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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탄핵 정국] 갈 길 잃은 경제 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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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16회 작성일 24-12-06 0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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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산안부터 내수 진작책까지 불투명
산업 지원 ‘좌초’…정치·정책, 분리할 때


윤석열 대통령이 돌연 비상계엄령을 선포하면서 의욕적으로 추진되던 모든 경제 정책이 올스톱됐다. 정국이 탄핵 국면으로 접어들면서 정부의 내수 진작, 산업 지원 정책 등 주요 경제 과제의 추진력이 소멸했다는 평가다. 전문가들은 정치적 불확실성이 장기화하면 한국 경제에 심각한 후유증을 남길 것이라고 경고한다.

[계엄·탄핵 정국] 갈 길 잃은 경제 정책


예산안·세법 등 정책 동력 ‘상실’

정책 공백이 길어지면 ‘장기 침체’

윤 대통령의 계엄령 선포 여파로 정부의 경제 정책 동력이 사라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의료·연금·교육·노동 등 4대 개혁도 추진이 불가능해졌단 우려도 적잖다.

특히 내년도 예산안이 가장 큰 문제다. 국회 본회의에 상정된 내년도 예산안은 이미 정부안에서 크게 깎인 상태다. 지난 11월 29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은 내년도 예산안 심사에서 대규모 감액안을 단독으로 처리했다. 야당의 감액안 단독 처리는 헌정 사상 처음이다. 윤 대통령은 계엄령 발동의 주요 이유 중 하나로 국회의 예산안 삭감을 꼽기도 했다.

삭감된 예산은 정부안에서 4조1000억원이 깎인 673조원 규모다. 특히 대통령실을 비롯한 검찰, 경찰 등의 예비비와 특수활동비 4조8000억원 가운데, 절반인 2조4000억원이 깎였다. 정부 입장에서는 감액 예산안이 그대로 통과하면 일부 사업 진행에 차질이 생기는 상황이다. 이번 계엄 사태로 정국이 격동에 휩싸이면서 내년도 예산안 향방도 묘연해졌다.

상속세 최고세율을 현행 50%에서 40%로 낮추고, 가업상속공제를 확대하는 내용의 ‘상속세·증여세법’ 정부안의 국회 처리 역시 캄캄해졌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계엄 사태로 국회와 정부 대립이 극대화하면서 정책 공백이 길어질 가능성이 커졌다”며 “이 여파로 내수 부진이 지속되면 내년 경제성장률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내다봤다.

내수 활성화를 위한 정책 부재가 한국 경제의 장기 침체를 가속화할 수 있다는 경고도 나온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소비와 투자 모두가 위축된 상황에서 정부 역할이 중요하다”며 “정치적 불안정이 길어질수록 민생과 경제는 돌이킬 수 없는 손상을 입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아울러 정부는 12월 중 내수 활성화와 소비 진작을 위한 특별 대책을 내놓을 계획이었다. 최근 수출 증가율이 둔화하고, 생산·소비·투자가 일제히 하락하면서 경기 둔화 우려가 커졌다. 이에 내수 활성화를 통해 경제 활력을 되살리겠다는 게 정부 취지였다.

특히 정부는 연말 소비 증가분에 추가 세제 혜택을 주는 정책을 우선 들여다볼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이를 구체화하기 위해선 조세특례제한법 등 세법을 개정해야 한다.

