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시, 노무현 탄핵 기각 3일만에 주한미군 감축 일방 통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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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원 기자의 외교·안보 막전막후 lt;18회gt;]
2004년 노 대통령 복직 축하하며 “이라크로 병력 차출” 알려 한미관계 안 좋을 때 속전속결로 1만2500명 감축 결정 전투 병력 일부와 헌병 등 이라크로 사전 차출 정황도 [조선일보 외교부·민주당 출입기자·한나라당 취재반장·외교안보팀장·워싱턴-도쿄 특파원·국제부장·논설위원과 TV조선 정치부장으로 정치·외교·안보 분야를 25년간 취재해왔습니다. 주요 사안의 막전막후에서 취재한 비사를 전해드립니다.] 노무현 대통령과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이 2006년 11월 18일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정상회담에서 6자회담 등 양국현안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조선일보 DB 지난 13일 암살 위기를 넘긴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오는 11월 대선에서 승리, 백악관에 재입성할 경우 주한미군 감축 또는 철수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윤석열 정부의 첫 국가안보실장을 지낸 김성한 전 외교부 2차관은 26일 칼럼에서 “한국은 한·미동맹과는 다른 차원의 부가가치를 지닌 유엔사와 단단한 연결 고리를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혹시나 미 행정부가 주한 미군을 축소하거나 철수할 경우, 미국이 한국을 비롯한 유엔사 회원국들과의 협조 체제를 축소 또는 폐기하려 한다는 점을 압박해 유엔사 회원국들과 우리의 안보를 지켜낼 수 있다”고 했습니다. 특히 트럼프 1기 행정부에서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을 지낸 허버트 R. 맥매스터 전 국가안보보좌관은 지난 22일 이를 가정한 발언을 해 눈길을 끌었습니다. 그는 워싱턴 DC 허드슨 연구소 주최 대담에서 “트럼프가 재선되면 북한 김정은이 트럼프로부터 핵 보유를 인정받으려 하고, 또 미국에 주한미군을 철수하라고 요구할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김정은이 미 본토를 직접 타격할 수 있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개발 중단 등을 약속하는 대신 주한미군 철수 및 일부 핵 보유를 미국으로부터 인정받는 협상안을 제안할 수 있다는 겁니다. 트럼프는 1990년 ‘플레이보이’ 와의 인터뷰 때부터 미군의 한국 주둔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입니다. 그 후 기회가 있을 때마다 주한미군이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다며 분담금 인상을 대폭 요구하는가 하면 측근들에게 구체적으로 ‘주한미군 철수’를 언급해온 사실이 알려졌습니다. 주한미군 규모는 2004년 2만8500명으로 감축이 결정된 후, 20년간 변함이 없었는데 당시 부시 미 행정부와 노무현 정부 간 논의를 살펴보는 것이 향후 주한미군의 미래를 가늠하는 데 도움이 될 듯합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2017년 2월 20일 플로리다주 팜비치에 있는 마라라고 리조트에서 국가안보보좌관으로 임명된 허버트 맥매스터 육군 중장과 악수를 나누고 있다. 