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용서할 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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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핌] 배정원 기자 = #1. 어린이 보호구역스쿨존에서 만취 상태로 차를 몰다 9살 초등학생을 치어 숨지게 한 남성이 대법원에서 징역 5년을 확정받았다. 피해 아동의 유족은 엄벌을 탄원했지만 재판부는 "피고인이 잘못을 깊이 반성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고 5억원을 형사공탁한 사실을 고려했다"며 징역 7년을 선고한 원심 판결을 깨고 감형했기 때문이다. #2. 사회 초년생들을 대상으로 40억원대 전세사기를 벌인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징역 9년을 선고받은 브로커는 항소심에서 징역 3년 6개월로 감형됐다. 재판부는 "피해자의 피해 회복을 위해 형사공탁한 점, 진지하게 반성하는 점 등을 고려하면 원심의 형량은 너무 무거워 부당하다"고 판시했다. #3. 소속사 대표가 자신을 성폭행하려 했다며 무고한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된 아이돌 출신 BJ는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범행을 인정하고 잘못을 뉘우치고 있으며 피해자를 위해 2000만원을 형사공탁한 점을 유리한 정상으로 참작했다"고 설명했다.
형사공탁이란 피고인이 피해자의 피해 회복을 위해 금전, 유가증권, 기타 금품을 법원 공탁소에 맡기는 제도다. 원래는 피해자의 인적사항을 알아야 공탁이 가능했는데 개인정보 유출, 합의 강요 등 2차 피해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아 지난 2022년 12월부터 피해자 인적사항 없이도 공탁이 가능한 형사공탁 특례제도를 시행했다. 그런데 피해자 동의 없이 선고 직전에 기습 공탁이 이뤄지면서 오히려 형사공탁 특례제도가 꼼수 감형 수단으로 악용되는 문제가 생겨났다. 형사공탁은 피고인이 피해자의 피해 회복을 위해 노력했다고 인정돼 양형에서 유리한 요소로 작용하는 경우가 많다. 거액의 공탁금과 수많은 반성문을 제출하면서도 정작 피해자에게는 사과조차 건네지 않는 가해자들을 보며 피해자는 울분을 터뜨리기도 한다. 한 피해자는 "피해자가 용서하지 않았는데 왜 법원이 용서를 해주는 것이냐"며 분노의 화살을 사법부로 돌렸다. 가해자를 용서할 권리는 오직 피해자만 갖는다는 생각에서다. 한술 더떠 피해자가 공탁금을 받아가지 않은 사이, 피고인이 감형받고 다시 공탁금을 회수해 가는 이른바 먹튀 공탁도 문제다. 비난의 목소리가 커지자 최근 법무부는 공탁금 회수를 원칙적으로 제한하는 규정이 담긴 공탁법과 재판 중인 가해자가 공탁한 경우 법원이 피해자 의견을 의무적으로 청취하도록 하는 내용이 담긴 형사소송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해당 법안은 법제처의 심사를 마치는 대로 국회에 제출될 예정이다. 형사공탁 제도를 손질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예전에도 있었다. 지난 21대 국회에서도 기습 공탁을 방지하는 내용의 개정안이 다수 발의됐지만 임기 만료로 모두 폐기됐다. 부디 22대 국회에서는 피해자들의 용서할 권리를 보장해 국민들의 사법부에 대한 신뢰가 조금이라도 회복될 수 있도록 기대해 본다. jeongwon1026@newspim.com 저작권자c 글로벌리더의 지름길 종합뉴스통신사 뉴스핌Newspim,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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