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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모펀드는 악마? 천사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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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12회 작성일 24-12-12 2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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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보면 기업·주주 모두 이득


기업 사냥꾼. 벌처동물 사체를 먹는 독수리·vulture.

흔히 사모펀드PEF 운용사를 가리키는 수식어다. 기업가치가 적정 수준보다 낮다고 판단되면 해당 기업을 인수해 향후 비싼 가격에 되파는 사모펀드 전략을 빗댄 표현이다. 그만큼 사모펀드는 대중에게 부정적인 이미지가 강하다. 특히 우리나라는 해외 PEF인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합병Mamp;A 과정에서 투자자·국가 간 소송ISD을 겪은 트라우마를 갖고 있어 사모펀드에 대한 인식이 더더욱 좋지 않다.

경영권 분쟁을 빚고 있는 고려아연 사태에서도 사모펀드를 둘러싼 갑론을박에서 이런 시선을 엿볼 수 있다.

박기덕 고려아연 사장은 MBK파트너스를 두고 “약탈적 기업 사냥꾼이자 투기자본으로서 지속적인 비판을 받아온 곳”이라고 평가했다. 경쟁력 있는 회사를 인수한 뒤 핵심 자산을 매각하거나 과도한 배당금 수령을 통해 투자금 회수에만 몰두하는 등 약탈적 경영을 일삼는다는 지적이다.

사모펀드는 악마? 천사도 있다


주주환원 정책 강화

JB금융·KTamp;G 증시 모범주로

이런 가운데 일부 증권사 보고서에서 사모펀드의 순기능을 다뤄 눈길을 끈다. 최근 NH투자증권이 발간한 ‘경영권 분쟁, 금융 선진화 과정에서 겪는 성장통’이라는 보고서가 대표적이다. 보고서는 ‘행동주의 전략을 내세운 사모펀드가 기업의 잘못된 행태를 지적하고 개선을 요구하면서 해당 기업 지배구조가 정립되고 주주 가치를 높이려는 변화를 보인 사례가 많다’고 소개했다. 최근 고려아연, 에프앤가이드, 티웨이항공 등 기업의 경영권 분쟁과 적대적 Mamp;A 이슈가 부각되는 상황에서 결과적으로 사모펀드 공격을 받은 기업이 주주 가치 개선에 속도를 내는 경향이 있다는 분석이다.

보고서에서 언급된 JB금융그룹과 KTamp;G가 적대적 Mamp;A 경험 후 주주환원 정책이 강화된 대표적인 사례다.

JB금융그룹은 사모펀드와 손잡은 후 금융사로서 경쟁력을 더욱 높이는 작업에 들어가 있다. 2009년 전북은행 유상증자에 PEF 운용사 페가수스프라이빗에쿼티PE가 참여하며 JB금융그룹은 사모펀드와 인연을 맺었다. 이후 페가수스PE 임원들이 JB금융 주요 계열사 최고경영자CEO를 맡으며 Mamp;A 성과를 내기 시작했다. 2011년에는 전북은행과 페가수스PE가 우리캐피탈 인수를 합작했다. 이는 비은행 계열사가 없던 전북은행의 지주사 전환에 큰 영향을 준 Mamp;A로 평가받는다. 페가수스PE와 인연을 맺은 JB금융은 자금 조달은 물론, 자본 시장 전문가 합류로 Mamp;A 역량을 높여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었다.

최근 전향적인 주주환원 정책을 내놓으며 주목받은 KTamp;G는 오래전부터 사모펀드 공격을 받으며 성장한 사례다. 지난 2006년 KTamp;G 지분율을 5% 이상 확보한 칼 아이칸은 배당 확대와 유휴 부동산 처분 등을 요구했다. 1년여 만에 KTamp;G 주가가 오르며 칼 아이칸은 지분을 매각하며 철수했지만, 이후에도 KTamp;G는 50% 수준의 배당 성향을 유지하는 등 주주 가치 제고를 위해 노력했다. 최근에는 약 3조7000억원 규모 주주환원 정책을 발표하며 증권가 호평을 이끌어냈다. 향후 4년간 2조4000억원 규모 현금 배당과 1조3000억원 규모 자사주 매입 계획을 밝혔다. 또한 발행 주식 총수의 20%를 소각하고 자기자본이익률ROE을 기존 10%에서 15%까지 높이겠다고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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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F 투자 후 기업가치 ‘쑥’

투자부터 회수까지 평균 35%↑

자본시장연구원이 내놓은 ‘국내 PEF의 가치 제고와 투자성과 분석: 제도 도입 20년의 평가’ 보고서도 눈길을 끈다. PEF 제도 도입 20년을 맞아 그동안의 성과를 되짚어본 자료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PEF가 기업에 투자한 시점부터 회수할 때까지 기업가치는 평균 35% 높아졌다. PEF의 평균 보유 기간은 3년 6개월가량인데, 이 기간 의미 있는 수준의 기업가치 제고를 이뤄냈다는 평가다.

