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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8월 22일의 진실은…우키시마호 침몰 미스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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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31회 작성일 24-09-16 0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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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방송화면 캡처

광복 직후였던 1945년 8월 22일. 강제징용 한국인을 태운 우키시마호가 부산으로 향하던 중 일본 마이즈루 앞바다로 가라앉았다. 일본은 승선자 명부 등이 배와 함께 사라졌다고 주장했다. 정확한 희생자 수도 모른 채 우키시마호 침몰 사건이 미스터리로 남아 있었던 이유다. 하지만 일본 정부가 이를 은폐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80여년이 지난 최근에야 드러났다. 관련 문서 75건을 은밀히 보관하고 있었던 것이다. 일본 정부는 이 중 19건을 지난 5일 우리 측에 우선 제공했다. 우키시마호 침몰 사건의 진상 규명이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될 방침이다.

외교부는 “일본에서 받은 우키시마호 명부를 행정안전부에 전달했다”고 12일 밝혔다. 행안부는 곧장 승선자 명부에 대한 상세 분석을 진행할 예정이다. 외교부 관계자는 “명단이 구체화하면 피해자 재심 신청이 있을 것”이라며 “피해자 구제가 제일 중요하기에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일본 측이 자료를 뒤늦게 제공한 이유에 대해서는 “한·일 관계 개선의 효과도 있을 것이고 일본 내 많은 단체의 노력도 중요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우키시마호 승선자 명부 표지 이미지. 외교부 젝ㅇ

우키시마호 침몰 대부분의 실체는 미스터리로 남아있다. 정확한 승선자와 사망자 숫자 자체도 밝혀지지 않았다. 일본은 우키시마호 승선자 3700여명 중 한국인 희생자는 524명이라고 발표했다. 그러나 생존자들은 승선 신청자를 기준으로 한 것이라 정확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명부에 이름을 올리지 않고 탄 사람까지 합하면 승선자가 7000명을 훌쩍 넘는다는 증언도 있다. 한 생존자는 한국인이 1만명 이상 탑승했고 주장했다. 한국인 희생자의 경우 최소 1000여명이고, 5000명 이상 사망했다는 주장도 있다.


침몰 원인을 두고도 양국 의견이 엇갈린다. 생존자들은 일본의 계획범죄로 본다. 일본이 우키시마호가 부산에 도착하면 한국인들이 일제의 만행을 국제 사회에 증언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이들을 일본에 남겨두기엔 폭동이 우려돼 폭발 사고로 위장했다고 주장한다.

이를 뒷받침하는 수상한 정황에 대한 증언도 이어졌다. 한 생존자는 배가 폭발하기 직전 일본 군인들이 문서 뭉치를 바다로 내던졌고 일본 선원 여러 명이 보트를 타고 배를 탈출했다고 주장했다. 또 다른 생존자는 일본 군인들이 갓난아이를 보며 “저 불쌍한 어린애가 꽃봉오리도 피우지 못하고 가게 생겼다”는 대화를 나눴다고 증언했다.

하지만 일본은 우키시마호가 해저 기뢰를 건드려 폭침했다는 입장이다. 침몰한 우키시마호의 상태가 상부 구조물이 아닌 하부 구조물에만 폭발 흔적이 있다는 점을 근거로 앞세운다. 일본은 선체에 큰 폭발로 생긴 구멍도 없다고 주장한다.

박민지 기자 pmj@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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