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어지나요? 섬세한 청년들이 만든 3천 원 김치찌개 먹어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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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의보가 내린 날. 빗속을 뚫고 대학로를 걸었다. 그런 곳이 어디냐고? 대학로에 위치한 청년밥상문간 슬로우점이다.
대학로에 위치한 청년밥상문간슬로우점.
2017년 12월 오픈한 청년밥상문간은 전국에 4곳, 청년밥상문간 슬로우 점은 1곳 있다.
테이블마다 김치찌개를 맛있게 먹는 법이 적혀 있다.
가격에 놀라 영수증을 들고 왔다. 이곳에 들어오면 키오스크에서 김치찌개를 주문할 수 있다. 세찬 빗소리가 멈추자 김치찌개의 보글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청년밥상문간슬로우점은 한 경계선 지능인 부모님께서 제안하셨다고 해요. 경계선 지능인 청년들에게 뭔가를 할 기회를 달라고요. 청년밥상문간을 새로 오픈하면서 동대문 복지관에 있는 청년들에게 의사를 물어 시작하게 된 거예요. ”
오픈 전 깔끔하게 정리된 식당내부.
이지혜 점장은 이곳이 탄생한 계기를 들려줬다. “청년들과 처음 만났을 때 크게 다른가 싶었어요. 물론 깊이 이야기하다 보면 그런가 싶기도 하지만, 청년마다 차이도 있거든요 ”
밥과 반찬은 남기지 않을 만큼 스스로 먹도록 돼 있다.
사실 슬로우점이라고 해서 다른 지점과 큰 차이는 없다.
직접 구운 누룽지까지 맛볼 수 있다.
“저는 이 친구들이 느리다기보단 섬세하다고 생각해요. 하나의 일을 할 때 집중도와 완성도가 굉장히 높거든요. 보통 사람들이 형식적으로 감사하다고 말하기도 하잖아요. 이들이 ‘점장님, 오늘도 많은 걸 알려주셔서 감사해요.’라고 하는데 구구절절 진심으로 들리더라고요. ” 그는 사회생활을 하다가 힘든 상황에서 이곳에 오게 됐는데 그들에게 위로와 힐링을 받았다고. 일일이 왜 고마운지를 말하는 청년들을 보며 고맙다는 말의 진정성을 깨달았단다.
청년밥상문간슬로우점에 붙어 있는 응원 메시지들.
“손님들 반응이요? 이곳을 알고 오시는 경우가 많죠. 설령 몰랐다고 해도 앞에 부착된 취지 글을 읽어보고 이해해주시는 분들이 많아요. 눈을 바라보고 천천히 말씀해 주시거나 경청해 주시죠. 우리 사회가 좀 빠르고 신속하잖아요. 이곳은 그런 게 이상한 거예요. 느린 분위기에 손님들 모두 좀 느긋해지시는 거 같아요. ” 물론 불쾌한 손님이 없는 건 아니었다.
맛있게 먹은 그릇은 잊지말고 퇴식구에 넣자.
반대로 좋은 기억으로 남는 손님도 있지 않았을까. ”언젠가 손님이 육수를 더 달라고 요청한 걸 청년들이 잊어버렸어요. 손님이 주방에 오셔서 저한테 따지려고 하시는데 전 청년에게 전달받은 게 없으니 청년을 불러 물어봤어요. 그랬더니 손님이 야단을 치는 줄 알았는지 얼른 ‘제가 말을 잘못했나봐요. 제 실수 같아요’라고 하시더라고요.“ 이 점장은 청년들에게 실수를 알려주지만 주로 칭찬을 한단다. “일과가 끝나고 아이들과 카페에 가서 이야기도 많이 들어줘요. 또 저희가 8월 5일~10일까지 전 지점 휴가인데 그때 청년들은 금융 교육 등을 받을 예정이고요. ” 앞으로 이곳은 어떻게 될까. 그는 경계선지능인을 위한 제도 등이 생기면서 이곳도 전국적으로 늘어날 거 같다고 했다.
손님들이 취지를 알고 후원박스에 조금씩 응원을 넣어주기도 한다.
“아무래도 경제 상황이 좋지 못하니까 운영이 쉽진 않다고 하시더라고요. 김치는 후원받고 있는데 나머지는 구매해야 하거든요. 그래도 좋은 마음으로 여기서 드시는 분들이 많고 이들을 응원하고 조금씩 기부함에 넣어주시기도 해요” 직접 일하는 청년들의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다.
조재범 홀매니저가 이야기를 들려줬다.
“처음에는 걱정이 많았어요. 지각하면 어쩌지, 손님이 어떤 요청을 할지 모르니까요. 그런데 지금은 주방보다 홀에서 일하는 게 더 재밌어요. 사람들이 맛있게 먹으며 이야기하는 활기찬 모습을 보면 좋아요. ” 조재범 홀매니저는 이곳에서 처음 일을 시작했다. “저는 일해서 돈을 버는 게 뿌듯해요. 월급이요? 부모님께 밥을 사드리고 제 작품을 만드는 데도 사용했어요” 옆에 있던 김 모 매니저도 이야기를 들려줬다. “앞으로 이런 곳이 많아지면 좋겠어요. 아무래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많잖아요 ”
대학로에 위치한 청년밥상문간슬로우점. 누구나 와서 착한 가격에 먹을 수 있다.
임예찬 매니저는 이곳에 오기 전 다양한 일을 해봤다. “사람들이 경계선 지능인에 관해 잘 모르거든요. 장애가 아닌데 장애로 생각하기도 해요. 그렇다고 일반인으로 보는 것도 아니라서 좀 아쉬워요. 경계선 지능 친구들이 사회생활을 잘할 수 있는 걸 보여줄 수 있는 곳들이 많이 생겨나면 좋겠어요” 그는 경계선지능인들이 복지의 사각지대에 있는 점이 안타깝다고 했다.
청년밥상문간슬로우점에서 진심이 가득 담긴 김치찌개를 먹었다.
앞으로 경계선지능인의 어려움이 줄어들지 않을까. 이들은 다양한 분야에서 어려움을 겪지만, 지적장애가 아니라 지원대상에서 소외돼 왔다. 또 교육부 및 관계부처는 경계선지능인을 위한 정부 최초 종합대책으로 ‘경계선지능인 지원 방안’을 발표했다.
얼마 전 100일을 맞은 청년밥상문간슬로우점. 벽 한쪽에는 지점의 취지가 담긴 글이 붙어 있다.
경계선지능인은 우리나라 국민의 약 13.6%로 추정되고 있다.
정책기자단|김윤경
otterkim@gmail.com
한 걸음 더 걷고, 두 번 더 생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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