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칙칙한 PC방에 커플석까지…요즘 개발자들이 배워야 할 국민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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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3회 작성일 25-01-18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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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인마켓]
포격 게임 새 장르 개척하며 스타크래프트·리니지와 자웅 겨뤄
캐주얼 게임 수요 만들어내며 여성 유저 대거 유치, PC방 커플석 만들어
한정된 인기 장르 파이 나눠먹기 하는 최근의 국내 게임개발 트렌드 변화 필요

[편집자주] 남녀노소 즐기는 게임, 이를 지탱하는 국내외 시장환경과 뒷이야기들을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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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트리스의 전성기를 이끈 포트리스2. /사진=CCR
1990년대 말 게임 시장은 RTS실시간전략게임 스타크래프트와 MMORPG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 리니지가 대표하고 있었다. 친구들끼리 몰려와 스타를 하며 떠드는 학생들, 자동사냥 시스템도 없던 초기 리니지 화면을 뚫어져라 바라보며 열심히 레벨업하는 충혈된 눈동자들이 PC방의 터줏대감이었다.

칙칙했던 PC방 분위기를 바꿔놓은 건 포격게임이라는 장르로 도전장을 내민 포트리스 시리즈였다. 1999년작 포트리스2에서 전성기를 맞이한 이 IP지식재산권는 다른 게임사와 다른 보법을 보이며 순식간에 메이저 게임으로 급부상했다. 이후 무리한 신작 시도와 잘못된 운영 방식으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지만, 당시 포트리스가 보여줬던 파괴력은 현재의 한국 게임산업에 시사하는 바가 많다.


바둑처럼 즐길 수 있는 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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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트리스2 프리서버 게임 화면. /사진=유튜브 돌아온포트리스2 캡처
포트리스는 1997년 생긴 SK텔레콤의 포털 넷츠고에서 처음 선보였다. SKT에서 넷츠고에 넣을 게임 콘텐츠를 고민하면서, 제작사 CCR에 "상대방과 대화를 나누며 느긋하게 즐길 수 있는, 바둑 같은 게임"을 만들어달라고 주문했다. 실시간 컨트롤이 필요한 스타크래프트나, 필드에서 한 순간도 방심할 수 없는 리니지와는 다른 접근이 필요했다.

이에 CCR은 턴 방식의 포격 게임 포트리스를 개발했다. 처음 나온 포트리스1은 1000명 정도의 동시접속자를 모으는 데 그쳤다. 이후 넷츠고가 라이코스와 합쳐지고 네이트에 팔려가는 등 포털 이합집산이 가속화되면서 포트리스도 잠시 사라졌다. 다만 이때 쌓인 개발 경험은 대부분의 게이머들이 포트리스의 전형적인 모습으로 알고 있는 포트리스2 블루를 만드는 밑거름으로 사용됐다.


스타와 같은 리얼타임 방식을 채택하지 않으니 초고속 인터넷 사양도 필요 없었다. 포트리스2는 비싼 인터넷요금제를 사용하지 않아도 누구나 접속해 즐길 수 있는 게임이었다. 말 그대로 바둑처럼 가볍게 즐길 수 있는 국민 게임이 된 비결이었다.


"포앤 구해염~" PC방에 등장한 커플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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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앤포트리스 애인을 구하는 글. /사진=온라인 커뮤니티
포트리스의 특징 중 하나는 다른 게임에서 찾아보기 힘든 여성 유저들이 많았다는 점이다. 포트리스2의 마케팅 포인트는 게이머가 아닌 인터넷 유저를 공략하자는 것이었다. 그동안 게임 시장에서 철저히 소외됐던 여성 유저들이 포트리스2로 자연스레 몰렸다. 캐주얼한 그래픽과 손쉬운 조작법도 여성들의 진입 장벽을 낮췄다.

당시 유행하던 스카이러브 등 채팅 사이트에서는 포앤포트리스를 같이 할 게임 애인을 구한다는 방제목들이 넘쳐났다. 포트리스 게임 내 방제목 등도 마찬가지였다. 애인과 함께 PC방에서 포트리스를 즐기는 이들이 늘어나다보니 PC방 사장들은 커플석을 만들어 둘이 함께 붙어 게임을 할 수 있도록 했다.