특히 자금 조달이 어려워 경영난을 겪는 비상장 회사일수록 기업가치 제고 효과가 크다는 진단이다. 비상장 회사가 급히 자금을 조달할 때 직접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는 주체가 바로 사모펀드 운용사다. 상장사는 비교적 자금 조달이 수월한 편이지만, 비상장사의 경우 방법이 제한적이다. 이때 가장 확실한 방법이 투자자로부터 자금을 수혈하는 것. 성장이 정체 상태인 기업은 사모펀드의 자금을 공급받아 새로운 성장동력 마련이 가능하다. 경영난을 겪으며 파산 위기에 처한 기업을 살리는 일종의 소방수 역할을 사모펀드에 기대할 수 있다.

최근에는 투자 유치에 어려움을 겪는 지방 기업에 주로 투자하는 사모펀드 전략도 나타난다. 지방에 위치한 제조 업체는 기업 크기가 크지 않거나 수도권과 멀다는 이유로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는 곳이 많다. 산업 내 핵심 가치사슬밸류체인에 속한 기업이 해외 자본에 넘어간다면 이는 국가적 차원에서도 커다란 손실이다. 만약 이런 기업에 사모펀드가 자금을 공급하면 국부 유출을 방지하고 지방의 고용 유지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

실제로 칸서스자산운용은 지방 기업이 안고 있는 문제 해결을 위해 경상북도·강원도 등 지방자치단체와 경영권 인수를 목적으로 하는 바이아웃 펀드 조성을 논의 중이다. 최남곤 칸서스자산운용 PE본부장은 “지방 기업의 경영자와 대화를 나눠보면 지방 소재라는 이유로 인수·합병이 잘 이뤄지지 않는 문제를 겪고 있는 기업이 많다”며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최근 여러 지자체와 지역 내 일자리를 창출하고 핵심 밸류체인 기업의 유지·발전을 위한 펀드 조성을 계획 중”이라고 말했다.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기업의 추가 성장 측면에서도 사모펀드 역할이 중요하다. 여러 기업을 경험해본 사모펀드 운용사일수록 산업에 대한 이해도가 높다. 또한 한 기업에만 머문 경영자보다 여러 기업을 경영한 사모펀드 운용사의 시야가 넓은 것도 어느 정도 사실이다. 네트워크가 넓고 다양한 포트폴리오를 갖춘 사모펀드는 투자한 기업의 신사업이나 글로벌 진출을 지원하는 데 적극적인 경우가 많다.

실제로 여러 사모펀드 운용사가 풍부한 자본력을 바탕으로 유관 산업을 인수해 시장 지배력을 넓히는 ‘볼트온’ 전략을 활용한다. VIG파트너스가 대표적이다. VIG파트너스는 지난 2016년 좋은라이프옛 좋은상조를 인수하며 상조업 투자를 시작했다. 2017년 금강문화허브와 2019년 모던종합상조 등 중견 상조 업체를 사들였으며, 2020년 업계 1위 프리드라이프까지 추가로 인수했다. 이후 프리드라이프가 모회사 좋은라이프를 역합병해 지배구조를 개편하며 덩치를 키웠다. 이 같은 볼트온 전략 덕분에 프리드라이프는 최근 글로벌 PEF 운용사 콜버그크래비스로버츠KKR로부터 1조원 이상의 기업가치로 평가받았다.

박용린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국내 PEF는 거시경제와 금융 시장 상황에 영향을 받으며 대형 시장으로 성장했다”며 “지난 20년의 성과를 분석한 결과 투자금 회수가 이뤄진 국내 PEF 투자 성과는 우수한 편”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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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럴 해저드 방지

남양유업, 5년 만 흑자전환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를 방지하고 오너 리스크를 지워준 사례도 꽤 있다.

최근 한앤컴퍼니가 경영권을 인수한 남양유업이 대표적인 예다. 경쟁 업체에 대한 비방 댓글 지시와 창업주 외손녀의 마약 투약 사건 등 잇단 오너 리스크로 기업가치가 폭락한 남양유업은 대법원까지 가는 법정 다툼 끝에 지난 1월 국내 PEF 운용사 한앤컴퍼니로 최대주주가 변경됐다. 경영권 인수 후 한앤컴퍼니는 남양유업의 내부통제 체제를 재정비하고 비용 효율화에 속도를 냈다. 그 결과 남양유업은 지난 3분기 연결 기준 5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하며 20분기 만에 흑자전환에 성공했다.

