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먹 가챠로 망가지는 게임 왕국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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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강국 대한민국. 우리나라 게임산업의 위상을 나타내던, 한때는 심심찮게 들을 수 있었던 말이다. 지금도 게임은 여전히 한국 콘텐츠 수출의 최대 효자종목이다. 2022년 기준으로 한국 게임 수출액은 89억달러약 12조원에 달한다. 이는 한국이 1년에 수출하는 전체 콘텐츠 수출액의 67.8%를 넘는다.
전세계 게임산업 내에서도 한국의 위상은 여전하다. 282조원에 달하는 전세계 게임시장에서 한국은 미국, 중국, 일본에 이어 세계 4위를 차지하고 있다. 매년 약간의 변동은 있지만 한국 게임시장이 약진을 시작한 2000년대 초반부터 거의 20년 가까이 변함이 없다. 숫자로만 보면 여전히 한국은 게임 강국이다.
하지만 업계 내부의 목소리를 들어보면 게임 강국이라는 말은 찾기가 힘들어진다. 조금만 업계 동향을 살펴봐도 “한국 게임산업이 위기다” “더 이상 혁신이 없다”는 말밖에 들리지 않는다. 케이K팝이나 K드라마보다 훨씬 많은 수출액과 시장 규모를 자랑하는 한국 콘텐츠산업의 핵심인 게임산업이 왜 이런 소리를 듣고 있을까.
잘못된 BM이 만든 잘못된 성장
한국 게임산업 성장의 일등 공신은 2000년대 초반 초고속 인터넷 열풍을 타고 번지기 시작한 피시PC 온라인 게임이다. 이미 다른 국가에서는 게임 개발이 아케이드 게임이나 가정용 게임기 시장으로 정착되던 시기였다. 후발 주자였기에 때마침 보급되기 시작한 PC 온라인 게임이라는 장르로 곧바로 진출한 것이 신의 한 수로 작용했다. 다른 국가보다 한발 빠른 시장 진입으로 시장 주도권을 잡고 패러다임을 스스로 개척했던 한국 게임산업이지만 지금은 한때 우리의 텃밭으로 여겼던 중국 시장에까지 밀리며 내수 시장에서도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그 이유는 게임업계 사람이라면 다들 알고 있다. 게임 아이템 거래 등으로 대표되는 한국 게임만의 독특한 비즈니스 모델BM이 산업 성장의 가장 큰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는 건 이미 공공연한 사실이다.
‘쌀먹’이라는 인터넷 은어가 있다. ‘게임 아이템을 팔아 쌀을 사 먹는다’라는 의미로, 게임 플레이를 통해 돈을 번다는 뜻이다. 최근 게이머들이 게임을 선택하는 동기를 보면 쌀먹이 되는가, 되지 않는가가 차지하는 비중이 가장 크다고 한다. 현재 한국 게임산업 매출의 60%를 게임 아이템 거래가 차지하고 있는 것만 봐도 게임 아이템 거래가 우리 게임산업에서 차지하고 있는 위치를 알 수 있다.
쌀먹의 핵심은 남들이 갖고 싶어 하는 게임 아이템이나 아이템을 얻기 위해 들이는 게임 플레이 시간을 절약할 수 있는 게임 내 재화의 판매다. 그래서 게임 제작사들은 그러한 사용자들의 심리를 이용해 확률형 아이템이라는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었다. 일명 ‘가챠’라 불리는 확률형 아이템은 쉽게 말하자면 일종의 복권 같은 시스템이다. 확률이 터져 대박을 얻을 수도 있지만 운이 나쁘면 돈을 많이 쓰고도 좋은 아이템을 얻지 못한다. 말만 확률형 아이템이지, 사실상 도박에 가깝다.
그동안 게임업계는 확률형 아이템 모델이 사행성이나 도박성이 있다는 점을 필사적으로 감춰왔다. 조금이라도 사행성, 도박성에 여론이 쏠리면 말 그대로 업계 전체가 공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주 손쉽게 막대한 매출을 올릴 수 있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누구도 그리 쉽게 가르지는 못하기에 다들 문제라는 것을 알면서도 쉽게 고칠 수가 없었다.
문제는 이러한 문화가 오랜 시간 한국 게임산업 전체를 지배해온 탓에 게임산업 전체의 다양성이나 경쟁력이 크게 훼손돼왔다는 점에 있다. 지금의 위기도 결국엔 잇따른 확률형 아이템 조작 의혹에 의해 불거진 게임산업 전반의 신뢰도 하락과 그로 인한 매출 감소에서 비롯된 것이다.
게임성이나 사용자 서비스 강화가 아니라 오로지 도박적 요소로 사용자들을 끌어들이고, 사용자는 이를 쌀먹하겠다는 사행심으로 접근하는 이 위험한 만남이 지금의 게임산업을 위기로 몰고 있는 가장 큰 원인이다. 잘못된 비즈니스 모델의 고착으로 인해 왜곡된 성장이 일어난 것이다. 그리고 게임업계는 지금까지 그것을 이를 악물고 외면해왔다.
자정의 목소리가 없었던 건 아니다. 그간 업계의 많은 사람이 이대로 가다가는 언젠가는 한 번에 터져 다 죽을 것이라고 소리를 높여왔지만, 시장 논리에 밀려 무시당하기 일쑤였다. 그랬던 것이 2023년 그간 곪아오던 것들이 썩고 썩어 이제는 돌이킬 수 없는 암으로 커졌다.
