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의 진화…한마디만 하면 마우스 움직여 정보 찾아 > IT/과학기사 | it/science

인공지능AI이 사람 대신 복잡한 컴퓨터 작업을 해주는 시대가 열렸다. AI가 인간의 명령 없이도 자율적으로 마우스 커서를 움직여 PC 화면의 창을 여닫고, 텍스트를 스스로 입력해 인터넷에서 정보를 검색하는 공상 과학SF 속 장면이 현실이 된 것이다. 2022년 11월 데이터를 학습하고 추론하는 생성형 AI인 ‘챗GPT’가 등장한 후 2년 만에 AI는 ‘만능 답변기’ 수준에서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하는 단계까지 급속도로 발전하고 있다. 테크 업계에선 인간을 뛰어넘는 범용인공지능AGI의 출현 시기도 크게 단축되고 있다. 챗GPT 개발사 오픈AI가 AGI 출현까지 거쳐갈 것으로 규정한 ‘AI의 진화 5 단계’ 가운데 3번째 단계인 ‘에이전트Agent·비서’에 거의 근접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PC 작업 대신하는 AI

22일 미국 AI 스타트업 앤스로픽은 자사 최신 AI 모델인 ‘클로드 3.5 소넷’을 기반으로 한 ‘컴퓨터 유스Computer Use’라는 새로운 AI 소프트웨어를 공개했다. 앤스로픽은 아마존이 투자한 기업으로, 오픈AI의 대항마로 꼽힌다. 앤스로픽은 “컴퓨터 사용에 있어 근본적으로 새로운 것을 시도하고 있다”며 “특정 작업을 돕는 도구를 만드는 대신, AI에 일반적인 컴퓨터 기술을 가르치는 중”이라고 밝혔다. AI가 인간의 컴퓨터 작업을 돕는 수준이 아니라, AI 스스로 컴퓨터를 활용할 수 있게 하겠다는 것이다.


‘컴퓨터 유스’에선 AI가 화면 내 버튼을 클릭하기 위해 수직·수평으로 마우스 커서를 얼마나 움직여야 하는지 결정하고, 화면을 움직이며 필요에 따라 확대·축소한다.

사전 녹화된 시연 영상에서 사용자가 ‘샌프란시스코 금문교 근처를 친구와 아침에 하이킹하려는데, 경로를 준비해 줘’라는 명령을 내리자, AI는 직접 마우스 커서를 움직이며 웹사이트를 검색했다. 구글창에서 하이킹 코스를 검색하고, 경로를 지도에 표시하고, 일출 시간과 기온 등을 확인했다. 이후 어떤 옷을 입어야 하는지에 대한 추천까지 담긴 일정 초대장을 친구에게 전송했다. 이전 AI 모델에선 단계마다 사용자가 필요한 정보를 찾아달라고 명령을 내려야 했지만, ‘컴퓨터 유스’는 세부 사항을 따로 지시하지 않아도, AI가 스스로 필요한 정보를 결정하고 컴퓨터를 사용해 정보를 취득한 후 정리까지 했다. 앤스로픽 측은 “모든 첨단 AI 모델 중 컴퓨터 작업이 가능한 첫 사례”라고 강조했다. 이 회사는 해당 기능을 개발자들에게 베타 버전으로 먼저 공개하고, 올해 말 또는 내년 초쯤에 정식 출시하겠다는 계획이다.

‘AI 4대 천왕’으로 꼽히는 요슈아 벤지오 캐나다 몬트리올대 교수의 제자인 안성진 카이스트 전산학부 교수는 “이 기능은 ‘AI 에이전트’ 분야에서 또 한번 진일보한 성과가 나왔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며 “짧게는 5년에서 10년 사이에 AGI가 등장해 인간의 능력으로는 찾을 수 없는 신약을 개발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AI 어디까지 왔나

AGI의 출현은 당초 예상보다 빨리 실현될 것이라는 전망이 테크 업계에서 힘을 얻고 있다. 올해 노벨 화학상을 받은 데미스 허사비스 구글 딥마인드 최고경영자CEO는 최근 AGI에 대해 “미리 계획할 수 있고, 스스로 질문하며, 하드웨어·소프트웨어를 모두 포함한 도구 사용을 할 줄 아는 AI”라고 정의했다. 오픈AI는 이 같은 AGI에 도달하는 데 5단계 로드맵을 구상하고 있다. 1단계 대화형 챗봇과 2단계 인간 수준의 문제 해결 능력을 지닌 ‘추론자’ 단계를 지나면 스스로 결론을 내리고 행동을 취하는 ‘에이전트’ 단계에 도달한다. 비슷한 구분법을 갖고 있는 구글에선 이 단계를 ‘90% 이상의 숙련된 어른과 맞먹는’ 전문가 단계로 보고 있다. 최근 빅테크들의 기술 격전이 벌어지는 것이 바로 이 단계다. 이후 오픈AI는 직접 발명을 하는 4단계 ‘혁신자’를 거쳐 조직의 모든 업무를 대신할 정도의 AGI가 나온다고 보고 있다.

현재 빅테크 기업들은 3단계인 ‘에이전트’ 영역에서 선두를 차지하기 위한 치열한 경쟁에 돌입한 상태다. 오픈AI는 지난달 자유로운 대화부터 복잡한 아이디어 구상까지 함께 할 수 있는 음성 비서 ‘보이스 모드 어드밴스드’를 내놨고, 구글은 이와 비슷한 개인 음성 비서 ‘프로젝트 아스트라’를 추진하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MS는 스스로 판단해 업무를 처리해 주는 ‘자율 에이전트’를 21일 선보였다.

하지만 AI의 성능이 놀라워질수록 우려도 커지고 있다. 인간의 통제를 벗어난 AI가 개인·회사의 정보가 가득 들어있는 PC나 스마트폰을 자유자재로 사용할 경우, 정보 탈취는 물론 신원 조작, 사기 등 여러 악용 사례가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앤스로픽 측은 해당 AI가 소셜미디어 계정 생성 또는 게시물을 게시하거나, 정부 웹사이트에 접근하는 ‘고위험 동작’은 하지 못하게 설계했다고 설명했다.

☞범용인공지능AGI

AGIArtificial General Intelligence는 사람의 명령 없이도 인간의 지능 수준을 뛰어넘어 자율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AI를 말한다. 특정한 용도로 쓰이는 AI와 달리 모든 상황에 일반적으로 쓰일 수 있다. 마크 구브루드 노스캐롤라이나대 교수가 1997년 논문 ‘나노 기술과 국제 안보’에서 처음 제시한 개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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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리콘밸리/오로라 특파원 aurora@chosun.com 이해인 기자 hilee@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