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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 보장 실손보험 760만명…지금 의료비 부담은 폭탄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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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9회 작성일 24-12-03 0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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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현철의 경제로 세상 읽기]
보험 연구자 박소정 교수가 말하는 실손보험發 의료체계 왜곡
우리나라 한 해 의료비는 2022년 기준 약 121조원이다. 이 중 약 3분의 2쯤인 79조원을 국민건강보험이 부담하고 있다. 민간 건강보험인 실손의료보험실손보험은 약 13조원을 부담했다. 전체 의료비의 10.7% 정도다. 그런데 전체 의료비의 10분의 1쯤 부담하는 실손보험이 의료 시스템을 흔드는 일이 벌어진다. 도수치료, 비타민주사 등 꼭 필요하지 않은 진료에 의료비가 과다하게 나가는 한편, “실손보험 있으세요” 물어보며 돈 되는 치료를 권하는 병·의원이 늘다 보니 의사들이 이와는 거리가 먼 필수의료를 기피하는 현상까지 벌어진다. ‘꼬리가 개를 흔드는Wag the dog’ 셈이다. 보험 연구자인 박소정 서울대 교수는 “본인 부담이 없거나 적은 실손보험 때문에 도덕적 해이가 만연하는 시장이 됐다“며 “이는 사람들이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는 게 아니라, 보험 설계가 잘못돼 사람들 행동이 바뀌는 사례여서 제도 개선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소정 서울대 교수는 지난달 22일 서울대 연구실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본인 부담이 없거나 적은 실손보험 때문에 도덕적 해이가 만연하는 시장이 됐다”며 “이는 사람들이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는 게 아니라, 보험 설계가 잘못돼 사람들 행동이 바뀌는 사례여서 제도 개선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인원 기자

박소정 서울대 교수는 지난달 22일 서울대 연구실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본인 부담이 없거나 적은 실손보험 때문에 도덕적 해이가 만연하는 시장이 됐다”며 “이는 사람들이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는 게 아니라, 보험 설계가 잘못돼 사람들 행동이 바뀌는 사례여서 제도 개선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인원 기자

◇ 실손보험, 왜 인기 보험 됐나

- 왜 국민 80%가 실손보험에 가입하게 됐나.


“로봇 수술 등 의료 기술이 발달하고 신약이 개발됐지만 건강보험에선 이를 거의 다 비급여로 분류해 보장하지 않았다. 개인의 의료비 리스크가 늘어난 것이다. 이에 대비하려고 실손보험 가입이 확 늘었다. 그런데 부정적 측면도 있다. 더 좋은 의료 서비스의 가격이 오르자, 예전에 실손보험이 없던 사람들도 필요하게 됐다. 누구나 스마트폰이 있는 시대에 나만 없으면 살 수 없듯이, 실손보험이 필수재처럼 됐다.“

그래픽=양인성

그래픽=양인성

-암보험 등과 달리 너무 보장 범위가 넓은 것 아닌가.

“보험은 개인이 감당하기 힘든 수준의 금전 손실로 삶이 힘들어질 수 있다는 걱정을 막아주는 역할을 한다. 그래서 질병, 상해로 인한 모든 손실을 종합 보장해주는 게 이론적으로는 굉장히 좋은 보험이다. 손실 원인이 암인지, 심장병인지 가리지 않는 것이다. 다만, 실손보험은 보장이 시작된 후 가입자가 적극적으로 개입해 손실 크기와 발생 확률을 변화시킬 여지가 너무 크다는 게 문제다. 여기서 도덕적 해이가 생긴다.”

◇ 실손보험의 도덕적 해이

- 도덕적 해이란 무엇인가.