이제 한국 게임은 단순한 게임 콘텐츠로 평가받지 못하고, 얼마나 도박성을 잘 살렸는지가 게임 평가의 핵심이 됐다. 일본의 국민 도박인 ‘파친코’와 다를 게 뭐가 있는가 싶다. 이것이 한국 게임산업의 현주소다. 더 슬픈 건 이 모든 것이 게임 제작사들이 알면서도 눈앞의 이익에 눈이 멀어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려왔던 것에 대한 결과물이라는 점이다.
인재들이 외면하는 게임산업
이러한 잘못된 비즈니스 모델로 인한 왜곡된 성장 말고도 한국 게임산업에 드리워진 적신호는 한두 개가 아니다. 우선 가장 눈에 띄는 문제점은 신규 게임 개발 경쟁력이 현저히 낮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에는 글로벌 시장, 아니 내수 시장에서도 두각을 나타내는 신규 한국 게임을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모바일로 게임시장의 패러다임이 바뀐 이후에는 더욱 심하다. 2022년 글로벌 매출 톱 10 모바일 게임 중 한국 게임은 단 1개에 불과하다. 국내 매출 순위도 마찬가지다. 국내 매출 순위 톱 10의 대부분은 중국 게임 아니면 서비스한 지 20년 넘은 게임들의 모바일 버전이다. 경쟁력 있는 신규 게임이 등장하지 못하고 있다는 말이다.
전문가들은 게임을 잘 모르는 전문경영인들이 의사결정을 전담하는 현 게임 개발사의 왜곡된 인력 구조에서 그 이유를 찾는다. 한국 게임산업에 개발자 개개인의 창의성보다는 엄격한 위계와 프로세스가 지배하는 경직된 개발 문화가 만연해 있다는 것이다.
한국 게임업계 종사자의 평균 근속연수는 2.8년에 불과하다는 조사 자료나 게임 개발자 10명 중 6명은 현재의 근무 여건에 불만족하는 것으로 나타난 조사가 모든 것을 말해준다. 열정 넘치는 개발자들이 신선한 아이디어로 승부하는 국외 게임계와는 다른 모습이다. 야근이나 초과근무를 당연시하는 일명 ‘크런치 문화’도 한국 게임 개발의 발전을 가로막는 원인이다. 다른 개발 직군에 비해 높은 노동 강도는 다른 정보기술IT기업에 우수한 자원을 뺏기는 효과를 낳는다. 좋은 인력들이 게임 개발을 기피하는 것이다. 이는 단순히 개발자 개인의 처우 문제를 넘어, 한국 게임산업의 미래에 암운을 드리우는 구조적 문제라 할 수 있다. 획일화된 개발 문화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 한국 게임의 재도약은 어려운 일이다.
게임을 둘러싼 기술 환경의 급격한 변화 속도도 한국 게임산업의 위기감을 더욱 고조시키고 있다. 메타버스, 블록체인 등 차세대 게임 트렌드를 이끌 새로운 기술 도입과 활용 측면에서도 선도국들에 크게 뒤처지는 모습이다. 한때 게임의 패러다임을 이끌던 저력은 다 어디로 갔는지 모를 일이다.
업계 관계자들은 모든 것이 결국 새로운 도전을 기피하고 편하게 돈을 벌겠다는 게임 개발사들의 안이함이 원인이라고 입을 모은다. 돌고 돌아 왜곡된 비즈니스 모델로 돌아오는 것이다. 이런 모습만 보면 점점 벌어지는 글로벌 격차 속에서 한국 게임계가 과거의 위상을 계속 유지할 수 있을지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는 건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지금이 마지막 골든타임
위기에 처한 한국 게임산업이 재도약하기 위해서는 말뿐만이 아니라 근본적 혁신이 필요하다. 과도한 상업성 추구에만 매몰돼온 관성에서 벗어나 순수한 재미와 감동, 몰입을 선사하는 게임 본연의 가치로 무게중심을 옮겨야 한다. 이를 위해 게임 설계 철학부터 대대적으로 전환해야 한다. 결제를 유도하는 데 치중하기보다는 유저에게 즐거운 경험을 선사하는 데 방점을 둬야 할 것이다. 장기적 관점에서 브랜드 가치를 쌓아가는 것이 단기 매출에 연연하는 것보다 지속가능한 전략이 될 수 있다.
이러한 전환을 이끌어갈 실험적이고 창의적인 개발 문화를 뿌리내리는 것도 시급하다. 톱다운 방식의 수직적 의사결정 관행에서 벗어나 유연하고 자율적인 개발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개발자 개개인의 창의성이 존중받고 장려되는 조직 분위기만이 미래 히트작 탄생을 가능하게 한다. 혁신적 시도에는 실패의 위험이 따르기 마련이다. 하지만 실패를 용인하고 교훈을 얻는 개발 문화가 선순환으로 이어질 때 게임업계 전반의 역동성도 되살아날 것이다. 안정적 수익에만 안주하던 관행에서 벗어나 새로운 기술, 새로운 장르에 과감히 도전하는 개발사들이 많아져야 할 때다.
한국 게임의 마지막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고 한국 게임산업의 위상을 되찾는 길은 절대 평탄치 않을 것이다. 하지만 게임업계 모든 구성원이 혼연일체가 되어 게임의 본질적 가치를 최우선에 두고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간다면, 반드시 길은 열리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지금이야말로 우리 게임산업의 미래를 위해 모두가 지혜를 모아야 할 마지막 기회다.
문동열 콘텐츠산업 칼럼니스트 rabike0412@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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