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 만에 64조 날렸다…떡볶이 즐기던 월가 새끼 호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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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월가 역사상 가장 짧은 기간에 가장 많은 손실을 기록한 사건. 단 1주일 만에 166년 역사의 스위스은행 크레디트스위스CS를 사라지게 한 사건. 월가의 ‘천재 투자자’가 단 몇 개의 주식에 돈을 걸어 하루 아침에 파산한 사건. 전 세계 언론에 대서특필됐지만 정작 자세한 내막은 밝혀지지 않은 한국계 투자자 빌 황한국명 황성국·60의 ‘아케고스 사태’다.
지난 20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남부연방법원은 한국계 투자자 빌 황황성국에게 징역 18년형을 선고했다. 로이터=연합뉴스
아케고스캐피털Archegos은 2013년 황 씨가 설립한 개인 투자회사로 가족과 지인의 자금을 운용했다. 그는 추가 수익을 내기 위해 보유한 주식을 담보로 은행들로부터 자금을 조달했는데, 그 과정에서 총수익스와프TRS 등 복잡한 파생상품을 활용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투자한 주식들이 폭락하자 돈을 돌려주지 못하고 파산했다. 날려버린 본인 재산만 360억 달러약 50조6000억원. 황 씨에게 돈을 빌려준 골드만삭스·모건스탠리·노무라·CS 등 투자은행들이 총 100억 달러약 14조원의 손실을 입었는데, 이 모든 일이 단 1주일 만에 일어났다. 월가는 충격에 빠졌고, 무려 55억 달러를 잃은 CS는 일어서지 못하고 UBS에 합병됐다.
UBS에 흡수된 크레디트스위스. CNN 화면캡처
황 씨는 월가의 주류와 여러모로 달랐다. 1982년 겨울, 18살의 나이로 목사인 아버지를 따라 미국에 이민을 왔다. 하지만 아버지는 급작스럽게 세상을 떠났고, 황 씨의 어머니는 한인이 많은 로스앤젤레스로 이사해 멕시코 사람들을 상대로 생필품을 팔며 두 아들과 딸 셋을 뒷바라지했다. 황 씨는 가난 속에서도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학UCLA에 진학해 경제학을 공부하고 카네기멜런대 경영전문대학원MBA을 졸업했다. 당시 동양인에겐 높았던 월가의 문턱을 넘기 위해 1990년 현대증권 뉴욕법인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한 그는 뛰어난 실력으로 월가 헤지펀드의 전설로 불리는 줄리언 로버트슨Julian Robertson이 설립한 타이거 매니지먼트에 스카우트됐다.
타이거의 훈련 과정은 혹독하기로 유명하다. 호랑이는 사자와 달리 혼자 사냥한다. 미세한 소리와 냄새, 작은 기척까지 모조리 꿰뚫고 있다가 단번에 먹잇감을 덮쳐버린다. 그런 호랑이처럼 철저한 준비와 자기 확신을 가지고 투자해 높은 수익률을 올리는 게 타이거 펀드의 특징이다. 이를 위해 단순히 월가나 시장에서 얻을 수 있는 자료에 의지하지 않고 외부에서 정보를 찾아 분석해 가치를 더하는 ‘가치부가 분석Value-Added Research’ 전략을 쓴다. 황 씨도 특정 기업의 주식을 사고팔 때 미국은 물론 해외의 협력사, 이해관계자까지 일일이 만나 정보를 모으곤 했다.
타이거펀드를 설립한 줄리언 로버트슨. 조지 소로스와 함께 월가 헤지펀드계 양대 거물로 꼽히는 투자가였다. 지난 2022년 8월 23일 90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사진 카네기재단 홈페이지 캡처
황 씨는 타이거 컵스 중에서도 수제자였다. 줄리언이 직접 자금을 지원해 황 씨에게 ‘타이거 아시아 매니지먼트’를 맡겼고 월가를 대표하는 아시아 전문 펀드로 성장했다.
타이거에서 독립해 아케고스를 설립한 황 씨는 지금까지 그랬듯 먹잇감으로 낙점한 주식에 공격적으로 투자했고 수년간 우수한 성과를 냈다. 아케고스의 자문을 맡았던 A씨에 따르면 황 씨는 코로나19가 터지자 ‘콘텐트는 많은데 제대로 스트리밍전송 및 재생을 못하는 기업들이 제2의 넷플릭스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또 트럼프 1기 정부에서 미중 갈등으로 저평가된 중국 기업들이 2021년 바이든 정부 출범으로 미중 관계가 개선되면 재평가받을 거라고 확신했다. 이런 판단 아래 아케고스는 미국의 미디어 기업인 비아콤CBS와 디스커버리, 중국의 바이두와 텐센트뮤직, 담배회사 RLX테크놀로지, 교육기업 GSX테크에듀 등에 집중적으로 투자했다.
아케고스 캐피털매니지먼트 사무소가 있었던 미국 뉴욕 맨해튼 7번가 888번지 로이터=연합뉴스
아케고스가 자금을 빌려 투자한 주식이 일제히 급락하자 황 씨에게 투자한 은행들은 추가 증거금을 요구하는 이른바 ‘마진콜’을 발동했고, 급기야 장중에 반대매매된 아케고스 주식들이 쏟아져나오기 시작했다. 이를 감당할 수 없었던 아케고스는 결국 파산을 선언했다. 불과 일주일 사이에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악재가 한꺼번에 터져 한화로 무려 60조원이 넘는 돈이 증발한 것이다.
황 씨 측 변호인은 사기 목적이나 주가조작 혐의를 부인하면서 “그황 씨는 자신의 투자에 용기와 신념을 가졌다”고 주장했다. 해당 주식의 가치를 믿고 거액을 투자했다는 얘기다. 검찰은 “황 씨가 위험을 감수한 건 더 많은 돈과 성공, 권력을 원했기 때문”이라고 했지만 변호인은 “황 씨는 월가에서 큰 성공을 거둔 뒤에도 뉴저지주 소형주택에서 검소하게 살아왔고, 자선재단에 기부를 많이 해왔다”고 반박했다.
한국계 투자자로서 월가 최고 펀드 매니저 중 하나로 인정받았던 빌 황황성국. AP=연합뉴스
타이거 매니지먼트에는 1990년대부터 전해 내려오는 ‘투자분석 목록’이 있다. 이 중에는 ▶알려지지 않은 중요한 리스크는 무엇이며, 그 기업이 이런 리스크를 얼마나 통제할 수 있는가 ▶그 기업에 대한 투자를 재앙으로 만들 수 있는 요인은 무엇인가, 그 요인이 발생하면 얼마나 심각할 것인가를 따지는 항목이 있다. 황 씨와 교류해 온 한 투자업계 대표는 “결국 투자는 절대로 안 일어날 것 같은 변수나 리스크까지 모두 고려해야 하는 것”이라며 “황 사장은 많은 분석을 하고 판단에 확신을 가졌겠지만 위기관리를 거기까지는 못한 것”이라며 안타까워했다.
한편 블룸버그통신은 21일현지시간 뉴욕 맨해튼에서 열린 심리에서 황 씨의 변호인이 판사에게 황 씨의 연령 등을 이유로 들어 징역 18년 중 6년 6개월을 가택연금으로 복역하도록 허락해 달라고 요청했고, 이 요청이 받아들여질 수 있다고 보도했다.
이소아 기자 ls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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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아 ls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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