“도덕적 해이에 대한 학문적 정의와 대중의 해석에 차이가 있다. 경제학에서 도덕적 해이는 보험 계약으로 인해 손실이 더 발생하도록 개인 행동이 바뀌게 되는 걸 뜻한다. 도덕적인 문제가 있다는 의미가 아니다. 실손보험 계약 전에는 다치지 않으려 노력도 하고 싼 치료법을 말하는 의사를 찾을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그런데 보험이 의료비를 100% 다 보장해주면 내 주머니 돈이 안 나간다고 생각해 의료비를 절약할 인센티브가 사라지게 되고 아주 심각한 왜곡이 나타나게 된다. 도수치료, 비타민주사 등 굳이 받지 않아도 될 값비싼 치료를 선택하게 된다. 이는 치명적 질병인 암 진단과 다르다. 암 진단금 보험이 있다고 해서 보험 가입자가 암 발병이 더 늘어나는 행동을 하거나 진단을 더 받는 일은 거의 생기지 않는다.“

그래픽=조선디자인랩 김영재

그래픽=조선디자인랩 김영재

- 학자들이 제시하는 도덕적 해이 해법은.

“첫째, 2016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벵트 홀름스트룀 MIT 교수가 말했듯이 왜곡된 인센티브를 자기 부담금을 도입해 바로잡는 것이다. 자기 부담금이 없다면 고민 없이 모든 치료를 받겠지만, 만약 치료비의 20%를 보험 가입자가 부담해야 한다면 20만원 도수치료를 받기 위해 4만원을 부담해야 하니 받을지 말지 고민하게 되는 이치다. 둘째, 보험 가입자 행동을 직접 관측하고 통제하는 것이다. 예컨대 건강보험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어떤 의료 행위에 대한 수가를 정하고 통제한다. 그래서 건강보험이 부담하는 급여 항목에서는 도덕적 해이가 나타나기 어렵다.”

- 우리나라에선 본인 부담이 전혀 없는 실손보험도 팔지 않았나.

“2003년 9월 이전에 판매한 구의료실비보험은 건강보험에서 보장하는 급여 부담금까지도 모두 보상해줬다. 2003~2009년 판매된 1세대 실손보험에서 손해보험사들은 100% 보장 실손보험을 팔았다. 작년 실손보험 가입자 3997만명 중 아직 19.1%, 약 760만명이 1세대 보험을 갖고 있다. 만약 20~30대에 이 보험에 가입한 분들은 지금 40~50대일 것이다. 지금 상황을 보면, 이 가입자들이 의료비가 많이 들어가는 70~80대 이상이 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상상할 수 있다. 지금은 폭탄의 시작이다. 100% 보장 실손보험은 의료 시스템에 엄청난 과부하를 불러올 수 있는 뇌관이라고 할 수 있다.”

- 100% 보장 보험, 왜 만들었나.

“지금처럼 실손보험 때문에 사람들 행동이 심각하게 변해서 건강 리스크 분포가 바뀔 수 있다는 가능성을 생각하지 못했던 것 같다. 마치 연금을 설계할 때 수명이 지금처럼 늘어날지 예측하지 못했던 것과 같다. 또 시장을 선점하겠다는 손해보험사들의 전략도 있었을 것 같다. 결국 보험 설계의 거대한 실수이자 실패이다.“

그래픽=조선디자인랩 김영재

그래픽=조선디자인랩 김영재

◇ 인센티브 어떻게 바꿔야 하나

- 제대로 된 실손보험의 모습은.

“기본 의료는 건강보험이 부담하고, 민영 보험은 본인이 일부 부담하더라도 신약, 신기술 등 모든 걸 총동원해 보고 싶다는 수요가 있는 사람들이 사용할 수 있는 보험이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떻게 하면 보험금을 타낼 수 있을까, 내가 보험사에 낸 것보다 더 많이 받아야 이익이다 등의 싸움이 되면 모두가 수렁에 빠진다. 이를 잘 활용하는 일부 가입자, 의사만 배 불리고, 나머지 대부분 국민은 오히려 실손보험이 있어서 의료비와 보험료가 오르는 부작용을 경험하게 된다.”

- 실손보험이 공정하게 되려면 본인 부담만 늘리면 되나.

