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견제했고, 젠슨 황 탐났다" 93세 TSMC 창업자의 고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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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를 견제했고, 애플을 노렸으며, 젠슨 황은 탐이 났다. 대만 반도체 회사 TSMC 창업자인 93세의 모리스 창張忠謀, 장중머우 박사가 밝힌 TSMC 40년의 결정적 순간들이다.
지난 29일 대만에서 『장충모 자전』의 하편이 출간됐다. 미국 반도체 업계에서 일하던 창 박사가 대만 정부의 간곡한 요청으로 귀국해 TSMC를 세워 세계 최대 반도체 파운드리위탁생산 기업으로 키우고 은퇴하기까지, 1964~2018년의 행적이 담겼다. 지난 2018년 출간한 상편에선 1931년 출생부터 청년기까지를 회고했다. 이번 책에서 그는 “미국 텍사스 주의 은퇴 노인이 됐을 내가 1985년 대만으로 건너와 운명을 만났다”라고 적었다.
지난 29일 출간된 모리스 창 TSMC 창업자의 자서전이 대만 타이베이 서점에 전시됐다. 로이터=연합뉴스
책에서 그는 TSMC는 물론 인텔·애플·엔비디아·삼성전자 같은 기업의 비공개 에피소드를 공개했다. 그야말로 ‘세계 반도체의 살아있는 화석’ 수준이다. 대만에서는 출간 첫날부터 서점에서 줄을 서 구매하는 등 뜨거운 반응이다. 중앙일보가 책을 입수해 한국 반도체 산업과도 교집합이 있는, 모리스 창의 3대 결정적 순간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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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모리 진출하려다 실패, 이건희 견제
1988~1989년 일본과 한국 메모리 회사들이 호황을 누리자, 대만은 국가적으로 ‘메모리 반도체 프로젝트’에 착수했다. 대만 정부가 자본을 대고 외국 기업의 투자·기술을 더해 TSMC를 세웠듯, 같은 방식으로 메모리 회사도 세우겠다는 거였다. 그러던 중 창 박사는 1989년 대만에서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과 만났다. 이 자리에서 이 회장은 “메모리에는 많은 자본과 인재 필요한데 대만이 할 수 없다”라고 말했고 몇 달 뒤에는 한국에 초대해 삼성 메모리 공장을 보여주기까지 했다는 것.
그럼에도 대만 정부는 메모리 프로젝트를 실행했고, TSMC가 주요 주주로 참여해 1994년 ‘뱅가드 인터내셔널’이 출범한다. 그러나 1996년부터 D램 메모리 가격이 하락했고, 자체 설계 인력이 부족한 대만의 한계까지 겹쳐 2000년 회사는 메모리에서 철수한다. 철수 발표 기자회견을 창 박사가 했다.
대만 신주 과학단지의 TSMC 박물관에서 관람객들이 TSMC 창업자 모리스 창 박사의 영상을 보고 있다. AFP=연합뉴스
자서전에 밝히진 않았으나 그는 대만 언론과 인터뷰에서 “이건희는 반도체 전문가는 아니지만 반도체와 휴대폰의 잠재력을 알고 시대 흐름을 주도한 영웅”이라며 “한국에 이건희가 있다면 대만에는 내가 있다”라고 말했다. 또한 측근에게 “삼성이 거대하지만, 고릴라도 발가락을 세게 밟히면 아프듯 삼성에도 약점은 있을 것”이라고 말하며, 삼성을 줄곧 견제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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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율 불량에 은퇴 번복, 젠슨 황과 담판
최고 수율을 자랑하는 TSMC도 ‘불량 공정’으로 코너에 몰렸었다. 2009년 초 TSMC가 내놓은 40나노미터㎚·1㎚=10억 분의 1m 파운드리 수율이 낮았고, 전년도 금융위기 여파까지 이어져 증권가는 ‘TSMC 위기론’으로 들썩였다. 2005년 은퇴했던 창 박사는 4년 만에 CEO로 복귀해야 했다.
