黨선관위, ‘韓-元 비방전’ 첫 제재
국민의힘 7·23전당대회를 열하루 앞둔 12일 ‘보수의 심장’ 대구에서 열린 합동연설회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문제를 둘러싸고 당 대표 후보 간 공방이 벌어졌다. 당권 후보들은 여론조사 1위를 기록한 한동훈 후보를 겨냥해 박 전 대통령 탄핵을 고리로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 위기감을 고조하는 발언을 이어갔다.
한 후보는 이날 연설에서 3월 비상대책위원장 시절 박 전 대통령을 예방한 인연을 언급하며 “역시 큰 분이었다. 큰 마음을 가지고 큰 정치 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총선 당시 내가 전국을 돌면서 손이 까지고 목소리가 안 나왔다”며 “그때 오래전 TV에서 본 박 전 대통령의 붕대 감은 손을 많이 생각했다”고 말했다.
다음 주자로 나선 원희룡 후보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으로 누군가는 인생의 화양연화花樣年華였는지 몰라도 우리 모두 지옥을 겪었다”며 “채 상병 특검법 등으로 적과 화해를 주선하는 자가 바로 배신자”라며 한 후보를 직격했다. 한 후보가 과거 “내 인생에 화양연화는 문재인 정권 초기 검사 시절이었다”고 말한 점을 겨냥한 것.
나경원 후보도 기자들과 만나 “박 전 대통령이 탄핵당할 때 형사 기소된 게 당무 개입”이라며 “그걸 검사로서 기소한 사람이 그 위험성을 알면서 당무 개입을 꺼내고 있다”고 말했다. 윤상현 후보는 “박 전 대통령이 탄핵당하고 우파가 분열될 때 여러분과 누가 울어줬느냐”고 했다.
당 선거관리위원회는 이날 원 후보와 한 후보 간 비방전이 격화하자 주의·시정명령을 내리고 첫 공식 제재에 나섰다. 추경호 원내대표는 “남은 전대 기간만이라도 자폭 전당대회라는 지적이 사라져야 한다”고 말했다.
원희룡 “박근혜 탄핵 누군가엔 화양연화”… 한동훈, 대응없이 “朴 역시 큰 분”
[與 전대 D―10]
대구 간 당대표 후보들 신경전 계속… 元, 朴정부 수사했던 한동훈 직격
韓 배포문에 ‘元 쌍팔년도식 색깔론’… 실제 합동연설회에서는 발언 안해
羅, 韓-元 겨냥 “무면허-난폭운전”
“총선 때 오래전에 제가 TV 통해서 본 박근혜 전 대통령의 붕대 감은 손을 많이 생각했다.”한동훈 후보
“영화 ‘대부’에 이런 대사가 나온다. ‘적과 화해를 주선하는 자가 있다면 바로 그가 배신자’다.”원희룡 후보
국민의힘 7·23 전당대회에 당 대표 후보자로 출마한 원희룡, 나경원 후보는 12일 열린 세 번째 합동연설회에서 한동훈 후보를 향한 집중포화에 나섰다. 반면 한 후보는 사전에 언론에 배포한 연설문에 들어 있던 원 후보를 겨냥한 비판적인 내용을 실제 연설에서는 생략했다. 그 대신 한 후보는 박정희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향수를 자극하며 대구·경북TK 당원의 지지를 호소했다.
당 선거관리위원회는 전날 방송토론회에서 격돌한 한 후보와 원 후보를 상대로 첫 공식 제재에 나섰다. 여기에 당 지도부가 “더는 자폭 전대로 가선 안 된다”고 경고한 가운데 후보의 연설 발언 수위는 낮아졌지만 장외 신경전은 계속되는 모습이었다.
● 元 “박근혜 탄핵으로 고통” 韓 “朴, 역시 큰 분”
한 후보는 이날 대구 북구 엑스코에서 열린 국민의힘 전당대회 대구·경북 합동연설회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의 중화학공업에 관한 위대한 결단을 존경한다”며 “대한민국을 여기까지 만들어 낸 위대한 장면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제가 총선 기간 박근혜 전 대통령을 찾아뵀는데, 역시 큰 분이었다. 감동했다”며 “과거에 어떻게 손에 붕대를 감았는지, 목을 어떻게 관리하는지 자상하게 말씀해주셨다”고 했다. 한 후보는 이날 오전에는 과거 국정농단 사태 수사와 관련해 “박 전 대통령에게 대단히 죄송하게 생각한다”며 “대단히 미안한 마음을 갖고 있다”고 덧붙였다.
