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일본, EU처럼 뭉쳐야 산다"…새 조약 맺으라는 이들의 제안 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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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일본의 관계는 삼성·SK를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반도체 산업을 일본의 소재·부품·장비 산업이 뒷받침하고 있다. 고품질 국제 경쟁력을 가진 두 국가의 제조업은 누가 떼어놓으려고 해도 떨어질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다.”
한일관계 2.0이이라는 새로운 액션플랜을 제시해달라는 매일경제의 요청에 지한파 석학인 야나기마치 이사오 일본 게이오대 종합정책학부 교수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예로 들며 양국 관계의 중요성을 거침없이 설파했다.
산업 간 경쟁력 차이가 현저했던 2000년 이전과 달리 지금의 양국 산업은 서로 동등하게 기술력을 주고 받으며 글로벌 경기 순환에 함께 영향을 받는 구조가 됐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지난해 3월 한일관계가 순풍을 타면서 양국 산업 협력이 활발해지는 상황이다. LG그룹의 경우 권봉석 부회장을 단장으로 그룹 내 주요 기업 최고경영자CEO가 총출동해 지난달 일본 아이치현 도요타 본사에서 양사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도요다 아키오 도요타자동차 회장과 정의선 현대차 회장 간 최근 산업 셔틀 외교 행보는 이들의 협업이 가져올 ‘파괴적 혁신’에 글로벌 완성차 업계가 숨죽이고 있다.
야나기마치 교수는 이 같은 소부장 산업의 양국 간 공급망 결속력 강화와 함께 연구·개발Ramp;D 차원에서 큰 비용이 드는 첨단 분야에 대한 양국 공동 연구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대표적으로 친환경과 관련된 부분은 기술개발에서부터 상용화까지 막대한 자금이 들어간다.
그는 “정부가 재단이나 공공연구기구 등을 통해 마중물을 넣고 거기에 양국 기업이 연구개발 비용을 공동으로 부담하면 ‘넷제로‘ 문제에 대한 기업의 대응력이 커질 것”이라며 “연구개발의 결과물을 양국 기업이 자유롭게 이용할 경우 관련 시장을 주도할 가능성도 크다”고 말했다.
이주인 아쓰시 일본경제연구센터 수석연구위원 역시 갈수록 중요해지는 경제안보 공급망과 그린·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의 실현에 양국 기업들의 협력이 필수불가결하다고 힘을 보탰다.
그는 특히 반도체 공급망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이주인 수석연구위원은 “반도체는 한일 뿐 아니라 미국과 중국과도 얽힌 복잡한 상황”이라며 “이런 가운데 한일 양국이 공고한 공급망을 구축해 놓는다면 경제 안보적 측면에서 든든한 뒷배를 갖게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한일 양국 모두 에너지 수입국이라는 점에서 자원·에너지 안전 보장을 위한 공동의 노력도 중요하게 거론했다.
양국이 공동으로 에너지를 수입할 경우 비용을 낮출 수 있고, 한 국가에서 부족한 에너지 자원을 다른 곳에서 충당하는 것도 가능하다.
이와 관련해 최근 한국의 GS칼텍스가 탄소 배출량을 최대 80% 줄인 지속가능항공유SAF를 일본에 수출하는 데 성공하는 등 의미 있는 결과를 내놓고 있다.
대일본 휘발유 수출에서도 1~8월 기준 14억4643만달러약 2조원를 기록해 1992년 통계 집계 이래 최대치를 기록했다.
양국 산업의 국제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이주인 수석연구원은 양국 규제 완화, 스타트업 기업 제휴, 엔터테인먼트·콘텐츠 산업 관련 제3국 시장 협력 등을 꼽았다.
예를 들어 한국의 인기 웹툰을 일본에서 애니메이션으로 만들고, 주제가는 K팝 가수가 부르는 방식으로 ‘원 소스-멀티 유즈’ 방식의 콘텐츠 협력 관계를 가지는 방법도 가능하다.
그는 “윤석열 대통령이 한일 관계 개선을 위해 무겁고 어려운 정치 결단을 내린 것은 일본에서도 잘 알고 있고 그의 용기를 평가하는 목소리도 많다”며 “한일 관계의 중요성은 일본 민관에서도 충분히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 양국 정부는 관계 개선의 장점을 피부로 느낄 수 있는 노력을 차근차근 실천해 나가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오쿠조노 히데키 시즈오카현립대 국제관계학부 교수 역시 지난 3월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전 총리가 만들어낸 한일관계의 좋은 흐름을 불가역적인 흐름으로 정착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시바 시게루 총리도 현재의 좋은 한일관계를 계속해서 가져가기를 원한다”며 “향후 한국의 정권 교체로 한일관계에 급격한 변화가 생기지 않도록 하는 불가역적인 계기를 이번에 만들어두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의 하나로 그는 유럽연합EU의 기초를 만든 ‘솅겐협정’의 한일판을 만드는 것을 제안했다.