사진: 로이터/Kevin Lamarque 2001년 9·11 테러 이후 부시 대통령이 시작한 이라크 전쟁이 2004년에도 계속되고 있었습니다. 미국은 2003년 대량살상무기WMD 보유 의혹과 테러 지원을 이유로 이라크를 침공하며 미국 본토 안팎의 주요 병력을 이곳에 집중시켰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5월 9일 당시 미국의 공영라디오방송NPR의 보도가 외교부 출입기자들의 눈길을 끌었습니다. “럼스펠드 미 국방장관이 이라크에 주둔 중인 미군 규모를 유지하기 위해, 한국과 다른 전략적인 분쟁 지역의 미군 병력을 이라크로 데려오는 것을 배제하지 않았다”고 보도한 겁니다. 럼스펠드 장관은 인터뷰에서 “한국 등 분쟁 지역에서의 미군을 이전하거나 한국 같은 분쟁 지역으로 투입되기 위한 준비를 하는 미군 병력을 이라크에 투입할 계획이 있느냐”는 질문을 받았습니다. 이에 대해 “우리는 이라크에 파견할 병력을 가장 적절한 지역에서 찾을 것이다. 세계 어느 곳에서도 억제력을 약화시키지는 않을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한다”고 답했습니다. 이라크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한 ‘럼스펠드 독트린’을 가동하면서 한국을 포함, 세계 어디에서든지 미군을 차출하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밝힌 겁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2003년 5월 17일 오후 청와대에서 방한중인 럼스펠드 미국방장관과 환담 하고있다. 이날 미국의 주한미군 감축과 이라크로의 병력 차출 문제가 주로 논의됐다. ◇ 주한미군 이라크로 차출하면서 감축 진행 2004년은 국내적으로는 노무현 대통령 탄핵으로 어수선한 시절이었습니다. 야당인 한나라당은 대통령이 선거 중립 의무 등을 위반했다며 탄핵 소추안을 발의했고, 여당인 열린우리당의 반대로 국회에서 격렬한 충돌 끝에 3월 12일 가결됐습니다. 헌법재판소는 두 달간의 심리를 거쳐 5월 14일,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기각했습니다. 헌재는 노 대통령의 선거 중립 의무 위반 등 일부 혐의는 인정했지만 그것이 대통령직에서 파면할 정도의 중대한 위헌·위법 행위는 아니라고 판단했습니다. 이에 따라 노무현 대통령은 63일만에 직무에 복귀했고, 탄핵 정국은 일단락되었습니다. 그런데, 노무현 대통령이 복귀한 지 3일 만에 미국에 의한 ‘주한미군 감축’ 문제가 터져나오면서 새로운 정국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외교통상부는 5월 17일 주한미군 2사단 1개 여단을 비롯한 4000여 명의 미군을 이라크에 투입한다는 데 합의했다고 밝혔는데, 이는 마치 마치 블랙홀처럼 다른 모든 이슈를 빨아들이기 시작했습니다. 이라크로 차출되는 1개 여단이 6개월~1년간의 임무를 마친 뒤 한국에 복귀하지 않을 가능성이 커지면서 주한미군 감축으로 이어졌기 때문입니다. 당시 이라크로 차출되는 미군 부대는 경보병 위주로 구성된 미 2사단 제2여단과 지원 부대 등인데, 이들은 보유 장비인 수송 헬기와 장갑차 등과 함께 이라크로 가기로 했습니다. 주한미군 차출과 한국군 파병이 8월을 전후해 동시에 이루어져 주한미군 4000여 명과 이라크에 추가 파병되는 한국 자이툰 부대 3700여 명 등 총 7700여 명이 한반도에서 일시에 빠지게 돼 안보 공백이 우려됐습니다. 김숙 당시 외교부 북미국장은 “미 제2사단 전력 중 핵심인 항공·기갑·포병 전력은 이라크로 가지 않는다”고 하면서도 이라크 차출 주한미군의 한국 복귀 여부에 대해 “알 수 없다”고 했습니다. 이날 저녁 부시 미국 대통령이 노무현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왔습니다. 