당초 한 후보가 사전에 배포한 연설문에는 “원희룡의 정치는 청산해야 할 구태정치”, “쌍팔년도식 색깔론과 더러운 인신 공격, 한 방에 날려 주자”라는 원 후보를 정면 비판하는 내용들이 포함돼 있었다. 그러나 실제 현장 연설에서는 빠졌다. 한 후보는 당 대표 후보 중 유일하게 취재진과의 질의응답을 사양했다. 한 후보 캠프 관계자는 “상대 후보 네거티브 공격에 전당대회가 더 거칠어질 수 있다는 우려를 고려해 수위를 조절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원 후보는 이날 한 후보를 향해 적극적인 공세를 이어갔다. 원 후보는 “민주당 탄핵 열차, 벌써 출발했다”며 “그런데 바보같이, 아직도 채 상병 특검을 받아야 한다고 한다”고 밝혔다. 이어 “집권 여당은 대통령과 척지는 순간 우리 모두 망한다”며 “박 전 대통령과 당 대표가 충돌하다가 탄핵으로 우리 모두 망해봤지 않는가”라고 반문했다. 윤석열 대통령과 각을 세우고, 제3자 추천 채 상병 특검법 발의를 밝힌 한 후보를 정조준한 것으로 풀이된다.
원 후보는 또 “박 전 대통령 탄핵으로 얼마나 많은 고통을 겪었는가. 누군가는 ‘인생의 화양연화’였을지 몰라도, 우리 모두 지옥을 겪었다”고 말했다. 한 후보가 법무부 장관 시절 “제 검사 인생의 화양연화는 문재인 정권 초반기 박근혜 정부 수사들일 것”이라고 한 발언을 겨냥한 것.
나 후보는 연설에서 “우리가 서로 헐뜯고 싸울 만큼 지금 한가한 상황인가”라고 자제를 요청했다. 그러면서도 ‘김건희 여사 텔레그램 메시지 무시’ 논란에서 당무 개입을 거론한 한 후보를 겨냥해 “그게 당무 개입인가”라며 “그런 후보가 되면 당정 파탄이다”라고 날을 세웠다. 나 후보는 친윤친윤석열 진영의 원 후보를 향해서는 “용산에 맹종하는 후보는 절대 안 된다”고 했다. 나 후보는 오전에는 한 후보와 원 후보를 겨냥해 각각 “자기 이익을 위해 당과 여권을 위험에 빠뜨리는 위험한 무면허 운전”, “지지율 때문에 멘붕이 왔는지 난폭운전”을 한다고 지적했다. 윤상현 후보는 “박근혜 전 대통령 명예를 회복시키고 과거의 역사, 우리 보수 대통령이 올바른 평가를 받게끔 윤상현이 나서겠다”고 말했다. 윤 후보는 기자들과 만나 “문자 논란, 사천 논란은 총선 백서가 발간되지 않았기 때문”이라며 총선 백서 발간을 촉구했다.
● 與 지도부 “자폭, 자해 전당대회 사라져야”
전당대회 후보들 간의 상호 비방전이 격화하면서 국민의힘 지도부도 공개적으로 경고의 목소리를 냈다. 국민의힘 추경호 원내대표는 오전 원내대책회의에서 “요즘 국민에게 제일 걱정을 많이 끼치는 것이 축구협회와 국민의힘 전당대회라는 말이 들려온다”며 “남은 전당대회 기간만이라도 자폭, 자해 전당대회라는 지적이 사라져야 한다”고 했다.
전당대회 과열이 이어지자 국민의힘 전당대회 선거관리위원회는 한 후보와 원 후보를 상대로 첫 공식 제재에 나섰다. 선관위는 “전날 개최된 당 대표 방송토론회에서 당헌당규를 위반한 원 후보와 한 후보에게 ‘주의 및 시정명령’ 제재 조치 공문을 발송했다”고 밝혔다. 더 강한 단계인 경고나 윤리위 회부 후에는 합동연설회 참여 등에서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는 게 선관위 설명이다. 국민의힘 중앙윤리위원회도 전대 과열을 우려하며 선제적인 경고 조치 등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구=김성모 기자 mo@donga.com
이상헌 기자 dapape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