씁쓸한 퇴장 팻 겔싱어…인텔, 어디로 가나[AK라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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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적 부진에 이사회 의장이 결심
설계 기술 개선 안되는데 대규모 파운드리 투자 독으로 돌아와
트럼프 취임 앞두고 바이든 반도체 정책 적극 지원 인사 배제일수도
세계 최대 반도체 기업 인텔의 팻 겔싱어 CEO가 추수감사절 직후 전격 사임했다. 겔싱어는 2021년 CEO로 복귀한 이후 3년 만에 사임하게 됐다. 특히 이번 사임 발표는 미국의 최대 쇼핑 시즌인 추수감사절 연휴 직후에 이루어져 업계에 큰 충격을 주고 있다. 업계에서는 이번 사임이 인텔의 실적 부진과 투자 전략 실패, 그리고 미국 정권 교체기를 앞둔 정치적 배경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분석하고 있다.
겔싱어는 펜실베이니아주의 작은 마을 출신으로, 전문대학 출신이라는 배경에도 불구하고 인텔에서 386, 486, 펜티엄 CPU를 설계하며 기술 전문가로서 입지를 다졌다. 특히 그의 출신지는 아미시 마을로 유명한 지역으로, 자동차도 타지 않고 전기도 사용하지 않는 전통적인 생활 방식을 고수하는 곳이었다. 이러한 배경을 가진 겔싱어가 세계적인 기술 기업의 수장이 되었다는 점은 많은 이들에게 아메리칸 드림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더욱이 그의 고향이 조 바이든 대통령의 고향과 같은 펜실베이니아주라는 점, 전문대 출신이라는 점은 바이든 행정부와의 관계 형성에 긍정적으로 작용했다. 특히 바이든 대통령의 부인인 질 바이든 여사가 전문대 교수 출신이라는 점도 이들의 관계를 더욱 돈독하게 만드는 요인이 되었다.
하지만 2021년 CEO 복귀 후 추진한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사업 강화 전략은 기대했던 성과를 내지 못했다. 인텔은 약 10년간 EUV 장비 투자를 미루면서 TSMC, 삼성전자와의 기술 격차가 크게 벌어졌다. 이는 인텔이 자체 기술력만으로도 충분하다고 판단한 것이 큰 실수로 작용했다. ASML의 EUV 장비 개발에 투자까지 했으면서도 정작 장비 구매는 미루면서, 경쟁사들이 이 장비를 적극적으로 도입하여 기술력을 확보하는 동안 인텔은 뒤처지게 된 것이다.
겔싱어는 이를 만회하기 위해 대규모 투자를 단행했지만, 기술 격차를 좁히는 데는 실패했다. 특히 미국 정부의 칩스 법안을 통한 보조금 지원을 받으며 대규모 투자를 진행했지만, 실질적인 성과를 내지 못했다. 당초 85억 달러로 예정되었던 정부 보조금도 79억 달러로 삭감되는 등 어려움을 겪었다.
인텔은 최근 실적 발표에서 부진한 성과를 보이며 주가가 크게 하락했다. 지난해 대비 주가가 50% 하락했으며, 지난 10월에는 실적 부진 발표 이후 하루 만에 30%가 떨어지기도 했다. 이에 인텔은 대규모 구조조정을 단행했는데, 이는 미국 정부의 반도체 보조금 지원과 맞물려 있던 고용 창출 약속과 상충되는 것이었다.
특히 최근에는 일론 머스크의 AI 기업 xAI가 엔비디아의 GPU를 대량 구매하는 등 시장에서 인텔의 입지가 더욱 좁아지고 있다. 겔싱어는 자신의 소셜 미디어를 통해 xAI가 인텔의 서버용 칩을 사용한다며 희망적인 메시지를 전했지만, 이는 오히려 그의 마지막 메시지가 되고 말았다.
업계 전문가들은 겔싱어가 본인의 전문 분야인 CPU 설계보다 생소한 파운드리 사업에 과도하게 집중한 것이 실패의 원인이라고 지적한다. 최근 TSMC에 위탁 생산을 맡긴 CPU조차 소비자들의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으며, 발열 문제 등 기술적인 결함도 지적되고 있다. 특히 게이밍 PC 시장에서는 AMD의 프로세서가 인텔을 압도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상황은 인텔의 정체성 혼란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인텔은 전통적으로 CPU 설계와 제조를 모두 담당하는 IDM종합반도체기업 모델로 성공을 거두었다. 하지만 파운드리 사업 강화라는 새로운 전략은 오히려 본업의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더불어 미국의 정권 교체기를 앞두고 있다는 점도 겔싱어의 사임에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바이든 행정부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온 겔싱어의 존재가 차기 정권에서는 오히려 부담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인텔의 이사회 의장이 월가 출신이라는 점에서, 정치적 리스크를 고려한 결정이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현재 인텔은 적절한 후임자 선정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과거 인텔은 앤디 그로브와 같은 강력한 리더십 아래에서 내부에서 후계자를 양성하는 것으로 유명했으나, 최근에는 많은 인재들이 애플, 퀄컴 등 경쟁사로 이직하면서 내부 후보군이 부족한 상황이다. 특히 애플의 경우, 자체 설계한 M시리즈 프로세서로 PC 시장에서도 큰 성공을 거두고 있어 인텔의 입지를 더욱 위협하고 있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들은 인텔의 이번 위기가 한국의 반도체 기업들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지적한다. 삼성전자 역시 파운드리 사업 강화를 위해 미국에 대규모 투자를 진행하고 있는데, 이 과정에서 기존 사업과의 균형을 어떻게 맞출 것인지가 중요한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이번 사태는 세계적인 기술 기업도 핵심 역량 관리와 기술력 유지에 실패하면 순식간에 몰락할 수 있다는 교훈을 주고 있다. 특히 AMD의 경우 리사 수 CEO 취임 이후 전략적인 경영으로 기업 가치가 인텔의 2배 이상으로 성장한 것과 대조적이다. AMD는 일찍이 파운드리 사업부를 분리하고 설계에 집중하는 전략을 택했고, 이는 현재 큰 성공을 거두고 있다.
인텔의 이사회 의장이 월가 출신이라는 점에서, 향후 인텔이 기업 분할이나 매각 등 극단적인 구조조정에 나설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특히 파운드리 사업부의 분리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 하지만 인텔의 규모와 미국 반도체 산업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고려할 때, 이러한 변화가 쉽지는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결국 인텔의 새로운 CEO는 기술 혁신과 경영 효율성, 그리고 정치적 환경 변화까지 고려해야 하는 복잡한 과제를 안게 될 것으로 보인다. 이는 단순히 한 기업의 문제를 넘어서 미국 반도체 산업의 미래와 직결되는 문제라는 점에서, 향후 인텔의 행보에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될 것으로 예상된다.
백종민 기자 cinqange@asiae.co.kr
강희종 기자 mindl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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