78세에 귀환한 CEO는 먼저 기술통에게 힘을 실었다. 100여 명의 투자자가 모인 실적 발표 뒤 창 박사는 말했다. “모두 40나노를 우려하시는데, 류더윈TSMC 전 회장인 마크 리우 부사장이 생산 라인에서 일하느라 너무 바빠 올 수 없으니 온라인 연결하겠습니다.” 화면 속 리우 부사장은 흰색 방진복을 입고 클린룸 앞에 서서 전문적인 기술을 설명했다. 수율 정상화에는 몇 달이 더 걸렸지만, CEO의 정면돌파로 안팎의 불안은 잦아들었다.
창 박사는 또한 전임 CEO의 800명 해고 계획을 무산시키고 ‘불황 3대 원칙’을 실천에 옮겼다. 첫째, 고객사와 이해·조율을 통해 협력을 유지한다. 둘째, 해고하지 않는다. 셋째, 연구개발Ramp;D 자금을 늘린다. 그는 은퇴했던 장상이 박사를 Ramp;D 수석 부사장으로 다시 불러다 앉혔고, Ramp;D 예산을 회사 매출의 5%에서 8%로 끌어올렸다.
지난 5월 대만을 방문한 젠슨 황 엔비디아 CEO가 모리스 창 TSMC와 만나 저녁식사를 함께 했다. AFP=연합뉴스
40나노 불량으로 피해 본 고객사 중에 엔비디아도 있었다. 창 박사는 젠슨 황 엔비디아 CEO의 미국 자택으로 찾아갔고, 가족 식탁에서 피자로 저녁을 먹은 뒤 서재로 가 둘만의 협상을 벌였다. “TSMC의 보상안을 받아들일지 48시간 내 답하라”는 최후 통첩에 황 CEO가 응해, 1년간 끌던 양사 갈등은 극적으로 봉합됐다. 이는 파운드리사에 거절만 당하던 초창기 엔비디아에 창 박사가 직접 전화 걸어 거래를 시작한 1997년부터의 인연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자서전에서 창 박사는 2013년 황 CEO에 두 번이나 전화를 걸어 TSMC 후임 CEO직을 제안했다는 일화도 공개했다. 황 CEO는 “나는 이미 직업이 있습니다”라며 거절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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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 수주’는 4년간 준비한 작품
오늘의 TSMC가 있게 한 1등 공신은 애플이다. TSMC가 지금같이 대중적 유명세를 치르는 건 엔비디아 덕이지만, 지난해 TSMC의 최대 고객은 여전히 애플이었다.
지난 2022년 12월 미국 애리조나주 피닉스의 TSMC 공장 착공식에서 팀 쿡 애플 CEO가 연설하고 있다. EPA=연함뉴스
창 박사는 2007년부터 애플을 TSMC의 잠재 고객으로 노렸다고 자서전에서 털어놨다. 스마트폰은 반도체 집약적인 제품이기에, 꾸준히 애플 동향에 촉각을 세웠다는 것. TSMC는 애플이 로직 칩 설계를 위해 삼성을 찾았다는 소식과, 이후 삼성이 자체 스마트폰 사업을 한다는 소식을 입수했다. 창 박사는 “내가 스티브 잡스라면 참을 수 없다는 느낌을 받을 것”이라고 확신하며 애플 수주에 더 공을 들였다.
이때 다리를 놓은 이는 아내 소피 창 여사의 사촌인 테리 궈 폭스콘 창업자였다. 폭스콘은 애플의 주요 제조 협력사다. 어느 날 제프 윌리암스 애플 최고운영책임자COO가 창 박사 집에 초대도 받지 않고 찾아와 저녁식사를 했고, 이때부터 양사의 파운드리 거래 협의는 시작됐다. 중간에 인텔-애플 간 거래 논의가 있었으나, 2011년 팀 쿡 애플 CEO가 창 박사를 초대해 점심을 먹으며 “인텔은 위탁제조를 잘 못한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2014년 애플은 아이폰6s용 칩을 삼성과 TSMC로부터 모두 납품받았고, 현재는 전량 TSMC에 맡기고 있다.
심서현 기자 shsh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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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서현 shsh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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