1985년 룩셈부르크 남부의 솅겐이라는 지역에서 논의가 시작된 이 협정은 가입국 간 사람·물자의 이동을 자유롭게 하는 것이 핵심이다. 이를 통해 EU라는 단일시장이 탄생했고 미국, 중국 등과 겨루는 경제핵심축으로 성장했다.
그는 솅겐협정보다 좀 더 손쉽게 시작할 수 있는 것으로 ‘에라스무스 프로그램’도 거론했다. 이는 1987년 시작된 EU에 속한 나라들 사이의 교환학생 프로그램이다. 젊은 학생이 30개 이상의 국가 중 1~2곳을 선택해 이곳에서 공부하며 견문을 넓힐 수 있다.
유명환 전 외교통상부 장관 역시 ‘윤석열-이시바’ 체제에서 양국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상호이익 확대의 출발점으로 한일판 에라스무스 프로그램을 1순위로 꼽았다.
이 프로그램과 함께 양국이 사전입국심사 제도를 통해 ‘1시간 생활권’으로 묶으면 양국 관계에 획기적인 교류 확대의 이정표가 세워질 것이라는 기대다.
국회 부의장이자 한일의원연맹 회장으로 활약하고 있는 주호영 의원국민의 힘·6선도 사전입국심사 제도 도입에 대해 “반드시 필요한 정책”이라며 양국 간 우선순위가 높은 액션플랜임을 강조했다.
그는 “한국인들이 일본에 갈 때 줄을 서서 입국심사를 기다리는데, 한국에서 사전에 입국심사를 하면 편하지 않겠냐”면서 “이 문제는 한번 잘 풀어보겠다”고 의지를 다졌다.
이와 함께 주호영 의원은 ‘한미일 3국 의원연맹 구축’이라는 담대한 도전 목표를 설정하고 국회가 이를 위해 힘쓸 것임을 전했다.
그는 “1972년 한일 의원연맹이 설립되고 2023년 한미 의원연맹이 만들어졌다”라며 “양국 간 의원연맹처럼 자주는 못하더라도 정례적으로 3국 의원들이 함께 만나는 자리를 외교부 등과 상의해 한번 만들 것”이라고 귀띔했다.
정부 간 대화로는 풀 수 없는 민감한 사안부터 3국에 걸쳐 외국인 투자를 하는 기업들의 애로사항 청취 및 민원 해결에 이르기까지 3국 의원들이 연대를 구축하고 유연한 자세로 정부 간 결속력을 키우는 ‘소프트파워’를 만들겠다는 포부다.
그는 또 “아직도 무연고 징병·징용자가 일본 신사나 절에 묻혀 있는 경우가 많다”며 “지금은 불교계에서 주로 반환 운동을 하고 있는데, 한일의원연맹 차원에서 이 문제에 적극 관여하려고 한다”고 전했다.
신각수 전 주일 대사는 지한파 일본 석학들의 평가와 동일하게 “2025년 한·일관계가 60주년을 맞는 만큼, 이에 발맞춰 장기비전 작성 작업을 서둘러야 한다”며 구체적인 경제협력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당부했다.
그 일환으로 고위급 경제대화 정례화, 한일 FTA 체결, 표준화·특허·정보협력, 공동 공급망 구축이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신 전 대사는 “경제안보와 관련해 희귀금속 관련 공급망 안전을 위한 상호협력을 추진해야 한다”며 “통화스왑 성격의 상호 융통 협조체제 구축도 필요하다”고 했다.
더불어 북한 도발 등 지정학적 위험에 공동 대응하기 위해 셔틀 정상외교 정례화, 22 장관 전략협의체 신설 등 고위 전략 대화를 강화하고, 안보 위협에 대응하기 위하여 북핵 정보협력, 동북아판 핵기획그룹 설립, 상호군수지원협정 체결 등 체제를 정비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해 유명환 전 장관은 특히 윤 대통령과 이시바 총리가 국제 협력기구를 통한 협력 확대에도 힘을 모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양국 간 공동의 영향력을 확대해 한국이 쿼드미·일·호주·인도 4자 협의체에 분야별로 적극 참여하고, 오커스미·영·호주 안보 동맹에도 공동 참여할 길이 열린다는 것이다.
유 전 장관은 “일본이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에 한국 가입 필요성을 설득하고, G7주요 7개국을 한국과 호주를 포함해 G9으로 확대하는 방안에 대한 논의도 주도하도록 한국이 유도할 수 있다”며 “한국 자체 노력도 중요하지만 일본이 이니셔티브를 쥐면 보다 효과적일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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