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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랜스젠더 수술하다 지옥 간다고요?⋯ "세상은 더 나아져요, 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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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수집기
댓글 0건 조회 175회 작성일 23-08-16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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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기사
맨땅브레이커lt;5gt; 강동성심병원 김결희 교수
대한민국 최초 대학병원 LGBTQ센터 탄생기
돈 좇아 성형외과 갔지만#x22ef;운명 바꾼 국경없는 의사회
환자에서 동지로…·진짜 이름 불러준 첫 의사
할 수 있는 일 더 많은 곳으로…중요한 건 ‘쓰임’


편집자주

현대인의 일을 탐구하는 콘텐츠 실험실 커리업이 시즌2를 시작합니다. 시즌2에서 커리업은 지난해 연재한 일잼원정대를 잇는 새로운 인터뷰 시리즈 맨땅브레이커를 내놓습니다. 자신만의 궤도를 맨땅에 헤딩하며 개척한 퍼스트 펭귄의 커리어 이야기를 다룹니다.
트랜스젠더 수술하다 지옥 간다고요?#x22ef; quot;세상은 더 나아져요, 반드시quot; [커리업]



잘나가던 압구정의 성형외과 의사, 성소수자 의료권의 투사가 되다

‘여자 안 뽑는다’ 소문난 대학 병원 성형외과의 유일한 여성 레지던트 → 하버드대 메디컬 스쿨 성형외과의 유일한 아시아인 여성 펠로우 → 압구정 대형 성형외과의 소문난 가슴 성형 전문가. 온통 상승의 궤적으로만 가득해 보이는 커리어 패스입니다. 하지만 ‘의사 김결희’라는 인물이 유난하게 각별한 지점은 단순히 ‘유리천장을 박살 낸 여성’이라는 데 있지 않습니다. ‘억대 연봉을 버는 압구정 성형외과 의사’ 이후의 약력은, 전형을 깨는 예측 불가의 전개로 이어지거든요.

7년 전, 결희씨의 진료실에 한 성소수자 환자가 도착한 이후, 의사로서 그의 삶은 인적이 드문 험한 길을 향하기 시작합니다. 돈 보다 사명을, 명예보다 긍지를 따르며 걷다 보니 자연스럽게 무지개 깃발을 손에 든 투사가 되어있었죠. ‘의사로서 모든 환자를 구분 없이 대하겠다’고 다짐했던 의대생 시절의 맹세를 좇아 그는 환자의 삶 속에 뛰어듭니다. 그렇게 대학병원 최초의 LGBTQ센터를 만들었습니다.

자신만의 궤도를 맨땅에 헤딩하며 개척한 퍼스트 펭귄의 커리어 이야기, ‘맨땅 브레이커’의 5호 인터뷰이는 ‘멸종 위기’의 사명을 붙잡고 성소수자의 의료권을 외치는 별난 의사, 김결희 강동성심병원 교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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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1. 유리천장 뚫고 간 성형외과서 국경없는 의사회에 들어가기까지


#S1. 처음엔 그냥 돈을 많이 벌고 싶었어
스물일곱, 막 병원 냄새에 익숙해질 무렵 전공의 김결희가 선택한 과는 성형외과였다. 이유는 간단했다. 누구에게 견주어도 뒤지지 않을 만큼 돈을 많이 벌어야 했으니까. ‘출근할 자격’을 지키기 위해 고액의 연봉이 절실했다. 의대 졸업반 시절, 멋모르고 덜컥 결혼한 상대는 선배 의사. 시집에선 며느리가 일 배운답시고 밖으로 나도는 걸 내내 건방져했다.

순수했던 그 시절의 그는, 순수한 결론을 내렸다. 선배인 남편보다 훨씬 잘 벌고 잘나가는 의사가 된다면 시가의 멸시 역시 잠잠해질 거라고. 그가 결혼을 서둘렀던 건 하루빨리 커리어에 집중하고 싶어서였지 지고지순한 아내가 되기 위함이 아니었으니까.

성형외과 합격문을 통과하고 돌아보니 시작부터 위태로웠던 결혼 생활은 이미 깨어져 있었다. 그에게 결혼은, 자기 욕망과 성 역할이 격돌하는 충격을 맨몸으로 감당해야 했던 뼈아픈 실패의 기억이었다.

결희씨가 성형외과 레지던트에 지원했을 당시, 그의 경쟁자 전원이 남자였습니다. 한 교수는 유일한 여자 지원자가 못마땅했던 나머지 결희씨의 면접 점수를 ‘0점’ 처리했죠.

칼을 드는 외과 의사의 세계는 기본값이 남성입니다. 그 세계에 들어오는 여성은 어디까지나 희귀한 변수로 취급되곤 합니다. 여자의 직업적 야망은 모조리 ‘욕심’으로 간주되던 분위기 속에서도 결희씨는 물러나지 않습니다. 누구도 문제 삼을 수 없는 압도적인 성적으로 바늘귀 같았던 합격문을 통과했죠.