부시는 노 대통령의 복귀를 축하하며 주한미군 파견에 대해서 설명했습니다. 청와대 윤태영 대변인은 “부시 대통령은 성공적인 이라크 주권 이양을 위해 주한미군 일부의 차출이 불가피함을 설명했으며, 노 대통령은 이에 대해 이해를 표시했다”고 발표했습니다. 부시는 2사단 일부 차출에도 미국의 대한對韓 방위 공약에는 변함이 없다고 했지만, 주한미군 감축 논의는 급물살을 타게 됩니다. 주한미군 감축협상을 보도한 조선일보 2004년 5월 19일자 1면. 특히 미국이 6월 6일 통보해 온 ‘2005년 말까지 1만2500명 감축’ 계획은 우리 정부의 예상보다 1년 이상 빠른 것이었습니다. 우리 정부는 그동안 여러 경로를 통해서 미2사단 재배치가 완료되고, 용산기지가 이전되는 2007년 이후에 주한미군 감축이 이루어질 것을 희망했습니다. 정부 관계자들은 공공연히 “우리 정부는 주한미군 감축을 앞당기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발언을 해왔습니다. 그러나 미국은 협상을 시작하자마자 2005년 말까지 감축하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습니다. 미국 측은 주한미군 감축 협상을 11월 미국 대통령 선거 이전에 마무리 짓기를 희망하고 있었습니다. 외교부 관계자는 “이건 협상이 아니라 사실상 통보”라고 했습니다. 취재 결과, 주한미군 감축은 부시 행정부의 해외주둔 미군 재배치 계획GPR에 따른 것으로, 이미 2003년에 이 같은 구상이 완료된 것이 알려졌습니다. 폴 울포위츠 미 국방부 부장관은 “이미 1년도 전에2003년 휴전선 부근에 주한미군이 필요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밝혔습니다. 노무현 정부의 일부 고위 관계자들에게 이런 입장을 2003년 하반기에 알렸다는 주장도 나왔습니다. 그런데, 당시 조선일보 취재망에는 미국이 주한미군의 이라크 파견을 통보하기 전부터 일부 병력을 이라크로 빼내던 정황이 포착됐습니다. 주한미군 2사단 일부에서 한 소대씩 단계적으로 파견하는 방법으로 주한미군을 차출했다는 정보가 들어왔습니다. 주한미군 헌병 수 백명이 2003년 말부터 괌, 오키나와, 하와이로 출장가는 형태로 한국을 나간 후, 이라크에 투입됐다는 제보도 있었습니다. “미군 범죄 수사대 등 주한미군 정보, 수사 요원 중 일부도 이라크인 포로를 신문하기 위해 차출됐다”는 얘기도 들려왔습니다. 카투사로 군 복무했던 저는 주한미군이 우리 정부에는 통보하지 않고 한국을 빠져나간 정황을 취재하기 위해 2사단 지역 취재에 나섰습니다. 의정부시의 캠프 레드 클라우드, 캠프 스탠리와 동두천시의 캠프 케이시, 캠프 호비 등의 기지촌에서 탐문 취재를 한 결과 이 같은 정황을 확인했습니다. 기지촌의 식당, 술집, 상점 등의 종업원들로부터 “그동안 친하게 지내던 단골 미군들이 이라크로 가게 됐다며 작별 인사를 하고 갔다” “캠프에 주둔하던 미군들의 일부가 이라크로 떠난 후 매출이 떨어졌다”는 얘기들을 취재했습니다. 이런 취재를 바탕으로 주한미군사령부에 “한국 정부에 미군 병력의 이라크 파견을 통보하기 전에 이미 상당수 병력을 보낸 것 아니냐”고 질의했으나 답변을 받지 못했습니다. ◇ 노무현 정권과의 불화도 주한미군 감축에 영향 당시 주한미군의 재조정은 근본적으로는 미국의 새로운 세계 전략과 이라크전의 여파 때문이었습니다. 미국은 2000년대 들어서 추진한 ‘1421′ 전략에 따라 전 세계 주둔 미군 재배치를 지속적으로 추진해 왔습니다. 이 전략은 미국 본토1와 동북아, 동남아, 유럽, 중동 등 4개 지역4에서 군사력을 전진 배치해 억지력을 확보하고, 두 개 지역2에서 동시에 전쟁이 발생해도 효과적으로 관리할 수 있도록 하며, 하나의 전쟁1에서는 결정적 승리를 목표로 합니다. 이러한 이유로 미군은 기동성 있게 움직여야 하며, 기존의 주둔군 재배치가 필요하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노무현 정권과의 불화도 작용했습니다. 