현대차그룹도 사모펀드 효과를 봤다. 지금의 현대차그룹 이사회 구조가 정착되기까지 글로벌 헤지펀드 엘리엇매니지먼트 역할이 컸다는 평가가 나온다. 엘리엇은 지난 2018년 현대모비스를 인적분할해 현대글로비스와 합병하는 방식의 현대차 지배구조 개편안에 반대하며 이사회의 폐쇄적 운영을 문제 삼았다. 그러면서 외국인 사외이사 3명을 추천했다. 이와 함께 자사주 소각, 배당률 상향 조정 등을 요구했다.

이는 훗날 현대차그룹의 변화를 이끌었다. 외국인 사외이사 3명의 이사회 진입은 실패했지만, 이후 현대차그룹은 이사회 다양성을 높이는 활동을 이어갔다. 또한 현대차그룹은 당시 1조원 규모 자사주 소각을 결정했다. 14년 만에 자사주 소각이었다. 최근에도 현대차그룹은 향후 3년간 4조원 규모의 자사주 매입·소각과 배당금 25% 증액, 총주주환원율 35% 등의 밸류업 계획을 밝히는 등 적극적인 주주환원 정책을 이어가고 있다.

나정환 NH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행동주의 펀드는 통상적으로 주주 가치가 높아질 수 있는 기업에만 적대적 Mamp;A를 시도한다”며 “우리나라 상장사의 가치가 주가에 반영돼 주주 가치가 높아지기 전까지는 경영권 분쟁과 적대적 Mamp;A가 늘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적대적 Mamp;A 이후 기업은 방어 수단으로 주주환원책을 강화하는 경향을 보였다”며 “대표적으로 KTamp;G는 적대적 Mamp;A 후에도 줄곧 높은 배당 성향을 유지했고 주가도 반등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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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작용 우려 목소리도

단기 성과, 해외 기술 유출 논란

물론 사모펀드의 부작용을 우려하는 시선도 적잖다. 비용 효율화를 우선시하는 운영 전략은 단기적인 수익을 높이는 데 기여하지만, 장기적인 관점에서는 기업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요인이 될 수 있다는 걱정이 대표적이다.

사모펀드가 인수한 기업들은 흔히 운영비 절감과 비용 효율화를 통한 빠른 수익 창출을 목표로 한다. 이런 접근은 연구개발Ramp;D 투자 축소로 이어져 기업의 혁신 역량을 약화시킬 수 있다. 예컨대, 한 대형 제조 업체는 사모펀드 인수 이후 Ramp;D 부서를 축소하며 경쟁력이 하락해 시장점유율이 대폭 낮아졌다.

구조조정을 통해 인건비를 줄이려는 전략 역시 부작용이 꽤 있다. 단기적으로는 수익성 개선으로 보이지만, 해고된 직원들과 지역 경제에 미치는 부정적인 파장은 크다. 특히 교육, 병원 등 공공성이 강한 분야에서는 이런 구조조정이 심각한 사회적 부작용을 초래할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한 중견 사립대학이 사모펀드에 매각된 후 학비 인상과 인력 감축으로 학생들과 지역사회가 큰 반발을 일으킨 바 있다.

PEF가 인수합병을 통해 시장 내 지배력을 강화하는 과정에서 경제적 불균형을 조장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서울대 법대 논문 중 ‘현행 사모펀드 규제의 개선방향에 관한 연구저자 이호영’에 따르면 국내에서는 PEF가 대기업집단과 결합하면서 특정 기업의 시장 지배력을 강화하거나, 경제적 집중을 초래하는 사례가 다수 다뤄져 있다. 논문에서는 ‘이는 공정 경쟁을 저해하고 중소기업의 성장 가능성을 제한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핵심 기술 유출 논란도 뜨겁다.

올해 국정감사에서 고려아연 사례가 지적되며, 사모펀드가 외국 기업과의 연계를 통해 핵심 기술을 해외로 이전할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나왔다. 이런 위험은 첨단 기술을 보유한 중소기업들이 사모펀드에 매각될 때 특히 심각하다. 전문가들은 국가 안보와 기술 보호를 위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경고한다.

오정석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는 “사모펀드가 국내 경제에서 지속 가능한 성장동력이 되기 위해서는 장기적인 관점을 기반으로 한 운영 전략과 제도적 보완이 조화를 이뤄야 한다”며 “특히, 국가 핵심 기술 보호와 사회적 부작용 최소화라는 과제는 정부와 업계 모두가 고민해야 할 문제”라고 말했다.

행동주의 펀드 양성화와 더불어 기업 방어 수단도 균형 있게 제도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존재한다. 정구용 한국상장사협회장은 “차등의결권 제도와 포이즌 필Poison Pill 같은 제도의 도입을 통해 사모펀드가 기업 인수 과정에서 지나치게 공격적인 전략을 펼치는 걸 견제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도 함께 마련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박수호 기자 park.suho@mk.co.kr, 문지민 기자 moon.jimin@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88호 2024.12.11~2024.12.17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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