“실은 내과에 가려고 했어요. 인턴 할 때도 내과를 준비했지 성형외과에 갈 생각은 없었죠. 의사의 일을 크게 두 개로 나누면 내과와 외과예요. 비유하자면 내과는 머리를 쓰는 문文의 영역, 외과는 몸과 도구를 쓰는 무武의 영역으로 여기는데요. 누가 그렇게 정해준 것도 아닌데 저는 전자에 해당한다고 생각했었죠.

생각이 바뀐 건, 오직 시집에서 무시당하지 않겠다는 일념 때문이었어요. 돈이라도 많이 벌어오면 좀 덜해질까 싶어서. 웃음

근데 참 신기한 게 일이란 해 보기 전까지는 모르는 건가 봐요. 나는 서전surgeon·외과 의사의 일이 너무 잘 맞는 사람이었던 거죠. 외과 의사들을 보면 분명히 타고난 손이 있거든요? 손의 감각이 유달리 뛰어난 사람. 근데 그건 이 일을 직접 해 보기 전까진 알 방법이 없어요.

저 역시 전문의 수련을 하면서 알았어요. ‘이게 내 천직이구나’. 이혼하자마자 레지던트를 시작했는데 마음이 지옥 같아서 매일 울었거든요? 회진 돌기 전에 울고, 돌고 나서 울고 그러는데 수술방에만 들어가면 모든 것을 잊어버려요. 그땐 그런 힘으로 버텼던 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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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일이 내 천직이다’라는 각성은 대개 두 가지 조건이 만나 스파크를 일으키는 순간 찾아옵니다. 첫 번째 조건은 ‘이 일이 요구하는 자질’이고 두 번째 조건은 ‘내가 가지고 있는 소질’입니다. 내 업業이 요하는 것과 내가 가진 가장 강한 힘이 맞아떨어질 때, 대체되지 않는 자신의 쓸모를 실감하게 되는 거죠.

성형외과의 일엔 하나의 ‘골드 스탠더드’가 없다고 합니다. 한 사람의 환자를 10명의 의사가 대하면 10가지 다른 수술 방법이 나오죠. 그만큼 의사 개인이 발휘하는 창조성과 독창성이 중요한데요. 바로 그 변칙성이야말로 결희씨가 가장 즐기는 것이었다고 해요.

고정된 풀이법이 없는 문제를 내키는 대로 풀어 온 그는 커리어 패스 역시 주변의 의사들과는 사뭇 다른 방식으로 확장합니다. 전문의 과정을 마치자마자 미국 유학을 결심하는데요. 한국에서 함께 공부했던 동문들이 대거 포진해 있는 병원은 애초 후보군에 넣질 않았죠. 일단 학술 전문 사이트를 띄워 놓고 관심 있는 분야의 키워드를 검색해 넣었습니다.

그가 배우고 싶었던 건 유방암으로 인해 가슴을 상실한 환자들을 위한 ‘가슴 재건 수술’ 방법이었는데요. 그 분야에서 가장 탁월한 성과를 가진 곳은 다름 아닌 하버드대학교의 BIDMC 병원이었습니다.

곧장 하버드에 메일을 쓰기 시작합니다. ‘이곳에서 배우고 싶습니다. 펠로*로 받아주세요.’ 구인 광고를 보고 구직을 한 게 아니라 냅다 ‘구직 의사’부터 내질러버렸던 거죠. 강력한 뜻만 있다면 길이란 건 없다가도 생기는 법, 몇 번의 화상 면접을 거치고 가뿐히 합격한 그는 곧장 가방을 챙깁니다.

당시 결희씨의 나이가 서른둘, 그때까지 미국 땅 한 번 밟아본 적이 없었죠.

미국에 가기 전까지 저는 살면서 단 한 번도 성소수자를 만난 적이 없었어요. 아니다. 당연히 만난 적은 있었겠죠. 내가 몰랐던 것이었을 뿐.

미국에 가니 달랐어요. 같이 일하는 동료 중에도, 진료실에서 만나는 환자 중에도 심심치 않게 자신이 성소수자임을 밝히는 이들이 있었죠. 물론 나도 거기에선 소수자였기 때문에 그게 대수롭지 않게 여겨졌고요.

한번은 이런 경험이 있었어요. 함께 일하는 동료가 너무 괜찮은데 애인이 없는 거예요. 당연하다는 듯이 물었어요. ‘넌 어째서 여자친구가 없어?’ 그로부터 한 1년쯤 지난 뒤, 그의 집에 초대받았는데 자신의 파트너를 소개하더라고요. 난 사실 게이였다면서. 제가 동아시아에서 온 여성이니 자신의 커밍아웃을 받아들이기까지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모양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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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관이 재편되는 경험이었습니다. 지금까지 그에게 젠더gender를 이해하는 분류는 ‘남성과 여성’이라는 이분법뿐이었는데 보스턴이라는 역동적인 공간은 그 단일한 분류로는 설명되지 않는 곳이었죠.

