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서 조국 독립 도왔던 차보석·신달윤 선생 묘소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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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유공자 차보석 선생. /국가보훈부 공훈전자사료관 잊혀졌던 독립운동지사 차·신 선생의 묘지는 지난 10월 문양목 애국지사의 유해를 봉환하기 위해 보훈부 출장단이 미 현지 묘지 실태 조사를 하다 발견했다. 출장단은 미주 지역 한인신문 등 각종 사료와 증언·제보를 취합해 분석했는데, 이 과정에서 차·신 선생 유해가 사이프러스 묘지에 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결과를 얻었다. 이에 직접 찾아가 실제 묘지가 있다는 걸 확인한 것이다. 샌프란시스코 사이프러스 묘지. 신 선생은 1881년 평안남도 출생으로 미국으로 건너간 뒤 1907년 공립협회 리버사이드 지방회 구제위원, 1908년 샌프란시스코 지방회원을 지냈다. 1910년부터는 대한인국민회 새크라멘토 지방회의 부회장·총무 및 재무담당을 역임했다. 1919년 맨티카 지방회의 총무, 1927년 샌프란시스코 지방회 총무·법무, 1943년 샌프란시스코 한인경위대원으로 활동했다. 차·신 선생은 각각 1925~1932년, 1905~1945년 국내외 독립운동가들에게 여러 차례 자금 지원을 한 것으로 파악됐다. 차 선생은 1932년 3월, 신 선생은 1956년 7월 각각 미국에서 숨을 거뒀다. 우리 정부는 이들의 공적을 기려 차 선생에겐 건국훈장 애족장2016년을, 신 선생에겐 대통령표창2015년을 각각 추서했다. 이후 7~8년이 지나서야 이번에 두 독립운동가의 묘지를 찾은 것이다. 최정식 보훈부 과장은 본지에 “해외에 있는 독립유공자 유해 봉환은 유족의 청원을 통해 진행된다”면서 “생존 유족이 없을 경우 교민사회의 청원을 통해 봉환을 추진할 수 있다”고 말했다. 독립운동가 문양목 선생. 문 선생은 1969년생으로 1905년 을사늑약 체결 뒤 미국으로 건너가 1907년 대동보국회를 결성했다. 1909년엔 네브래스카주에 한인소년병학교를 설립하는 등 미주 지역에서 국권회복 및 항일독립운동을 벌였다. 고인은 1919년 ‘3·1운동’의 계기가 된 파리평화회의 청원대표 파견 결정 등에도 참여했고, 이후엔 멘티카 지방에 국어학교를 열어 한인 어린이들을 가르쳤다. 1995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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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닷컴 바로가기] [ 조선일보 구독신청하기] 노석조 기자 stonebird@chosun.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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