하지만 계엄 사태 여파로 예산안과 함께 세법 개정도 국회 문턱을 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예측이 흘러나온다. 온누리상품권 확대, 휴가비·숙박비 지원, 소비 쿠폰·상품권 발행, 외국 관광객 유치 활성화 등 연례적으로 포함되는 정부의 내수 진작 대책도 불투명해졌다는 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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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 정치 불안정성 심화에

산업 지원도 ‘공중분해’ 위기

산업 지원 법안 역시 계엄 여파 속에 사실상 수포로 돌아갔다는 진단이다. 당장 반도체·AI 지원 방안이 공중으로 날아갈 위기다. 정부는 이들 산업의 글로벌 경쟁력 강화를 위해 국회와 지원 확대를 논의해왔다. 특히 반도체 산업은 정부가 14조원 규모 정책금융을 통해 지원을 확대할 계획이었다. 또 보조금 등 재정 지원 근거와 주 52시간 근무제 적용 제외 등을 골자로 한 ‘반도체 지원법’은 국내 반도체 산업 경쟁력 강화를 목표로 여야가 협의해왔던 핵심 법안이다. 반도체 산업 세제 혜택 등 내용을 담은 ‘K칩스법’ 일몰 기한 연장도 숙제로 남아 있는 상황이다. 탄핵 정국에선 반도체 산업 지원과 관련 법안 처리는 뒷전으로 밀려나 무산될 가능성이 커진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과 교수는 “반도체는 한국 수출의 20%를 차지하는 중요한 산업”이라며 “계엄 여파로 정부가 추진했던 지원 정책이 무산되면 국내 산업이 글로벌 경쟁에서 도태될 가능성이 크다”고 경고했다.

이번 사태로 외국인 투자자 사이에서 한국 정부의 정책 일관성에 대한 의문이 커지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이번 계엄령은 외국 투자자들에게 한국 정책의 불안정성을 다시 한번 각인시켰다”며 “시급히 안정된 정책 환경이 조성되지 않으면 기업은 투자 유치에 난항을 겪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정부가 추진하던 자본시장법 개정안도 정국 혼란 속에 좌초될 전망이다. 자본시장법 개정안은 경제계에서 관심이 큰 사안이다. 더불어민주당이 이사의 충실 의무 대상을 일반 주주로까지 확대하는 상법 개정안을 발의한 데 따른 대체 입법이기 때문. 재계는 회사법에 이미 이사의 손해배상책임, 이사·감사해임청구권 등이 포함된 만큼 소수 주주 보호 조항이 있다는 것을 상법 개정안의 주요 반대 이유로 내세우고 있다.

이에 금융위원회는 12월 2일 상장사가 합병·분할을 하게 되면 이사회가 목적과 기대 효과 등에 대한 의견서를 작성·공시하는 등 주주의 정당한 이익이 보호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긴 자본시장법 개정 방향을 발표했다. 금융위는 개정안을 여당과 협의해 국회에 제출할 예정이었지만, 이번 계엄령 사태로 정국이 혼란에 빠지면서 개정안 제출이 어려워졌다는 평가다.

정책 공백엔 ‘한은’ 역할 커져

전문가 “정치와 정책 분리해야”

해법은 없을까.

전문가들은 정치권이 시급히 사태를 정리해 대외 신뢰도를 회복하고 경제 정책의 일관성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목소리를 낸다. 김정식 교수는 “정치적 혼란은 정부의 정책적 일관성을 훼손해 결국 기업과 국민 모두에게 피해를 준다”며 “경제 회복을 위해 정치권이 즉각적인 안정화를 도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내수 진작을 포함한 정부 경제 정책의 공백 상황에서 중앙은행인 한국은행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진다. 주원 실장은 “국내 정치의 불확실성이 커지면 정부 대신 한국은행이 금리 정책과 유동성 공급을 통해 시장 안정에 나서야 한다”며 “지금도 한국은행의 독립적이고 신속한 정책 대응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전문가들은 현 상황을 ‘정치와 정책을 명확히 분리해야 할 때’라고 제언한다. 장기적으로 경제 정책의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한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잇따른다.

이정희 중앙대 경제학부 교수는 “경제와 정치가 뒤섞이면 경제 정책의 추진력은 물론, 외국인 투자자들로부터 신뢰도 잃게 된다”며 “정치와 정책을 명확히 분리하는 제도적 보완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조동현 기자 cho.donghyun@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88호 2024.12.11~2024.12.17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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