생각해 보니 보스턴만이 특별한 공간일 리 없었습니다. 그리고 깨달았죠. 한국에서 사는 32년 동안 단 한 번도 퀴어queer를 만날 수 없었던 건, 그들이 없어서가 아니라 드러내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걸요. 미국에서 지낸 시간은, 의사로서뿐 아니라 한 명의 인간으로서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각이 넓어지는 시간이었습니다.

“미국에서 일할 때 처음으로 의료 봉사를 갔어요. 누군가를 돕겠다는 공명심보다 낯선 환경에 나를 노출시켜보고 싶다는 생각이었죠.

콜롬비아에서 2주 동안 화상 환자들, 선천성 기형을 타고난 아이들을 수술하고 돌보면서 완전히 새로운 경험을 했어요. ‘아, 내 기술이 절실히 필요한 곳에서 일한다는 건 이런 기분이구나.’ 콜롬비아에서 돌아오자마자 ‘국경없는의사회’에 가입했어요. 한국인 출신으로는 유일한 성형외과 의사였죠.”

봉사 현장의 일터는 모든 조건이 질서 있게 통제돼 있는 병원과는 딴판이었습니다. 진료실에서 마주하는 환자는 자기 삶에 대해서도, 질병의 맥락에 대해서도 말하지 않으니까요. 수술실에서 만나는 환자가 돌아서면 이름조차 기억나지 않는 ‘익명’으로 존재했다면, 재난 현장에서 맞닥뜨리는 환자는 자기 삶의 비극을 그대로 안은 채 사방팔방에서 부딪혀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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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막 한가운데 불을 피우고 생활하는 문화권에선 화상 환자가 끊이지 않았고, 기아가 극심한 환경에선 얼굴 전체가 서서히 파괴되는 희소 질병 ‘노마병’ 아동이 많았습니다.

그곳에서 성형외과 의사인 결희씨의 일은 붕괴된 얼굴과 신체를 재건하는 일이었습니다. 괴사한 피부 위에 건강한 피부를 덧대고, 사라진 입술이나 코의 형태를 빚어내듯 만들어 냈죠.

“제가 가본 곳 중 가장 위험했던 곳은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였는데요. 이곳 사람들은 금요일마다 평화시위를 해요. 이스라엘과 국경을 맞댄 곳에 쌓인 담에 기어오르는 거죠. 담 위에선 이스라엘 저격수들이 총을 쏴요. 몰랐는데, 총알 하나를 가지고 사람 한 명을 죽이는 것보다 다리를 쏴서 불구로 만드는 게 더 효율적이래요. 한 명이 쓰러지면 주변의 두 명이 들러붙어 옮겨야 하잖아요. 1명을 쏨으로써 3명을 탈락시키는 거죠.

다리에 총상을 맞은 환자들이 실려 오면 정형외과 의사와 성형외과 의사인 제가 함께 붙어요. 정형외과 선생님이 갈라진 뼈를 맞추면 제가 그 위의 감염된 조직을 걷어내고 건강한 조직으로 덮는 거죠.”

봉사자 중 상당수는 회의감과 우울에 시달렸습니다. 한 명을 돌보고 있는 사이 수십 명의 부상자가 물밀듯이 밀려들어왔죠. 고쳐내고 복원하는 속도보다 파괴되는 속도가 더 압도적인 상황. 모두가 무력감을 느끼는 가운데, 결희씨의 생각이 다다른 곳은 무력한 체념이 아니라 ‘겸허한 각성’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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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의 일이 세상을 바꾸는 데 충분히 일조할 수 없다면, 나는 의사가 하는 일의 경계를 넘어가야겠구나라는 생각을 했어요. 의료 접근성이 낮은 이들을 직접 발견하고, 다가가고, 그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성별확정수술을 한 건 그로부터 몇 년 후인데요.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국경없는의사회 활동이 저를 성소수자 진료로 이끈 운명이 아니었을까, 그런 생각이 들어요.”

어느 한 시점에서 과거를 돌아보면, 그간 관통해 온 모든 경험이 훗날 일어날 일들의 복선처럼 여겨지는 때가 있어요. 결희씨는 ‘세상을 바꾸려면 의사의 일을 넘어서야 한다’는 이때의 깨달음이 머지않은 미래에 그를 ‘성소수자 앨라이*’로 만든 씨앗과도 같았다고 말합니다.

*앨라이ally : 성소수자 차별을 반대하는 뜻에 함께하며 연대하는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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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결희 교수의 나머지 이야기 chapter2, chapter3, chapter4, Epilogue는 아래 커리업 전용 인터랙티브 페이지에서 이어 읽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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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윤 기자 luce_jyun@hankookilbo.com
김유진 기자 zoeyful@hankookilbo.com
이한호 기자 han@hankookilbo.com
박길우 기자 gwpark1@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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