비단 여성만을 대상으로 한 것은 아니었다. 게임을 하지 않던 일반 인터넷 유저들도 포트리스로 끌어들이기 위한 마케팅이 이어졌다. 코카콜라를 시작으로 완구, 패스트푸드, 치킨집 등과 제휴해 포트리스를 알렸다. 명랑소녀 성공기로 인기가 하늘을 치솟던 장나라를 모델로 기용해 포스터를 찍어냈다. 이 포스터는 종종 절도의 대상이 될 정도로 인기를 끌며 포트리스의 전성기와 함께 했다. 포트리스2 블루의 경우 가입자 1000만명, 동시접속자 17만명을 기록하며 유의미한 성과를 거뒀다.


"돈은 PC방 사장님들이 내세요" 업주 과금 모델의 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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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내 PC방. /사진=뉴시스
국민게임으로 등극한 포트리스2는 PC방 유료화 모델을 도입한 장본인이다. 리니지의 경우 유저들이 매달 정액요금을 내는 방식이었는데, 포트리스2는 유저에게 돈을 받지 않았다. 대신 포트리스로 수익을 올리는 PC방 업주들에게 돈을 받는 비즈니스모델을 만들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PC방 유료화 모델로, 이후 수많은 게임들이 이 모델을 답습했다.

유저들은 환영했지만 PC방 업자들은 강력히 반발했다. 하지만 감히 포트리스를 빼놓고 PC방을 운영할 수는 없었기에 이 모델을 받아들이면서 때때로 가격 관련 갈등을 세차게 빚었다. PC방 업주들의 모임인 PC방연합회에서 개발사 CCR에 항의하러 찾아오는 경우도 많았다. 윤석호 당시 CCR 사장은 직원들을 불러모아놓고 "조폭 같은 PC방 사장들의 폭력에 대응하기 위한 목적"이라며 자신이 허리춤에 차고 다니는 식칼을 보여주기도 했다.


포트리스가 보여준 전인미답의 길, 한국 게임업계가 본 받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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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CCR
포트리스2는 직원들에 대한 열악한 처우, 부분 유료화 모델의 미도입, 범람하는 핵 저지 실패, 저작권 분쟁, 다른 캐주얼 게임의 도전에 대한 안일한 대응 등으로 결국 쓸쓸히 막을 내렸다. 하지만 후발 게임 제작사들은 포트리스가 걸어간 길에서 수많은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우선 현재 유행하는 장르에 집착하지 않는 개발 풍토다. 리니지의 성공 이후 대부분의 게임사들이 리니지라이크라 불리는 MMORPG에 목을 매는 게 한국 게임산업의 현실이다. 최근 트렌드가 조금씩 바뀌면서 서브컬처, 방치형 RPG역할수행게임, 수집형 RPG 등에서 성공하는 게임이 나오면 또 그대로 따라간다. 마치 작년에 비싸게 팔린 작물을 너도나도 키우다가 올해 가격 하락으로 1년 농사를 모두 망치는 일부 농민들과 유사한 모습이다. 포트리스는 스타와 리니지라는 걸출한 경쟁작들과 다른 장르의 게임으로 승부해 살아남은 선례를 보여줬다.

게임 문외한들을 PC 앞으로 끌어들인 것도 포트리스의 큰 성과였다. 게이머라는 한정된 파이를 나눠먹는 요즘 게임업체들과는 다른 모습이다. 캐주얼한 그래픽으로 오히려 게임 진입장벽을 낮췄고, 여성들을 게임산업의 메인 플레이어로 유치했다. 고사양 그래픽과 화려한 액션, 더 고도화된 물리엔진에만 매달리는 개발자들이 놓치는 부분이다.

한 게임업계 관계자는 "포트리스가 한국 게임 역사에 남긴 가르침은 여전히 유효하다"며 "게임의 원동력은 무한한 상상력이고, 이를 바탕으로 세상에 없던 콘텐츠를 만들면 사람들이 그 매력을 알고 자연스레 모여든다는 것"이라고 바라봤다. 이어 "수익모델이 한정적이었던 과거와 달리 최근에는 사람이 모이면 그게 곧 수익이 된다"며 "혁신적인 아이디어로 무장한 재미있는 게임을 선보이겠다는 개발사의 근본을 지킨다면, 현재 한국 게임산업에 불어닥친 위기도 가볍게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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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우영 기자 young@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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