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장 6년차 때 마누라, 자식 빼고 다바꿔 말했는데, 지금 삼성은 [방영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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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 선대회장이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꿔’란 말을 한 게 회장 취임 후 6년째 되던 해였어요. 이재용 회장은 아직 회장 3년차잖아요.”
안팎으로 삼성 위기를 얘기하는데 이재용 회장은 왜 한마디도 하지 않는지 답답함을 호소하는 기자에게 누군가는 이같이 말했습니다.
6년차와 3년차란 기간 차이를 생각하면, 지금의 삼성 위기 속 신경영선언과 같은 임팩트 강한 선언이나 해법을 내놓지 않는 이재용 회장에게 어쩌면 성급한 기대를 걸었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하지만 선대회장 때와 달리 어느 때보다 고조된 삼성 위기감과 세계 초일류 기업이란 명성이 날로 내리막길만 걷는 모습을 생각하면 급해지는 마음 어찌할 수가 없습니다.
이 선대회장은 1987년 회장으로 취임한 후 1993년 6월 7일 독일 프랑크프루트에서 그 유명한 ‘신경영 선언’을 선언했습니다. 6년차란 내공 덕분이었을까요. 신경영 선언을 관통하는 이 선대회장의 말의 힘은 어마어마했지요.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꾸자’, ‘헌법, 법률, 도덕만 제외하고 무엇이든 새롭게 발상해보자. 모든 것을 바꾸어 보겠다는 혁명적 발상화 변화가 필요하다’ 등의 말입니다.
이 선대회장이 1997년에 쓴 유일한 에세이 ‘생각 좀 하며 세상을 보자’를 보면, 신경영 선언 당시 그는 무엇보다 ‘국가도 기업도 개인도 변하지 않으면 살아남지 못한다’는 자신의 신념을 임직원들에게 적극 공유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러면서 신경영 선언 이후 68일간 영국과 일본을 오가며 임직원들과 간담회를 가졌습니다. 당시 이 선대회장은 1800명과 350시간 대화했고, 사장단과는 800시간에 걸쳐 토의했습니다. 저녁 8시에 시작한 간담회가 이튿날 새벽 2시까지 계속되기도 했지요.
이 선대회장은 프랑크프루트에서 시작된 68일간의 긴 일정을, ‘신경영 대장정’이라고 불렀는데요.
이렇게까지 한 이유에 대해 그는 “구조적인 문제는 그 근본부터 해결해야 하고 그 근본은 사람의 마음에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라고 밝혔습니다.
도대체 얼마나 큰 위기였길래 이같은 대장정을 감행했을까요.
에세이 중 ‘프랑크푸루트 선언’ 편을 보면 이 선대회장은 당시 “세계경제는 저성장의 기미가 보이고, 국내경제는 3저 호황 뒤의 그늘이 짙게 드리우고 있었다”며 “이런 상황인데도 삼성 내부는 긴장감이 없고, ‘내가 제일이다’라는 착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조직 전체의 위기의식을 불어넣는 일이 필요했는데, 몇 년이 지나도 달라지는 것이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특히 50년 동안 굳어진 체질이 너무도 단단했다고 평가했는데요. 이와 관련 이 선대회장은 “경영자들은 변하지 않고 회사간, 부서간 이기주의는 눈에 보일 정도가 돼 소모적 경쟁을 부채질하고 있었다”고 지적했습니다. 지금의 삼성의 위기 모습과 무척이나 닮아보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대로 가다가는 사업 한두 개를 잃는 것이 아니라 삼성 전체가 사그라들 것 같은 절박한 심정이었고, 때문에 92년 여름부터 겨울까지 불면증에 시달렸다고까지 고백한 이 선대회장.
외국에서 한 전자제품 판매장에 들렀을 때 삼성 TV가 매장 구석에 먼지를 뒤집어 쓴 채 처박혀 있는 것을 본 이 선대회장은 “이것은 물건이 팔리고 안 팔리고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직원, 주주 나아가 국민과 나라를 기만하는 행위다”라고까지 생각했다고 합니다.
결정적으로 1993년 6월 4일, 이 선대회장은 후쿠다 다미오 삼성전자 고문이 작성한 56페이지짜리 보고서를 받게 됩니다. 그 동안 삼성전자 제품이 일본 제품을 베끼기에 급급했고, 세계 시장에서 이같은 제품으로는 경쟁할 수 없다고 지적한 보고서를 독일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 읽은 이 선대회장은, 그로부터 3일 뒤 프랑크푸르트에서 신경영 선언을 합니다.
현장 곳곳에서 체감한 위기와 이를 객관적으로 보여주는 지표와 주변의 고언, 그리고 이를 귀기울여 과감한 결단력을 내린 덕분에 삼성은 초일류 기업으로 도약할 수 있었죠.
회장 3년차인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지난 25일 ‘삼성의 위기’에 대해 처음으로 언급을 했습니다. 그 동안의 침묵을 깨고 이에 대해 얘기한 곳은 경영권 불법 승계의혹 항소심 결심 공판에서였습니다.
이 회장은 최후 진술을 통해 “최근 들어 삼성의 미래에 대한 우려가 매우 크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누군가는 근본적인 위기라고 하면서 이번에는 이전과 다를 것이라고 걱정한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저는 기업가로서 회사의 생존과 지속 가능한 성장을 담보할 수 있는 방안이 무엇인지 늘 고민해왔다”며 “현실은 그 어느때보다 녹록치 않지만, 어려운 상황을 반드시 극복하고 앞으로 한발 더 나아가겠다”고 말했는데요.
아버지 때와는 분명 다른 경영 환경에서, 상황에서 삼성의 위기를 겪고 있는 이 회장입니다. 그는 지난 2015년 국정농단 사태부터 시작해 9년째 법적 리스크를 떨쳐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이 회장의 경영 행보에 제약이 생길 수밖에 없는 것도 사실이죠. 하지만 한번이라도 삐끗해 뒤쳐지면 매우 빠르게 시장에서 도태되고 마는 글로벌 경쟁 속 법적 리스크를 이유로 위축경영만 펼칠 순 없는 노릇입니다.
삼성전자는 27일 발표한 ‘2025 정기 사장단 인사’에서 한종희-전영현 2인 대표이사 체제를 새롭게 구축하며 실적 부진에 시달리는 반도체 부문에 변화를 주고자 했습니다. 메모리 사업부를 대표이사 체제로 강화하는 한편 파운드리 사업부장을 교체한 것 등이 대표적입니다.
하지만 거취를 두고 시장의 관심이 높았던 정현호 부회장사원지원TF장이 유임되는 등 쇄신과 변화의 의지가 크게 읽히지 않는다는 반응이 나오고 있습니다. 그런 이유에서인지 주가도 오히려 약세입니다. 시장의 우려가 여전한 것이죠.
삼성의 운명이 걸려있다는 2심 선고가 내년 2월 3일로 예정돼 있습니다. 그 이후에는 이재용 회장만의 방식으로 삼성의 위기를 극복하는 모습을 볼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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