“도덕적 해이를 완전히 없앨 수는 없지만, 줄일 수는 있다. 현재 판매되는 4세대 실손보험은 급여는 자기 부담이 20%까지 올랐고, 도수치료 등 비급여는 30%까지 올랐다. 4세대 실손보험도 도덕적 해이가 완전히 통제되고 있다고 볼 수는 없고, 추가 개선책으로 연간 자기 부담금 도입 등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이보다 가장 큰 문제는, 본인 부담이 느는 새로운 계약으로 갱신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게 설계된 2016년 이전에 판매된 실손보험 계약들이다. 이 가입자들에게는 금전적 유인을 줘서 현재 판매 중인 실손보험으로 갈아타도록 유도하는 방법을 고안해볼 수 있겠다.”

[미국의 실손보험]

”미국 실손보험은 소액 의료비 본인 부담 100%도”

박소정 서울대 교수는 “미국은 한국과 달리 전 국민이 가입한 국민건강보험 없이 민간 실손보험 위주로 발전해왔다는 차이가 있지만, 민간 보험사들 스스로 도덕적 해이를 줄이기 위해 노력한 것은 참고할 게 많다”고 했다.

―한·미 실손보험의 차이는.

”미국은 계약을 갱신할 때 단순히 보험료만 달라지는 게 아니라 자기 부담금이 30%냐 40%냐 같은 조건을 새로 디자인할 수 있다. 자기 부담금 30%로 보험에 구멍이 생긴다면 다음 해에 더 올릴 수 있다. 80세, 100세까지 100% 보장한다는 조건을 바꾸지 못하는 한국과 다르다. 또 미국은 민영 보험사도 다양한 방법으로 의료 가격과 의료 행위를 통제하고 있다.”

―미국엔 실손보험 유형이 다양한가.

”그렇다. PPOPreferred Provider Organization, HMOHealth Maintenance Organization가 대표적인 유형이고 최근 HDHPHigh-deductible Health Plans란 유형이 늘어나고 있다.

우선 PPO는 아무 병원에 갈 수는 있지만, 보험사가 의료 서비스를 관리하는 병원에 가면 자기 부담금이 낮다. 예컨대 관리하는 병원은 자기 부담이 20%, 관리하지 않는 병원은 40%인 식이다. HMO는 의료진이 더 많은 의료 서비스를 제공할 인센티브가 전혀 없도록 보험계약을 설계하고 대신 환자의 자기 부담금이 거의 없다.

최근 확산되는 HDHP는 일정 한도, 예컨대 가족당 3000달러까지는 가입자가 의료비를 100% 부담하고 그 이상은 자기 부담금 20% 정도를 제외하고 보험에서 보장한다. 이러면 정말 필요하지 않으면 10만원, 20만원 하는 치료는 받지 않을 것이다.”

―미국에선 의료비가 비싸서 아예 병원에 못 간다고 하지 않나.

”자기 부담을 많이 하라고 하면 병원 문턱이 높아질 수 있다. 그래서 미국에선 최근 거의 모든 건강보험사가 24시간 365일 비대면 의료 서비스를 무료로 제공한다. 비대면 진료로 점검해 심하다 싶으면 병원에 가라고 한다.”

☞박소정 교수는

박소정 교수는 서울대 산업공학과를 나와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와튼 스쿨에서 보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캘리포니아 주립대 풀러턴 경영대 조교수를 거쳐 현재 서울대 경영대 교수로 있다.

☞실손의료보험

실손의료보험실손보험은 의료비 중에서 국민건강보험이 보장하는 급여 중 본인 부담, 그리고 보장하지 않는 비급여를 실비로 보상해 주는 보험이다. 민간 보험사가 판매한다. 작년 가입자는 3997만명으로 국민의 약 80%다. 의료비 중 건강보험이 보장하는 항목은 ‘급여’, 보장하지 않으면 ‘비급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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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현철 기자 banghc@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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