쟁에서 영국이 인디언과 동맹을 맺자 인디언 학살에 주력합니다. 전쟁이 한창이던 1814년, 인디언을 앞세워 미·영 간의 대리전 양상으로 펼쳐지던 인디언끼리의 내전, 크릭 전쟁에 참여한 앤드루 잭슨은 체로키 족 전사와 손잡고 영국의 편에 선 크릭 족 인디언을 남녀노소할 것 없이 학살해버립니다.

해당 전쟁에서 크릭 인디언 사망자만 1597명에 달할 만큼 인디언 사이서 앤드루 잭슨은 가장 두려운 존재였습니다. 특히 앤드루 잭슨은 죽인 인디언의 코를 잘라 전리품으로 삼는 등 그 잔인함으로도 유명했습니다. 결국 원주민 인디언들은 인종청소의 대상이었고 원래 살던 거처까지 모조리 빼앗기게 됩니다. 대신 백인들 사이에서는 자신들을 대신해 인디언을 소탕하고 영토를 확보해준 영웅과 같은 존재가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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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영전쟁의 초반 기세는 영국이 압도적이었습니다. 워싱턴DC까지 침략한 영국은 미 대통령의 집무처인 백악관까지 장악하며 사실상 전쟁에 승리할 뻔했습니다. 이때가 유일하게 미국의 대통령 집무실인 백악관이 공격당한 사건입니다. 하지만 기세가 등등했던 초반과 달리 장기전으로 흘러가며 미국의 반격이 시작됩니다.

결국 장기전 양상으로 흘러가며 경제적으로, 군사적으로 양측의 피해가 커지며 강화의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독립을 위해 목숨을 건 싸움이 이어진 가운데 1814년 12월 26일 양국은 벨기에에서 헨트 조약을 맺고 전쟁을 종료키로 합니다.

뒤늦은 소식에 강행된 마지막 전투
하지만 유럽서 이뤄진 강화 소식이 미국에 전해지기엔 오랜 시간이 걸렸고 강화소식이 전해지기 전인 1815년 1월 미국 루이지애나주 뉴올리언스에서 미국군과 영국군이 정면대결을 펼치게 됩니다. 바로 뉴올리언스 전투인데요. 뉴올리언스는 미시시피강 하류의 도시로 미국 내 교통과 무역의 요충지였습니다. 이 곳을 잃을 경우 미국의 타격이 큰 만큼 영국과 미국은 이 곳을 두고 총력전을 벌여왔습니다.

미국측의 앤드루 잭슨과 영국의 에드워드 파켄엄 장군이 이끄는 군대는 이 지역에서 대대적인 전투를 준비합니다. 5700여명 안팎의 병사를 보유했던 미국은 8000명에 달하는 영국군과 싸우기 위한 만반의 준비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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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길어진 전투탓에 민간인들은 크게 지쳐 있었습니다. 한 명이라도 더 힘을 합쳐 영국군을 몰아내려한 앤드루 잭슨 입장에선 속이 터질 지경이었습니다. 특히 영국군보다 병력 자체가 적었던만큼 민간인 동원을 위해 애를 썼습니다.

독립을 위해 강해된 미국의 첫 계엄령
결국 앤드루 잭슨이 택한 것은 바로 계엄령이었습니다. 1814년 12월, 잭슨 장군은 뉴올리온스 전역에 민간법을 중단하고 군사법으로 다스리는 계엄령을 내립니다. 통행을 금지했고 물자 동원을 강제했으며 군사 작전에 필요한 인력 징발을 강제화했습니다. 앞서 헌법정신으로 명기된 인신보호영장을 처음 무력화한 것도 당시였습니다.

결국 도시 주민과 병사들은 잭슨의 계엄령 아래 군사적 통제에 따라 움직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렇게 1815년 1월 8일 뉴올리언스 전투가 시작됩니다. 그 결과는 어땠을까요. 영국군은 291명이 사망하고 1262명이 다쳤으며 484명이 실종되거나 포로로 잡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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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미국은 13명이 사망하고 39명이 부상하는 데 그쳤습니다. 미국의 압도적 승리로 끝났습니다. 앤드루 잭슨의 계엄령은 결과적으로 미국이 영국에 승리할 수 있다는 국민적 자신감과 승리의식을 고취시키는데 큰 공을 세우게 됩니다.

뉴올리언스 전투는 악명만 높던 앤드루 잭슨의 명성을 전국단위로 떨치는 계기가 됐습니다. 결국 그는 1828년 재도전 끝에 미국의 7대 대통령으로 선출됩니다. 이처럼 앤드루 잭슨은 미국사에서도 가장 논란이 많은 인물로 유명합니다. 인디언을 학살한 백인 우월주의자이면서도 영국으로부터의 독립을 쟁취하고 애국심을 고취한 위대한 대통령이라는 평가가 양존하기 때문인데요.

계엄으로 대통령이 된 앤드루 잭슨의 교훈
최소한 앤드루 잭슨이 내렸던 계엄령만큼은 외세의 침입으로부터 나라를 지켜내기 위한 절박한 심정이 담겼던 것이 아닐까요. 실제 앤드루 잭슨은 전쟁후 계엄령 선포로 인해 법적 소송을 당해 약 1000달러에 달하는 벌금형을 선고받았습니다. 하지만 의회는 추후 그 벌금을 보상해주며 구국의 영웅을 대접해 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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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정치철학자 알렉시스 드 토크빌은 저서 ‘미국의 민주주의’에서 앤드루 잭슨에 대해 “앤드루 잭슨은 대통령으로 성장했고, 그는 오직 20년 전에 쟁취한 뉴올리언스 전투 승리의 추억에 머물렀다”고 평했습니다. 앤드루 잭슨을 대통령을 만든 것은 뉴올리언스 전투라는 점을 강조한 것인데요.

210년전 미국 역사에서 처음 등장했던 계엄령과 이번주 한국에서 내려진 계엄령. 과연 시간이 흘러 역사책 속에서 2024년의 한국의 계엄령은 어떤 평가가 이뤄질지 궁금해지는 하루입니다. 답은 뻔해 보입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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