그동안의 한·미 안보동맹은 전 세계에서 찾아볼 수 없을 정도의 제도화 되고 성공적인 동맹이었으나, 미국에 비판적인 정권이 들어오면서 관계가 달라지고 있었습니다. 한국군의 이라크 파병이 늦어지면서 주한미군의 이라크 파견을 막을 명분이 없다는 비판도 제기됐습니다. 무엇보다 노무현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 훈련 중인 주한미군 장갑차에 치여 사망한 여중생 사건을 이용, 반미 감정을 불러 일으킨 사실이 악영향을 끼쳤습니다. “별 볼일 없이 사진 찍으러 미국에 가지 않겠다”며 한미동맹을 경시한 것도 부시 행정부의 반발을 샀습니다. 주한미군 감축 규모를 보도한 2004년 6월 1일자 조선일보 4면 . ◇ 노무현 “주한미군 차출에 과민하게 대응말라” 당시 청와대의 입장은 “올 것이 왔다”는 입장이지, 주한미군 감축을 강하게 막겠다는 입장은 아니었습니다. 노 대통령은 관계 장관 회의에서 “주한미군 3000여 명 이라크로 차출하는 것은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과민하게 대응하지 마라”고 했습니다. 이에 대해 외교부의 고위 관계자는 “청와대는 주한미군이 일부 떠난다면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인데, 주한미군의 재배치는 큰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며 크게 우려했습니다. 결국 부시 행정부는 노무현 정부의 반미 성향을 이용, 노 대통령 임기 중에 미군 감축과 재배치를 마치는 것이 미국의 국익을 위해 유리하다는 판단을 한 듯합니다. 한미 양국은 후속 협의에서 2004년 10월 5일 2005년에 완료하기로 한 주한미군 1만2500명 철수를 2008년으로 늦추기로 최종 합의했습니다. 이에 따라 미국은 이라크에 차출된 3600명을 포함, 5000여명을 2004년 말까지 감축하고 나머지 병력은 2008년까지 단계적으로 철수했습니다. 오는 11월 미 대선 결과이후 현재의 주한미군 체제에 어떤 변화가 올 지 궁금해집니다. P.S. 1. 지난 회에서 ‘이정빈 외교부 장관이 경질된 지 약 2주만에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를 만나 독대’한 사실을 알려드렸습니다. 이와 관련, 이 전 장관이 다음과 같은 입장을 보내왔습니다. “퇴임 직후 이회창 총재 예방과 관련 여러가지 이야기들이 있었던 것 같은데 뒤늦게나마 진상을 밝혀 드리고자 합니다. 장관 재임 시 여러가지 외교 현안 문제에 대하여 야당한나라당 총재께 설명하고 이해와 협조를 구할 필요성이 있어 예방을 많이 했습니다. 이 총재께서 예방 시마다 친절하게 응해주시고 현안 문제와 관련 개인적으로는 동감하기도 하지만 당 차원에서 반대입장을 표명할 수밖에 없음을 이해해 달라고 하기도 했습니다. 이 총재께서 본인이 광주서석국민학교, 광주서중학교,서울법대 1년 후배임을 감안한 배려가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갖기도 했습니다. 김대중 대통령께서도 본인의 외교현안 문제와 관련 야당 총재와의 소통을 늘 높이 평가하기도 했습니다. 퇴임후 재임시 배풀어 준 후의에 감사를 표하는 개인적 방문이었을뿐 다른 뜻은 전혀 없었습니다. 이 총재께서도 이상한 이야기를 들었는지 기자회견시 본인과의 만남이 사적인 것임을 밝 힌 일이 있었습니다. 참고로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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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닷컴 바로가기] [ 조선일보 구독신청하기] 이하원 외교담당 에디터 may2@chosun.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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