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진 끄고, 급강하하고…2000번 극한 시험 끝 K-전투기가 탄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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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방산 신화를 만든 사람들] [13] KAI 시험비행 조종사 이동규
지난 20일 오후 경남 사천 KAI 본사 내 활주로에서 이동규 수석 조종사가 초음속 전투기 ‘KF-21′을 타고 엄지를 치켜세우고 있다. /KAI
이날 조종간을 잡은 이는 한국항공우주산업KAI 소속 23년 경력 시험비행 조종사 이동규57 수석. 2001년부터 경공격기 ‘KA-1훈련기 KT-1의 개량형’, 초음속 고등 훈련기 ‘T-50’, 다목적 전투기 ‘FA-50’ 등을 2000회 이상 시험비행하며 K항공기 역사를 함께한 베테랑이다. 이 수석은 “작은 실수 하나도 용납되지 않는 게 시험비행이란 생각으로 조종간을 잡아왔다”며 “수조 원을 투자한 KF-21의 완벽을 위해 시험비행 전 시뮬레이터비행 모의 장치에서 수없이 연습을 거듭했다”고 했다.
2023년 1월 17일 한국형 전투기 KF-21 보라매가 초음속 비행하고 있다. /방위사업청
◇전투기 개발 뒤엔 2000번 시험비행
20일 오후 경남 사천 KAI 본사에서 만난 이 수석은 이날 오전에도 시험비행을 하고 오는 길이었다. 마치 난기류에 빠진 것처럼 비행기에 인위적으로 진동을 주고, 기체가 잘 흡수하는지 확인했다고 한다. KF-21은 이런 시험비행을 2026년까지 총 2000여 회 거듭하게 된다.
1990년부터 공군 전투조종사로 근무한 이 수석은 2000년 시험비행 조종사 임무에 지원했다. 그는 “진급에 좋은 자리도, 인기 있는 자리도 아니었지만 비행기 개발 과정에 참여하고 싶었다”고 했다. 이후 1년간 영국 시험비행 학교에서 교육을 받았다. 항공기에 탑재되는 각종 전자 장비와 비행시험 기법을 배우고 훈련기·전투기·수송기 등 20여 종의 비행기를 하나하나 몰았다. 그는 “한 기종을 배우고 비행하고 분석하는 과정이 쉴 틈 없이 반복돼 매일 밤을 새워야 할 정도였다”고 했다.
KAI 격납고에서 정비 중인 KF-21 시제기. /KAI
23년간 비행기의 각종 ‘처음’을 책임져 온 만큼 아찔한 순간도 많았다. 지난 2005년 5월 남해 상공에서 T-50 저고도 초음속 비행 시험을 할 때의 일이다. 낮은 고도에서 초음속은 기술적으로 더 어려운데 엔진 추력을 최대치로 높이는 과정에서 갑자기 엔진이 뚝 하고 멈췄다. 겨우 엔진 재시동에 성공해 사고를 피할 수 있었다. 이 수석은 “내가 테스트 중 실수를 할까 걱정될 뿐 사고가 날까 봐 두려웠던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고 했다. 그는 “개발 엔지니어부터 현장 정비사까지 동료들과 그들이 해온 작업을 절대적으로 믿기 때문에 20년 넘게 시험비행을 할 수 있었다”고 했다.
무장 투하 시험 중인 KF-21. /KAI
KAI 시험비행 조종사는 개발자이자 영업맨이기도 하다. 그는 “개발 과정에서 조종석 디스플레이에 어떤 정보를 크게 보이게 할 지부터, 조종간의 민감도를 얼마나 높일지 등 조종사 입장에서 의견을 전달한다”고 했다. 2006년엔 사막의 한 국가로 날아가 한 달간 T-50을 몰았다. 당시 T-50 수출을 위해 공을 들이던 중동 국가에서 “사막기후에도 운용이 가능한지 테스트해 보고 싶다”고 요청해 현지 공군을 태우고 비행했다.
이 수석은 “최종적으로 수출은 실패했고 어찌 보면 무리한 요구였지만 당시엔 첫 수출을 해내야 한다는 의지가 그만큼 컸다”고 했다. 외국에서 우리 항공기를 둘러보러 온 공군 관계자를 태울 땐 눈치껏 ‘이런 기능을 원하는구나’ 파악하고 KAI 개발팀에 전달해 주기도 한다.
가장 잊지 못할 순간 중 하나는 2013년 9월 인도네시아행이었다. 2011년 수출 계약을 맺은 ‘T-50’ 16대를 넉 달에 걸쳐 직접 비행해 인도했다. 일명 ‘페리’라고 불리는 납품 방식으로 “성능이 이만큼 좋다”는 점을 보여주기 위해 분해 후 화물기로 운송하는 대신 이 방식을 택했다. 사천 비행장에서 대만중간 기착지, 인도네시아로 이어지는 항공길을 날아 도착한 순간 T-50에 대한 자부심은 더 커졌다.
20일 경남 사천 KAI 본사 내 활주로에서 이동규 수석조종사가 KF-21 시제1호기 앞에 서 있다. / KAI
그래픽=김성규
새로 개발하는 항공기를 시험·평가하는 전문 조종사. 개발 단계에선 시제기試製機를 몰며 성능을 시험하고, 개발 완료 후엔 양산 항공기의 첫 비행을 하며 기능을 점검한다. 일반 조종사들은 할 필요도 없고, 하지도 않는 비행을 한다. 일부러 통제 불능 상태, 극단의 상황을 만들어 군용기 등이 설계한 대로 복원되는지를 시험한다. 1980년대 말 공군에서 선발하기 시작했고, 한국항공우주산업KAI도 2001년부터 비행시험팀을 운영 중이다. 현재 공군에 20여명, KAI에 24명의 조종사가 있다. 비행 경력과 조종 실력은 물론 비행역학·항공전자 같은 이론도 잘 알아야 해 선발 후 1년가량의 교육을 거친다. 이들의 시험비행 결과는 고스란히 비행기 개발 과정에 반영돼 완성도를 높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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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유진 기자 betrue@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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